2010년 5월 27일 목요일

안희정, '수도권(서울) VS 지방' 프레임 가동 확인.

안희정, '수도권(서울) vs 지방' 프레임 가동 확인.

(2010년 5월 27일. 김미화 인터뷰로부터)

 

1.

차기 대선에서 진보가 승리하는 전략의 기초가 될 것이다.

노무현이 놓아두고 간 "진보의 미래"라는 난제의 해법으로, 그의 동지들이 들고 나온 이 전략이 반갑다.

 

온 곳과 갈 곳이 다른 수많은 길들이 서로 만나 교차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완전한 원이 이데아에 불과한 것처럼, 완전한 평행선 또한 실재할 수는 없다.

이런 게 희망의 근거다.

 

 

2.

이번 선거는 "근대화-산업화 세대 vs 민주화 세대(386)"의 프레임으로 치러야 승산이 있다.

 

 

"저희는 산업화 세대, 부모님 세대가 21세기 대한민국을 향해서 준비한 세대입니다. 그 부모님 세대들이 못다 이뤘던 선진국의 꿈, 좋은 나라의 꿈을 저희 세대가 이제 이어가겠습니다. 새로운 이 미래를 향한 도전, 저 안희정의 도전입니다. 키워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적은 되도록 적게, 아군은 많게 전선을 긋는 쪽이 당연히 승산이 높다. 세대별 지지율 격차를 유심히 봐야 한다. 산업화에 뒤따른 고령화는 근대화 세대의 위기감을 낳아 그들을 결집시켰다. 따라서 그들을 다독이는 동시에, 386의 연대를 일으킬 수 있는 레토릭이 효과적인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좋게 말하면 좋게 생각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까닭이다.

 

유시민의 전략인 '386의 연대' 역시 그 사이즈 만큼이나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야 제법 그럴듯하게 구축되었다. 김진표가 저 승산 없는 싸움에 응해준 것을 보면, 그 또한 참 대인배인 모양이다. (혹은 그냥 얼간이던지.) 경선이 흥행에 실패하면 본선은 볼 것도 없는 것이 요즘 선거다. 장기적으로 봐서, '팬'과 '안티'의 규모는 항상 정비례한다. (따라서 노빠질 또한 안티 형성을 우려해 자제할 필요가 없다.)

 

중앙에서 유시민이, 지방에서 안희정이 짜들어 가는 이 거대한 프레임을 보라. 나는 그들 사이에 모종의 결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3.

그러나 저들 역시 최선의 전략을 갖고 이번 전쟁에 임하고 있으니 주시해야 한다. 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행동해야 한다. 만약 이번 지방선거에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겨우 승리한다면, 다음 대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들의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존재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나는 그런 정치가 우리에게 이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6월 2일 꼭 투표하십시오.

국민참여당 당원으로서, 참여당에 찍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굳이 노빠, 유빠들이 싫으시다면, 1번 말고 아무거나 일단 찍어만 주십시오.

파란색 1번은, 지금은 곤란하니 잠시만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이창동 칸 각본상 수상에 부쳐

우리에게도 '월드 클래스'의 인물이 제법 있는데, 알아보는 이는 적다.

 

세계를 걷는 이들의 보폭에 맞추긴 어려울지언정, 발목을 붙들진 말자.

 

세계와 함께 숨쉬고 세계와 함께 보는 이런 '큰사람'들을, 샘내어 따돌리고 끝내 쓰러뜨리고 마는 자들이 있다. 배금주의의 시대를 맞아 득세한 소인배들이다.

(<운명이다>가 자서전이라는 건 그저 정치적인 레토릭이다. <운명이다>는 위인전이다. 그의 마지막 선택 때문에 자서전의 형식을 빌어 입었을 뿐.)

 

사람 그릇의 크기는, 피와 아의 경계를 얼만큼한 범위에 설정하느냐로 알아볼 수 있다. 누구는 대기권을 울타리 삼아 대륙과 대륙 사이를 유유히 넘나드는데, 소인배들은 고작 손톱 만한 땅덩어리에 철조망을 치고 담벼락을 높이는 일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고 싶을까- 하긴, 그들로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 보이는 세상의 전부니까.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는 법. 안희정.

처음으로 안희정의 연설을 보았다. 그는 먼 지역 사람인데다, 감옥을 드나들고, 또 그림자 안에 있던 사람이므로, 그의 연설을 자연스레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게 당연하다.

 

그는, 그가 딴지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슬픈 이유로 2인자의 노선을 택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기독교에 비유하자면 '십자가의 보혈'이 된다.

작년 5월 23일 아침까지만 해도 안희정에겐 미래가 없었다. 노무현이 몸을 던진 이유 중에는, 그의 앞길을 열어주려 한 의도가 분명히 포함된다. ("나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 노무현은 안희정의 책(<담금질>)이라도 팔아주려다 한번 크게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도지사 출마 연설에서 안희정은 "내가 노무현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이 또한 노무현이 인정한 바가 영상기록 증거로 남아 있다. 내가 참여정부의 노선을 강력히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그들은 기록하고 또 공개했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은 그래서 중요하다. 쥐가 쏠기 전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대놓고 자신의 장점을 자랑질 하는 것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건 (정치) 목숨을 건 도박과 같다. 진실로 한 점 숨겨둔 감춰진 일이 없는 사람만이 이 전략을 통해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한 점 부끄럽게 살기 쉬운가. 따라서 부끄러울 일 없이 살아온 삶이란, 일찍부터 삶을 형이상학적 가치에 따라 계획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안희정은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조숙한 학생이었다. 비록 그 의기는 크게 한번 좌절되기도 한 모양이지만.

 

그 좌절을 통해 그는 1인자 대신 2인자의 길을 택했다. 충청도 사람 답다. 경상도에 의리가, 전라도에 기백이 있다면, 충청도에는 끈기가 있다. (경상도에는 87년 대선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김영삼이 하고, 다음엔 김대중을 밀어주자"라는 여론이 있었다. 그리고 80년 광주 이전까지만 해도, 박정희는 전라도에서도 김대중과 박빙을 이뤘다.)

 

이에 비해 은근하고 끈질긴 충청도인의 기질은 김종필이나 이회창과 같은 '최고의 2인자'를 여럿 탄생시켰다. 최고의 2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1인자의 자질을 가진 이가 2인자의 위치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1인자의 자질을 가진 이라 할지라도, 대세가 따르지 않는데 무리하게 1인자의 위치를 탐내게 되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어쨌거나 결국 1인자의 자리를 거머쥐지 못한 이들 덕분에, 충청도는 지역감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안희정은 연설을 통해 지역감정을 대놓고 도발했다. 그는 당당하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즉 전라도와 경상도의 두 대표선수를 합당한 댓가를 치르고 계승했다.

그는 참여정부 5년 내내 실업자 신세였고, 노무현 사후엔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그에게 민주당 잔류가 위험했던 까닭은, 노무현 살해의 종범들과 동침하는 것이 되므로 '골수노빠'로 불리는 분들의 적극적 비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극성맞은 분들의 타겟이 되면, 정치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는 이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들을 끝내 견뎌냈다. 그리고 이제 '지역 감정 해소'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김대중과 노무현 공동의 이상'을 계승하기로 선언함로써 그는 이 골수노빠를 납득시켰다.

 

우리나라 정치엔 2인자가 성공적으로 1인자를 계승한 전례가 없다. 언제나 그들은 1인자에 대한 부정 위에 자신의 기초를 쌓으려다 무너졌다.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가 지금까지처럼 현 정부의 폭주를 관망하며 2인자의 역할을 소홀히 하다간 다른 2인자들의 전례를 따르게 될 것이다. 2012년에는 안희정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몸조심하셔야겠다. 알아볼 줄 아는 자가 저들에 있다면 지금부터 싹을 잘라버리려 할 것이다. 그를 지키려면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

 

 

키워드 -

 

2인자 노선
2인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또 경험해본 사람

충청도 사람=말이 느리다.(어눌하다)
안희정, "충청도의 새 역사" 싸이즈 대박.

지역통합("김대중 노무현의 꿈 이어나가고 싶다는 것이 꿈")
2인자가 1인자를 승계하는 방법.
'진성노빠'들에게 민주당 잔류의 명분 명백히 설명.

자기 장점 대놓고 말하기. 당당함. 부끄러워 할 일이 없음.

"안희정이 누구야?"
정보 전파의 기회. = 컨텐츠가 있다면 입소문을 탄다.

서울 집값이 충청 발전(세종시)과 직결되는 이유 명백히 설명.
"봉급생활자의 집세(및 대출이자) 부담"
세종시는 이미 합의한 바가 있는 법안. ('절대 명분')

최초의 충청 출신 대통령 가능성
최초는 언제나 환영받는다.

말씨가 바뀌지 않은 사람. 말씨의 중요성.(무의식적인 인상비평을 좌우한다)

 

"386의 마지막 과제와 임무"
중앙권력에 대항하는 분권의 시대를 열어야


"전국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
골고루 잘사는=평등 강조=좌파적 시각을 자연스럽게 침투시킨다

 

세대론
근대화 세대 / 민주화 세대, 그리고 자유분방한 20대-상실의 세대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짧은 기록

 

종일 잔 비가 뿌렸지만 그래도 광장은 가득 채웠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전야

1.

최초 나의 참여 목적은, 진짜를 더 가까이서 관찰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어느새 시선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잊은 채, 이기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 차 있다. 정말 이기고 싶다.

 

 

2.

대중심리 조작 전문가들의 기술이 필요한 시점에 그들이 일부라도 나선 모양이다. 다행이다. 정치는 많은 좋은 상품들이 적절한 마케팅의 기회를 얻지 못해 사라지고 마는 시장이다. 노무현이 죽음으로 독려한 덕분에 아마도, 전국 곳곳에서 좋은 사람들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꽤나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론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벼든 파리떼도 제법 있을 것이다마는 어쩔 수가 없다. 옥석을 모두 가려내기엔 상황이 급박하다.

 

 

3.

한나라당의 패배 만큼이나 노무현의 승리도 필요하다. 이는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르다.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죽음을 주도하거나 적어도 관망했다. 일이 일이니 만큼, 적어도 정치인이라면 그 상황을 방조하거나 관망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얼마간 애꿎은 피해자가 되더라도 불평해선 곤란하다.

 

저들은 씻기 어려운 죄를 지었다. 이 죄를 보는 관점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을 보는 중세 유럽인의 시각과 닮았다. 600만을 잡아 죽일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번 죄를 지은 자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저들은 다시 나기 어려운 강한 영혼을 끝내 꺾었다. 벌을 받아야 한다. 혹시 이 징죄의 과정에 휘말려 다소간의 피해를 입는 이들도 감수해야 한다. 모두가 죄인이다.(신해철 씨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나. 당신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직도 조용히 있으면 안 되지.) 우리에겐 시끄럽게 떠들 권리가 있다.

 

 

4.

노무현의 승리는, 사람에겐 언제나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파괴는 언제나 또다른 창조의 시작이지만, 그 파괴와 창조 사이의 시간차는 작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희망은 창조의 동력이 된다.

내겐 이번 선거가 그를 해친 자들을 벌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가 이루고자 했던 계획들을 좀더 진행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욕심이 있다. 그는 계획을 길게 잡는 사람이었다. 많은 계획의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고, 그의 사람들이 그것들을 상당 부분 복원해내고 또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5.

내 힘은 오직 1/n 뿐이다. 이걸 잊으면 조급해지고 오만해진다. 판단을 그르친다. 판단력을 잃은 시선으로 사물을 제대로 볼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 그가 헛죽었을 리 없다.

 

 

2010년 5월 7일 금요일

...

스무 살 대학시절, 군에서 막 돌아온 한 선배는 술만 먹으면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푸념하듯 말하곤 했다. "삶은 왜 이리도 남루하냐." 서른셋 먹은 요즘, 이 문장이 어른거린다.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하고. 내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면, 높이서 내려다보면, 흘낏 보고 지나칠 수만 있으면, 삶은 결이 참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