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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죽음의 5단계_2003.07.07

시한부 환자가 죽음의 선고를 받으면 '부정-분노-협상-우울-용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부정'이란, "내가 그런 불치병에 걸렸을리 없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부정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환자는 자신이 감기와 같은 '흔한 질병'에 감염되었을 뿐인데 돌팔이 의사가 잘못 진단했다는 둥, 검사과정에서 차트가 바뀌었다는 둥 하는 상상을 하며 온갖 추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분노'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관대 이렇게 죽어야 되냐!"며 모호한 대상에게 적개심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환자는 자신이 받은 사형선고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온갖 사소한 죄에 비해 너무 큰 것이라는 것에 분노합니다. 인과응보라는 건 단지 도덕적 상상력의 산물일 뿐, 운명의 세 여신은 그저 실을 뽑고, 짜고 끊어버릴 뿐인데 말이지요. 환자 가족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협상'이란, "앞으론 착하게 살테니, 부동산 투기 안 할테니, 자기 전에 이빨 잘 닦을테니, 기타 등등등... 제발 살려주세요~"하는 단계입니다. 착하게 산다고 커져버린 암 덩어리가 갑자기 두부로 변하거나, 이빨 열심히 닦는다고 썩어버린 허파에 다시 광명이 비추는 것도 아니건만 환자는 자신의 또다른 희생을 통해 확정된 죽음을 연기하고자 안간힘을 다 합니다.

 

"어차피 곧 죽을 것, 밥은 먹어서 뭐하나..." 이것은 제 4단계, '우울'입니다. 간절한 기원도, 어떤 새로운 치료법도 무용한 것을 확인한 환자는 결국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불현듯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말기 암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이라고 해봐야 기껏 진통제겠지만, 치료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포기해버린 환자는 가족의 애타는 마음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죽음의 마지막 단계에서 찬연한 빛을 발합니다. 제 5단계 '용납'은 죽음의 순간을 아름답게 해주는 인간 정신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 예수가 남긴 마지막 말이지요. 인간에게 있어 육체의 죽음은 분명 피할 수 없는 것, 오늘 살아있는 자라 할지라도 내일은 죽은 자일지도 모릅니다. 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침착한 걸음으로 교수대의 계단을 오릅니다. 유머감각이 충분한 환자라면 지켜보며 눈물짓는 가족들에게 끝내주는 농담 한마디를 던져주고 갈 수도 있겠지요.

 

김정현의 히트작 '아버지'에는 위와 같은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 소설에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좀 구리다...라고 생각합니다만... -_-

 

만에 하나 제게도 이런 죽음의 초대장이 온다면, 다른 건 몰라도 '부정'의 단계만큼은 그저 건너뛸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가지의 바램이 더 허용될 수 있다면 모두 건너뛰고 마지막 단계까지 달려가 초연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박수와 웃음 속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안녕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삶의 쓴 잔을 받을 것인가, 던져버릴 것인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 위해서_2002.06.25

지난 토요일,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하철에서 스포츠 신문 쪼가리에 정신팔고 있다 그만 지갑을 놓고 내린 것인데,

나름대로 신속한 조치를 취했지만, 아직도 녀석의 행방은 묘연하다.

 

(마침 그날은 모처럼의 현금이 두둑하게 들어있던 날이었다.

망할...! 하지만 그래, 그건 포기할 수 있다.)

 

아무튼 오늘은 월급날이고,

지난 한달 내 노동력의 대가는 한빛은행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그래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것이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이다.(-_-;)

 

카드는 지갑과 함께 사라졌으므로 나는 통장을 가지고 은행을 찾았다.

 

"내 돈 내놔요 -_-+"

"손님, 신분증을 제시해 주세요~ ^-^"

 

-_- 신분증? 그거 지갑하고 같이 사라졌다.

 

"이봐요, 여기 본인이 통장들고 왔잖아요.-_-+"

"손님은 서명으로 통장을 만드셨기 때문에 신분증 없이는 거래를 하실 수 없사와요~^-^"

 

나는 어거지를 부려볼까 하다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기사 나아닌 누군가 내 통장만 덜렁 들고와서 나라고 우겼을 때

그에게 내 돈을 몽땅 내주는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나라는 것을 내 스스로 증명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좀 씁쓸하다.

 

 

... 뭐 별로 새로울 것은 없는 이야기다.

... 그리고 월급날인 오늘, 내 주머니 속에는

    그녀가 사준 지하철 패스 한장과

    그녀가 쥐어준 천원짜리 몇 장 밖에 없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중이다_2001.09.05

신(神)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신은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신은 주사위를 굴려* 세계를 창조했다는 믿음(?)"이다.

전자에 대해서라면 많은 크리스찬 및 정통주의자들이 이미 많은 설명을 해온 방식이므로 일단 첨언을 미뤄야겠다. 그런데 '주사위 굴리는 신'에 대한 불신은 21세기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시대라는 의식이 번져갈수록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적 사고방식에 이름붙이기를 즐기는 학자들(대개 그들은 '철학자'로 불린다)에 따르면, 이러한 유행은 지난 두차례의 세계대전에 의해 인간성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되었고, 8~90년대 인간 신뢰의 마지막 실험이라 할 수 있을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붕괴를 맞으며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한다.
결국 신은 아주 무능하게 되어버렸다. 하기사 나치의 유태인 학살도, 수천만이 죽어간 전쟁의 병화도 막질 못했고, 당신의 이름을 배제했다 뿐이지 어찌 보면 가장 기독교적인 생활 공동체를 꿈꾸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마저 방치했으니 무능하다기 보다는 애당초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신은 아니었겠다는 의심도 넉넉히 받을만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주사위 굴리는 신의 신봉자(-_-;)들에게서는 대개 위악의 혐의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이 제공하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도 깨어지고, 인간이 만들어갈 천국에 대한 환상조차 깨져버린 그들은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은 없다.'라든지, '돈이 신이다'라든지,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라든지 하는 말들에 자조와 냉소를 보태서 뱉어놓곤 하는 것이다.
이들은 100%, 불행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렇게 말했단다. "설사 진리는 그리스도의 밖에 있다고 할지라도, 아니 그리스도 안에는 진리가 있지 않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의 곁에 있고 싶다."고.
그가 그토록 부정의 논리를 개발해내면서도, 끝까지 그안에 남아있기를 소망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답이 현재 우리의 불행한 형제들-나를 포함한-에게도 무관할 수 없는 그 무엇이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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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주사위 놀이를 즐기는 중이다', 함성호

진지한 '톰과 제리' - <스튜어트 리틀>_2001.07.09

어제 철물점을 지키며(-_-;) '스튜어트 리틀'이란 비됴를 빌려다 봤다.

사실 귀엽게 만들어진 CG 쥐쉑기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빌린 거라 작품성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근데 이게 문제의식만큼은 제법 물건인 것 같다.

 

- 겉으로 드러나는 영화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행복하기 짝이 없는 '리틀' 가족이 고아원에서 쥐쉑기인 '스튜어트'를 입양한다. 주목적은 외아들인 '조지'의 동생을 얻어준다는 것이었는데, 조지는 함께 놀 수가 없는 쥐쉑기인 스튜어트를 반기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애완고양이 '스노우벨'은 "쥐의 애완동물이 될 수는 없다"고 반발(-_-; 그, 그럴만 하다...).

  그렇지만 화목한 리틀 부부는 스튜어트를 사랑으로 감싸고, 마침내 시내 호숫가에서 열린 모형 보트 경주에서 스튜어트의 활약으로 조지가 우승을 차지하자 조지도 스튜어트가 한 '가족'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조지의 우승 축하파티가 한창일때 한 쌍의 쥐쉑기 부부가 리틀가를 방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스튜어트의 친부모라고 주장하며 스튜어트를 데리고 가야한다는 것. 비로소 서로 가족으로 인정하며 행복을 느끼던 스튜어트와 리틀가족은 상심하지만 '친가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며 스튜어트를 떠나보내는데...

(... ^^; 비됴 소개를 보면 대충 이런 식으로 끝남)

 

- 이 영화의 일반적인 평가

  이 영화가 나올 당시 주목받았던 부분은 주인공 쥐쉑기를 묘사하는데 동원된 CG 기술이었다.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쥐쉑기가 이 영화에서는 실사와 거의 구분되질 않는다. 그런데 털 하나 하나까지 완벽하게 묘사했다는 이 영화의 '기술' 측면은 침이 마를 찬사를 받았지만, 작품평에 이르면 좀 가혹하다.

  '톰과 제리'의 아류라는 둥, 권선징악적 이야기 구조를 못 벗어났다는 둥. 기껏 잘 봐준 평이라는 것이 '헐리우드식' 가족애를 다룬 아동영화란 정도다.

 

- 왜 리틀 부부는 쥐쉑기인 스튜어트를 입양하려 했을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간들은 쥐쉑기인 스튜어트가 인간처럼 '말하고/듣고/읽고'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스튜어트는 쥐쉑기다'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러니 쥐쉑기인 스튜어트가 고아원에서 키워지고, 입양이 되는 것이다. 거기다 정작 리틀 부부는 그나마 스튜어트가 '쥐쉑기'인 것에 대한 거부반응조차 없다. 이것은 스노우벨이 그저 애완고양이로 취급되는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고양이들끼리 있을 때는 의인화되지만 인간과는 대화하지 못한다.)

- 스튜어트는 쥐가 아니다.

  나는 이 영화가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리틀 부부는 인종차별 문제(또는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대해 아주 개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들의 시각에 스튜어트는 단지 좀 작고 생김새가 다른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쉽게 스튜어트를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크기가 다른' 스튜어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아들 조지가 스튜어트를 거부하는 것은 다른 인종의 인간을 입양하는데서도 나타날 수 있을만한 가족내 갈등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스튜어트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고양이 무리들은 'KKK'와 같은 극우단체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들의 행동대장(?) '스모키'는 '힘과 야성'을 특히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톰과 제리'식 유머를 빌려 어린이들에게 아주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을 교육할 수 있는 영화가 된다. 그들이 쥐쉑기인 스튜어트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흑인 형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도 보다 커지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이 영화가 첨단 CG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톰과 제리 식의 '유치한' 쇼를 벌이지 않으며,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내지 않았다면, 정말 극히 소수의 비평가들이나 좋아할 '암울한' 영화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정작 그런 영화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엄마와 술먹었다_2001.06.19

논밭이 갈라지며 농작물은 말라죽어가고 있다지만, 당장 그것이 농산물 파동으로, 점심값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는 다음에야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주며 "내 탓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사실 그건 내탓이 아니니까.

 

엄마와 동동주를 두 병 나눠 마셨다. 딴 술은 모르겠는데 동동주는 한 병이면 나는 아주, 아~주 적절히 취한다. 두 병은 다음 날 출근에 애로사항이 있으니 곤란하고, 한 병, 딱 한 병이 적당하다. 나는 지금 아주 적당하게, 적당히 몽롱하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내 행복을 만끽할 만큼 취해있다. 내 글에 맞춤법에 시비를 걸지 않도록.

 

아버지와는 많은 술을 마셔왔다. 나는 예의바르게도 아버지에게 술을 배웠고 아버지와의 술자리를 즐기며, 아버지의 그 끊기지 않는 잔소리를 즐기는 편이다. 적어도 아버지의 지독하게 고집센 자기주장이 끊기지 않는 이상, 난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난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엄마와의 술은 흔한 일이 아니다. 아니, 처음이다. 어차피 많은 기대를 걸지 않은 엄마에게 나는 많은 의지를 하지 않으려 해왔다.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부른다.

 

다들, 너무 많은 문제를 지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남의 짐을 함께 져 줄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짐의 무게를 과소평가함으로써 여유를 과시해왔는데, 그닥 잘한 짓도 아닌 듯 싶다.

 

술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지금 지껄인 이 넋두리를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다. 더 술이 깨기전에 [등록]을 누르고 이 정리되지 않는 변태적 노출욕구를 만족시켜줘야 하겠다. 그러고 싶다.

3년 전 오늘..._2001.06.09

1998년 6월 9일 나는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소했다.

 

입영통지서에는 14시까지 입소하라고 되어있었고,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친구 한 놈은 12시 반쯤에 의정부역에 도착했다. 우린 별로 식욕을 느끼지 않았지만 무언가 먹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그 기념적인 짜장면을 먹었다.  

 

의정부역에서 보충대앞까지 버스로 10여분? 정류장에서도 보충대 입구까지는 거리가 있었지만, 어느 철없는 연인들은 벌써 전봇대를 껴안고 있었다. 거기쯤에서 나는 그날 아침 해지한 삐삐의 음성사서함을 한 번 확인해보았던 것 같다.(당연히 불통이었다)

 

보충대 연병장에는(그때까지만해도 '운동장'이었지만) 꽤 많은 젊은이들이 가족 또는 친구, 애인을 동반한 채 헤매다니고 있었다. 우리 국군의 선진문화를 선전하는 전시관(?) 같은 것도 있었는데 나와 친구는 그곳을 구경하며 전시용 내무실의 '각이 덜 잡힌' 모포를 트집잡았더랬다.(사실은 '칼각'이었다.)

 

입소할 '장정'(입영대상자)들과 배웅 나온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충대 장교는 우리 국군의 선진 병영문화를 선전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고 안심하지는 않는 듯 했다.

 

2시가 되자 호루라기가 울렸고 장정들은 가족의 손을 놓고 집합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마른 목을 축이고 싶어 수돗가로 다가가던 중이었다. 내 동생과 친구 놈은 느긋하게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때 검은 화이바를 쓴 군인이 소리를 지르며 장정들을 줄세웠다. 나는 얼결에 수돗가 근처의 대열에 줄세워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목격한 친구놈은 후일 코뚜레 꿰어 끌려가는 소 같았노라고 했고, 나는 새처럼 날아갔다고 변명했다.

 

이게 딱 3년전 오늘의 이야기다.

과연 여자는 만들어지는가_2001.05.29

과연 성역할의 구분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문화적인 강요'에 의해서 여성을 수동적, 소극적, 보수적이게 하는 것일까?

 

섹스에 임하는 남성과 여성의 자세는 문화적 강요를 배제하더라도 남성은 능동적, 여성은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일단 남성의 성기는 성적 흥분에 의해 발기하지 않으면 (생식을 위한)성행위가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여성은 강간에 의해서도 임신을 할 수 있을만큼 성적쾌락과 생식이 분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삽입 이후에도 사정을 위해 남성은 힘들게 움직여야 하지만(^^;) 여성은 가만히 누워있어도 충분하다. ('기승위'를 예로 든 반론은 무의미할 것 같다. 성행위시 암컷이 능동적일 수도 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생식 이후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이는 있다. 여성(암컷)은 자기 배로 새끼를 길러 낳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자기의 2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2세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 것(젖)은 다름아닌 여성(암컷)의 몸에서 분비된다. 이렇게 볼 때, 씨만 뿌리고 나면 자신의 2세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애매한 남성(수컷)으로서는 당연히 2세에 대한 집착(애착?)이 덜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보다 외향적인 성향(밖으로 나도는-_-)을 갖게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차이-'내 것'임을 확인할 수 없다는-가 쉽게 동족을 살해하는 남성의 공격적 성향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내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성(암컷)을 독점하여(결혼, 부족사회 구성 등을 통해) 다른 남성(수컷)의 접근을 막아야했고, 이것이 내 것임을 확인할 수 없는 타자에 대해서 미련없이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 남성성(비정함)을 발휘할 수 있게한 원인이 아닐까?

 

거기다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인 체력의 차이가 있다. 확신할 수 없는 실험결과이긴 하지만, 같은 환경, 같은 기간을 훈련한다면 선천적인 자질의 절대적인 열세가 없는 이상 남성의 체력은 여성보다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부정한다고 해도, 여성의 평균키가 남성보다 10cm정도나 작은 것은 여성이 못먹고 못자라서가 아닐 것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대체로 육체적 힘의 세기는 덩치에 비례한다.

그렇다면 약육강식을 제1원리로 하는 세계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필연적이랄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상기한 몇가지 짧은 생각에 근거하여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고, 인간의 역사는 물리적 힘보다 남여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운 정신적 힘에 점점 더 권력을 인정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역할의 구분은 온전히 문화결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만약 세계의 약육강식 논리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극복해야할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경쟁'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에서 상대적으로 경쟁에 약한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남성의 관용을 기대하거나 실력행사를 통해 남성의 권위를 빼앗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더욱이 남성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여성이 승리하여 남성과 동일한, 혹은 더 나은 권리를 쟁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경쟁과 약탈의 원리에 충실한 남성성이 여성에게로 전이된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팬더 이야기_2001.04.29

- 동물원에서 가장 비싼 동물은?

 

 실물의 팬더를 구경해본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다. 동물원 구경이라는 게 철들고 나면 그다지 흥미로운 유희로 취급되지 않는 까닭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몸값이 비싼 동물은 다름아닌 '팬더'이다.

 

 갑작스럽게 팬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제 본 케이블 TV프로그램에서 팬더가 나왔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케이블 TV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다)

암튼 거 놈 참 특이한 넘이더군. -_-;

 

 동물원에서 거의 항상 볼 수 있는 동물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암컷의 롤랜드 고릴라라고 한다. 이 놈은 일단 몸값만 3억 5천만원 정도에 식성 또한 복잡하여 철마다 각종 과일을 공급해줘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내가 사고로 죽어도 보험금이 이쯤 나올지 의심스럽다 -_-;) 다음이 훈련 잘 된 돌고래로 이 녀석도 몸값만 1억 5천만원. 덩치가 커서 비싸 보이는 아시아 코끼리는 5천만원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코끼리 역시 식비는 따로 계산된다.(주워들은 얘기로는 번식 잘하는 초식동물들 -아마 양, 소 류가 아닐까 싶다-은 경우에 따라 육식동물들의 먹이로도 쓴다는 것 같다. -_-)

 

 이것과 비교해서 팬더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일단 팬더는 '공식적으로'는 매매가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만 서식하는 이 까다로운 동물은 중국 정부에 의해 강력하게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팬더를 보호할 만한 시설이 갖춰져 있는가-하는 엄격한 심사 후에서야 타국의 동물원에 팬더를 '임대'를 해주는데, 이 임대료만 연간 100만 달러란다.

물론 유지비는 임대한 동물원에서 해결할 문제고, 어마어마한 보험금도 걸려 있다 한다. 더욱이 임대한 팬더가 번식을 해서 새끼를 낳을 경우 그 새끼에 대한 권리는 중국 정부가 가진다.

 

 팬더는 모두 알다시피 대나무만 먹는다. 그것도 아무 대나무나 먹는게 아니라 중국 어느 지방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종자의 것만 먹는다. 그런데 대나무는 사실 그다지 영양가가 높은 식물이 아니다. 거기다 팬더의 위장은 도무지 초식동물의 그것이 아니란다. 대개 초식동물의 장은 길고 섬유질을 소화 시키기 위한 기관이 발달한데 비해 팬더의 위장은 육식 동물인 곰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중 14시간 이상을 먹는데 소비해야 한다고 한다.

 더욱 치명적인 부분은 팬더는 성욕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숙한 암컷 팬더는 1년에 한 달 정도의 발정기가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 기간이 수컷의 발정기와 서로 달라 하루나 이틀 정도 밖에 겹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팬더는 혼자 살기를 좋아해서 제 때 제 짝을 발견하는 일도 드물다고 한다. 또한 제대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도 암컷 팬더는 도무지 새끼를 기르는데 소질이 없어서 젖주는 일을 생략하기 일쑤고 때로는 실수로(?) 밟아버리기도 한다고...

 

 내가 팬더에 관한 그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팬더는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상 자연스럽게 도태되었어야 할 동물이구나...라는 점이었다. '자연'에서는 '본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묘사되는 동물의 왕국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집에서 놀면서 CA TV를 봤는데-현장르포...?_2001.04.16

현장르포 제3지대-라는 것의 재방송이었다.

'농사를 배우는(?) 세계의 10대 아이들'... 이런 제목이었는데(방금 본 것도 까먹는다, 나는 -_-;) 전주 어디에 있다는 일종의 대안학교가 나왔다. 이름은 '한국예농학교'.

 

그 학교의 기본적인 교육이념은 -농사(유기농)를 통해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을 육성한다-로서, 한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각국 출신의  12~19세의 학생들이 산골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들은 학력 인증도 되지 않는 그 학교에서 오전엔 일반 고교의 기본과목-국,영,수-을 공부하고(국,영,수 외의 과목은 명심보감-이라든가 하는 뭔가 다른 것들이라고 한다)

오후엔 밭에나가 농사짓고, 일과후에는 학생마다 한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새벽 4시가 채 못되어 용달차에 탄 열명의 사내에들이 거름을 퍼 나르는 장면으로 시직된 이 프로그램은 내겐 놀라운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작업중 다친 발을 씻으며 '신세대 농사꾼은 외모도 가꿀 줄 알아야 한다'며 웃던 소녀(한 손엔 귀뚜라미를  잡아들고 있었다 -_-;). 다들 결코 예쁜 얼굴이 아니었지만 어찌나 예뻐들 보이던지.

취재기간중 새로 입학해 들어온 12살의 일본 여자아이는 언니가 벌써 둘이나  같은 학교에서 몇년째 생활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치과의사고 어머니는 조그맣게 농사를 짓는다고(?) 하던데, 얼라들이 그 학교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배웠으면 한단다. 아무튼 요 꼬맹이는 밭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면서(늦겨울이었다) 열심히 일하는데, 옆에서 가르치던 전문가 농사꾼(^^;) 아저씨가 '참 야무지다'고 감탄한다.

저희들끼리 서로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이 따로 있고, 연습한 악기로 양로원 같은 곳으로 위문공연도 한단다. 부채춤을 배우는 일본아이, 상모를 돌리는 미국아이. 참 대단들 했다.

 

결국 그렇게 배운 것들이 그들의 삶을 이뤄가게 될 거다. 한국말을 배워 돌아가 한국말을 가르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진짜로 신세대 농사꾼이 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무슨 목적으로 공부를 하던 공통된 한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진짜로 함께' 살아가는 삶 말이다.

자기 삶을 설명할 확실한 언어를 알고있는 그들이 정말 멋져 보였다.

 

마지막으로, 주제와 관련없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제(思第)관계 였다. 밭고랑을 파주는 교장선생님과 그곳에 감자를 심는 제자. 한밤중에 습격처럼 찾아와 생일을 축하해주는 제자들 앞에서 너무 기뻐 울지도 못하겠다는 선생님.

어떻게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막상 써놓고 보니 감동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몹쓸 글이 되고 말았다.

 

그저께 저녁 뉴스를 보다가..._2002.05.10

특파원 - "오늘 오후 또다시 팔레스타인 난민의 자살 폭탄 테러가 있었습니다... 주절주절

               ...사상자는 8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나불나불..."

 

아나운서 - "80여명이면 이번에는 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군요~" ((^-^) <- 이런얼굴로...)

 

.

.

.. 꽤 많은?

 

 

... 뉴스보다가 웃겨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

 

하기사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보복조치로 체포, 연행된 팔레스타인 사람들 숫자라던지,

그 와중에 죽고 다쳤을 사람들의 숫자는 언급조차 없었으니...

... 80여명 죽고 다친거야 "꽤 많은" 숫자겠네.... -_-

 

 

... 대량생산형 죽음에야 진작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무감각해지는 내가 마땅찮다.  

 

신이여, 당신의 이름으로 가장 큰 죄악이 저질러지고 있나이다...

 

 

 

가장 유감스러운 사실은. 우리의 무능한 신은. 저 독신자들에게. 날벼락 한 방 정도 때려줄 만큼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생각하며_2002.06.14

이번 선거 투표율이 48% 랍니다. -_- 훗~ 48%...
유권자 수가 10만명인 선거구에서 60%의 지지로 당선된 후보라면,
4만 8천명의 60%니까, 28,800명의 지지가 되겠군요 -_-
그럼 다시 유권자 대비 비율로 보면 28.8% ... 훗~

반장선거도 꼴보기가 이것보단 낫겠습니다 -_-

오늘 투표를 하고 와서, 왔다갔다 하면서, 또 TV 가끔 힐끔힐끔 보면서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둥, 역사상 최악의 투표율이라는 둥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줄곧 제 머리속을 맴돈 것은 제가 군대있었을 적의 기억입니다.

당시 보직이 인사과 행정병이었던 저는 13대 국회의원 선거 부재자투표에
선거관리병으로 파견근무를 했더랬는데 말이죠...
그때 저와 함께 뺑이를 치던 한 전우가 투덜대더군요...

"아~ 씨 왜 귀찮게 투표같은 걸 시켜가지고 X뺑이 치게 하나?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군바리들은 그냥 이런 거 안하면 안되나?"

그와 함께 유권자 명단확인하랴, 지역별/부대별로 투표용지 나누랴 땀 흘리던 저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할 말을 잊었습니다.
저 역시
후보들에 대한 정보도 별반 없이 막연히
이름과 사진, 프로필만 보고 말그대로 찍.어.야.되는 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유감스러워 하고는 있었습니다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갖게된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를,
군대에서나마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럭저럭 긍지까지도 가지고 있었더랬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제 머리속을 때린 생각은

'아- 이런 자들에게도 투표권을 굳이 줘야만 하는가?'
였습니다.

오늘 투표장 안가고 딴 짓하신 분들... (아, 물론 투표권 없는 분들은 빼고 말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지역행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인물을 뽑는 권리를,
행사할 30여분의 시간(그 이상도 필요 없더군요),
그것을 포기하게 한 당신의 바쁜 용무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난 정치엔 관심없어."
라는 변명은 당신의 권리를 박탈해도 좋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옛날에 중국의 요라는 임금은
'누가 임금인지도 모르는 상태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정치'
라고 했습니다만,
지금이 태평성대 요순시대 입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것도 한 권리이겠습니다. 전 이것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놈이 그놈이라 찍을 놈이 있어야지."
라고 변명하시는 분들...
얼마나 자세히 그들의 공약을, 그들의 프로필을, 그들의 정치적 가치관을
관심갖고 바라보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엔 딴나라당, 새천년미친당, 개발독재연합, 남조선노동당 말고도
다른 정당 많습니다.
저도 오늘 투표장 가서야 알았지만 '녹색평화당'도 있고 '사회당'도 있더군요 -_-;
결과는 아직 다 나오진 않았지만,
이런 정당에서 나온 후보들, 다 떨어졌을 겁니다. 뻔합니다.
바로 당신이 그들을 찍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후보들, 찍어서 당선되어봐야 아무 힘 못쓸 지도 모릅니다.
이런 후보들, 일껏 당선시켜줘봐야 곧 태극기 흔들면서 다른당 입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른 넘들이랑 똑같은 짓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당신은 당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어야 했습니다.
전체 유권자의 28% 지지를 받았건, 실질적인 지지율이 10%짜리 당선자건 간에
유감스럽게도 그 당선자가 당신의 머리위에
적어도 앞으로 4년간, 헌법으로 보장된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할테니까요.

여기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그 정치적 지배력에서 '상.관.없.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당신과 당신의 아버님의 소득에서 일정부분을 당연스럽게 뜯어갈테고
당신이 사먹는 과자 한 개, 빵 한 덩이, 담배 한 가치, 껌 한 조각에도
'부가가치세'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운영자금인 '세금'이 붙어있으니까 말입니다.

당신은 오늘 30분의 시간을 들여
"에이 X발. 찍을 놈 없네."하고 투덜거리며
하다못해 백지를 그냥 투표함에 넣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면 수십군데에다 마구 도장을 찍어댄다던가 -_-;)
투표장에 갔다 왔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기권'과 '무효표'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효표는 투표율에는 합산이 되지만, 지지율에는 합산이 되지 않습니다.
투표장까지 가서 굳이 무효표를 만드는 정치적 의사표현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하는 '경고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이 버린 한표를 위해
우리의 선배들이 흘렸을 피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선발된 200여명의 사람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대.통.령을 뽑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_-

나를 지배할 규칙을 만들고 굴릴 사람을 뽑을 권리

이것이 몇시간 전에는 당신 손에 있었습니다.
설사 당신이 저와 다른 사람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다음에는 당신의 권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투표장 다녀오는데 기껏해야 30분입니다.
쓰레빠(-_-;) 질질 끌고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합니다.

이명박 탄핵, 그리고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한 단상_2008.05.06

2008년 5월 5일 현재, 다음 아고라 이명박 탄핵 청원 서명 110만명 돌파. 그리고 현재로선 이명박 탄핵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를 법률적으로 유효하게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그나마 힘이 있는-인 통합민주당에서 재협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전망은 비관적이다.

취임 2개월 밖에 안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법률적으로 일단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대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경우를 제외하면 형사소추를 받지 않으며, 탄핵 사유를 구성하기 위해선 직무집행에 있어 위헌이나 법률 위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취임 전까지 이명박이 무슨 죄를 지었건 '직무상 위법행위'가 아닌 이상 이제와서 탄핵 사유가 될 수 없고, 현재 이명박을 개명박으로 보게 만드는 일련의 뻘짓들도 어쨌거나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통치행위로서 탄핵 사유는 될 수 없다.

설사 탄핵사유를 어떻게든 구성한다 하더라도 의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비록 17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아직 20여일 남았지만 18대 총선에서 개박살이 난 야권에게서 과반수의 발의와 2/3의 동의로 얻어 탄핵을 의결하길 바라는 건 환타지에 불과하다.

결국 남은 카드는 검역주권 회복을 명분으로 하는 쇠고기 재협상론뿐인데, 이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이 직접 미국에 가서 합의하고 정식으로 체결한 국가간 합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이 더이상 하나의 국가로서 약속을 이행할 능력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짓 잘하는 나라로 딱 떠오르는 두 나라가 미국과 북한인데, 미국은 슈퍼파워니 지들 맘대로 하고도 후환이 두렵지 않겠지만, 북한 꼴을 보라- 지구촌 왕따다.

결국 일본 무슨 관리가 했다는 말처럼 등신외교 한 번 한 덕에 한국은 독박을 쓰고도 빼도 박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는 거다.

거의 가능성이 없지만 그나마 희망적인 앞으로의 스토리는 둘 중 하나가 되겠다.

하나는 분노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끊임없이 평화시위를 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결국 위헌적 행위-시위진압 중 총기 사용이라든가-를 함으로써 탄핵사유를 완성해주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극도로 불리한 여론의 등쌀에 못이겨 박근혜 계파가 분당에 준하는 수준으로 한나라당이 분열시킨 후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연합해 이명박을 고사시키는 경우이다.

그러나 '그나마 희망적'이라는 이 두가지 스토리 역시 여전히 절망적인 까닭은,

어떤 경우라도 통합민주당 찌끄레기들을 비롯한 소위 '진보세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과, 무엇보다 이미 잃어버린 검역주권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되찾아 올 수 없다는 점 때문이며,

더욱이 색깔론, 물타기 등 썩은 보수언론의 대반격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이 모든 난리법석이 장기화 될수록 냄비는 식어가고, 결국 모두 잊혀질 거란 전망이 그 어떤 경우의 수보다도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 _2008.06.03

백지를 보면 말을 잊는다.

 

속에 끓는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될 언어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 글빨 너무 좋다.

글로 먹고살아볼 궁리하고 있는 내겐 절망적인 사실이다. ㅎㅎ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 되었다. 그 질은 몰라도 평균치는 엄청나게 높아진 것이다.

나쁘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를 '하향평준화'라고 하지만,

'평준화'만 맞고 '하향'은 틀린 것 같다.

 

소통의 수단이 발전했다. 망할 인터넷 혹은 축복받을 인터넷.

'생각'이 '발화'되어 '타인'에게 '전달'되기까지 필요한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옛날엔 상상도 못할만큼 저렴해졌다.

언제나 공정한 경쟁은 더 나은 품질을 창출한다.

이건 증명된 자연계의 공리다. 적자생존.

인터넷이 감소시킨 '소통의 비용'은 '소통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웹2.0의 세상이다.

기존의 '웹, 네트워크,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은 단순한 참조관계였다면,

오늘날 엄청난 기운으로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웹2.0은

참조관계의 연쇄가 새로운-메타적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수년전 인터넷 시장에서

'프리챌'은 보다 더 웹2.0적인 개념의 수용을 거부한 이유로 '싸이월드'에게 패했다.

'네이버'는 다른 포털들보다 일찍 웹2.0을 받아들여 성공했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웹2.0을 더 깊이 받아들인 '다음'에게 밀려날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준비하고 있다는 민주주의2.0의 시스템이 기대된다.

정확히 어떤 형태의 '마당(場)'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형태적으로는 정치토론사이트로서

'각성한 시민(개인)의 민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나아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정도로 이해하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호응이 있을런지.

 

'더 완전한 민주주의 실현'은 '더 완전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곧 '더 진보한 문명'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인터넷의 지리멸렬한, 중구난방의, 지나치게 직접민주주의적인 상황에

섣불리 절망하려 한 적도 있었다.(요건 좀 이타적 절망에 해당하겠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장강의 흐름은 도도하다.

강은 굽어 흘러도 결국 바다로 흐른다.

 

그러니 나는 나의 뗏목을 찾아야한다.

 

이문열의 '위대한 포퓰리즘' 발언에 부쳐_2008.06.12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포퓰리즘, 혹은 군중심리에 대해 대단히 경계하는 입장에 서 있으며, 이는 나 역시 공감하는 바이다.
많은 블로거들이 결국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데에서 그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또 한가지 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의 '쇠고기 파동'(?)에는 분명히 포퓰리즘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인류에게 역사란 것이 시작된 이래로 대중이 진정 이성과 합리만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푸코는 오히려 광기의 역사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 발언에서 이문열은 역시 여론의 질타를 염두에 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2MB의 '천민'자본주의는 그에게 있어 대중의 광기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역겨운 그 무엇이었을테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라면 2MB의 대통령 당첨에서도 포퓰리즘의 준동을 읽기는 읽었을 것이다.

이문열에게는 미안하게도, 그가 아무래도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평가를 드릴 수밖에 없겠다. 그는 '선비'의 이상을 꿈꾼다. 모든 이상이 그러하듯이 실현만 가능하다면 그 역시 하나의 낙원의 약속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따라잡기 힘에 부쳐하는 "디지털"이라는 요소는 아무래도 문명의 미래에 있어 상당한 비중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나갈 듯 싶다.

그저 나는, 그가 언젠가 말했듯이 그의 최고의 작품이 그의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기를 바란다. 

샤워에 비롯한 단상_2008.07.21

'몰입' 상태에서는 샤워가 매우 즐겁다. 하긴 즐거운 것이 샤워 뿐이랴마는...
그래서 오래 하게 된다. 즐거운 것은 오래 누리고 싶은 것이므로.


온 몸의 세포가 살아난 듯한 감각은 샤워기의 물줄기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물은 적당한 온수가 좋다. 사람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적당한 온수를 즐긴다.

 

온 몸에 비누칠을 하는 것은 자기 애무이다.
자기와의 성교를 자위라고 한다면, 자기 애무란 것도 없으란 법 없다.
난 해본 적 없지만, 맛사지샵이나 아무튼 그런 데서 해준다는 오일 맛사지 같은 것도
결국은 성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모든 촉감은 성감으로 환원될 수 있고,
그렇다면 모든 감각 역시 성감으로 환원된다. 물론 이 때의 '성감'은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애무-부드럽게 어루만짐-는 매우 성적이다.


이와 같은 '샤워의 즐거움'은 종종 혹은 자주 '귀찮음'과 전쟁을 벌인다.
만사가 귀찮은 상태- 몹시 피로한 경우 사람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휴식은 닫는 것이 가능한 모든 감각을 닫고 뇌가 그동안 수용된 정보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근육세포들은 손상된 세포질과 아세트알데히드(던가?)와 같은 피로물질들을 내보내며 근육을 정화하고,
신경세포들-특히 뇌-은 온갖 기록으로 얼기설기 얽힌 시냅스들을
디스크 정리, 조각 모음, 백업하듯이 가다듬는 것이다.


한때 인간 존재의 핵으로서의 뇌, 특히 대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에 빠진 적이 있었다.
'영혼이라든가 하는 비물질적인 것을 배제할 때, 내 뇌가 나로 인식하는 나 자신이라면,
내 뇌는 무엇에 의해 어떻게 통제되는가?'
흔히 알려진 신을 믿는 편한 녀석들이야 그게 바로 영혼이고 신이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건 아직 이 차원에서 거론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영혼을 뇌세포 간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내 의문은 답을 찾았다.
우리는 네트워크에 참여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나를 통제하지만 나의 행동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필연적인 우연인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대답을 듣고 싶다.
당신은 유신론자인가? 아니면 무신론자인가?
'신 따위 알 게 뭐야? (경제도 어려운데ㅋㅋ)'라고 한다면 나는 되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그 절망을 견디고 있는가?"


당신이 유신론자, 그러니까 물적 인간 이외의 어떤 초월적인 의지가 존재하고 작용한다고 믿는다면
역시 나는 묻는다.
"당신의 기도는 응답받고 있는가?"


전자는 근대에 와서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리가 된 것 같고,
후자는 수 천년을 살아남은 신앙으로 존재하고 있다.


일부 기도가 응답받고 있다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왜, 그 또는 그녀 또는 그것은 모든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절망을 견뎌낸 실존의 동료들에게는 박수를.
욕망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다. No pain, no gain.
욕망을 한정하면, 고통도 한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다.

 

아이는 정말, 폭발적인 축복이다.
당신의 유전자는 끊임없이 당신에게 충동질한다. 섹스를 하라. 그리고 아이를 낳아라.


결국 모든 문제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서 출발한다.
무한의 존재가 자기 복제의 필요성을 느낄리 없다.
더 많은 나를 닮은 다른 나를 낳아라, 모든 욕망은 여기서 시작한다. 영생.
이것은 유한한 존재가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이다.


자기 혐오에 빠진 범죄자 따위를 반례로 들진 말아주길.
어떤 이야기든 비교되기 위해선 같은 차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한 명의 사람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는 다른 네트워크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더 큰 규모의 사건을 일으키곤 하니까.


오히려 아이를 낳고나서 철든 이야기라던가
여성들에게선 비인간적인 중범죄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가 더 보편적일 것이다.
탄생의 신비를 직접 체험하고 그 가능성을 품은 여성들로선
그 파괴가 뜻하는 바를 남성들보단 훨씬 더 직관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인류사에서 끊임없이 여성성의 숭배가 있어왔다는 것 또한 이를 간증한다.

 


남성의 섹스를 여성성의 숭배 행위로 관찰하면 더욱 흥미롭다.
오, 부디 '숭배'를 애무와 혼동하지 않기를.
인간은 제물의 목을 따며 숭배하기도 했고, 산 채로 불에 굽기도,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매달려 있다.
갖다붙이자면, 섹스를 주로 남성이 주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하겠다.


대부분의 여성들에겐 아주 바람직하지 않을,
발기-삽입-사정의 3단 콤보는 내가 말하는 '섹스'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여성이라도 이런 행위를 '섹스'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남성에게는 1회다.
아무리 화려한 환락의 시간을 보냈건, '푹찍, 끝!'이었건 1회는 1회다.
때로 나른한 연인이 어깻죽지를 파고들던, 훌쩍 일어나 속옷과 화대를 챙기던 간에
사정 후에 밀려오는 피로와 허무감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남성은 섹스에 임할 때 상대의 기쁨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최선의 보답을 받는 건 아니지만. ㅋㅋ
대상의 기쁨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 숭배 아닌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성性_2008.06.29ex여친글

안녕하세요? 나른한 저요 저요입니다.

 

장마도 한 풀 꺽인듯한 즈음입니다. 여전히 덥군요..

저는 이달 초 몸살기운으로 일주일을 앓고 다음 일주일은 괜찮나하였더니 또 심한 목감기로 며칠을 더 앓았습니다.

기침 때문에 밤에 자다가 깨기를 수번, 입안은 헐어터지고 감기약 탓인지 잠은 쏟아지고..

하여 나름 바쁘게 보냈답니다. 후후 ㅠㅜ

 

 

 

그래서(?) 오늘은 좀 예민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뻔뻔한 저요 저요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몰라서요.

이번 요즘의 말씀은 교주님께서 설說하신 인간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세하게 파고들면 얼마든지 길어질 수 있는 얘기지만 저 또한 교주님과 마찬가지로 집중력이 조루(?)인 관계로, 그리고 핵심만 치고 빠지는 것이 저의 특기이기 때문에 그리 장황하게 되진 않을 것 같군요..헤헤

 

 

 

일찌기 교주님께서는 인간이 지닌 성욕은

태어날 때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

선천적인 욕망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ㅡ조금 넓게 보자면ㅡ 태어나서 부모와의 스킨쉽에서 오는 안락함과 다양한 미감과 촉감을 향한 호기심, 배변의 기쁨 등이 아이가 갖는, 자기애라는 성애는 아닐까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외의 다른 존재, 타인을 인식할 무렵부터는 이성애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거죠.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비율로 많은 사람들이 2차 성징이 드러나는 사춘기 이전에 자위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성욕이 2세의 생산만을 위한 거라면 사춘기 이전에 자위경험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주변의 영향을 받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게 순수하게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본능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한 본능은 몸이 다 자라서 2세를 낳을 수 있게된 후에도, 사회적 금전적으로 2세를 기를 수 있을 때까지 금기됩니다. 그 전 아이에게 성욕은 알아선 안될 것, 나쁘고 더러운 것, 사회적인 금전적인 책임이 요구되는 것으로 여겨짐니다.

(심지어 여성과 남성의 전쟁에서 서로를 해칠수도 있는 무기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요.)

 

처음 이성애를 느낄 때부터 부정적으로 학습된 성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명랑해질 순 없겠죠. 그 아이는 여전히 성욕을 느끼는 자신을 두려워합니다. 느끼는 것은 나쁜 것이라 배웠거든요.

 

처음 아기가 지닌 천진한 자기애에서 이성애로 흐르던 자연스런 본능은 그렇게 오랫동안 터부라는 댐 안에 갖힙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으나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지요.

 

세대의 독립을 결혼으로 결정짓고 양육자가 부모로 한정되어 있는 요즘 사회에서 책임 지지않는 성은 무가치하다는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두고 쉬쉬하기보다는 열린 가슴으로 드러내놓고 말하고 교류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열린 그 안에서 충분히 책임을 논할 수도 있구요. 하여 교주님께서는 성교육이 중요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만사에 두려워 물리치는 것보다 넓은 마음으로 품어 안으면 당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명확하고 정확하게, 이성애가 생기는 시기부터 열린 성교육과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는

저요 저요의 요즘의 말씀이었습니다.

교주님의 덕, 차가운 자비_ex여친글2008.06.18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맹랑한 저요저요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며칠, 날이 미친듯이 덥더니 장마라는군요.

장마라고는 해도 하늘이 찢어진 것 같은 박력은 없이 다만 비가 오다 말다 할 뿐이네요.

 

저는 아침나절에 우산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나갈 때에 외간 남자의 일인용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 그의 한 쪽 어깨를 적시게 하는 호사도 누려보았답니다. (같이 교육받는 남자분이었습니다^^) 헤헤

 

 

 

이번 요즘의 말씀은 우리 교주님을 일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무감정하고 덕이 없는 이'라며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의 진술입니다.

 

저는 교주님의 덕悳을 '차가운 자비'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나오는 사신四神의 별칭 중에 백호를 '차가운 자비'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이름만 차용하였음을 밝힘니다.)

자비라는 것은 따습고 온건한 것인데 차가운 자비라니 이건 무슨 말장난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만은, 열에 들뜬 이마를 짚어주는 서늘한 물수건 정도로 비유해도 괜찮을는지요?

 

일전에 교주님 앞에서 제가 투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꿍얼꿍얼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고, 딴엔 최선을 다했는데 일이 안되었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정색하여 말하길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게으름을 피웠으며 그러한 결과가 이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단호한 부정에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주님이 사용하셨던 단어인 '최선'이나 '게으름'은 여느 사람이 말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최선'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하여야 하는' 이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게으름'이란 말에는 '죄악'의 꼬리표를 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대화 중에 '최선'이나 '게으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우리는 긴장하기 마련이지요. 어느 결에 자신이 비판적으로 말되어질까봐 예민해집니다.

 

하지만 교주님이 사용했던 단어는 단어 그대로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비난한 것이 아니었지요. 하여 그의 말은 차가웠으나 저를 상처입히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말하고, 감정적으로 말하고, 말한 것을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말하기에 열중해있던 저에게는 이채로운 사건이었습니다.

감정이 배제된 그의 말하기는 자칫 무감동하여 차갑게 들릴 수 있으나 결코 대상을 상처입힐 마음이 없는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주님의 덕悳을 차가운 자비, 공정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멋진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 주인공 포르코는 전쟁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스스로 돼지로 변한 인물입니다.

저는 현대에서 인간 종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다만 파란 하늘을 눈동자에 품은 한 마리 명랑한 보노보가 되고 싶습니다. (보노보 : 침팬치속에 속하는 두 종중에 하나임)

 

하지만 교주님은 제게 도망치지 말라고 지엄하게 이르십니다. 비전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권하십니다.

인간 종의 생태가 제겐 혼란스럽고 시절은 하 수상하지만,

오늘도 정성껏 한 자 한 자 적어봅니다.

 

재밌게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뵙지요.

 

간결하고 냉정한 인공지능 로봇 취향_IDSolution2008.09.01

간결하고 냉정한 인공지능 로봇 취향

메마르고 독창적인. 당신은 전통적인 엔지니어의 취향입니다.

당신은 인과관계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입니다. "그래서? 그게 왜 그렇게 됐는데?"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죠. 마치 if-then 구문이 골수 깊이 박힌 엔지니어와 같다고나 할까요. 질서정연하지 않은, 장황한 감정에 의존하는 순정 만화 영화 소설은 당신이 좀처럼 가까이 하기가 힘들 겁니다.


"공각 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
임무 달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 군인.
쿠사나기 소령의 철두철미함과 냉혹한 결단력은 당신 취향의 이상형입니다.

당신은 너무 흔하고 뻔한 것에 쉽게 싫증내는 비주류 지향입니다. 매일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는 멜로 드라마, 매일 똑같이 성형한 연예인들이 나오는 TV 광고, 매일 똑같은 멜로디와 창법의 발라드 노래, 당신에겐 모두 짜증나는 것들입니다. 도대체 이런 똑같은 것들을 지겨워 하지도 않고 즐겨 보는 사람들은 제정신일까 궁금합니다.

현실 세계에선 '까다로운' 비주류일지 모르지만, 인터넷 시대에 당신 같은 부류는 주류가 될 수 있습니다. 지루하고 개념없는 대중에 반항적인, 현실에 불만 가득한 사람끼리 모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무개념 인간들을 조롱할 수 있을테니까요.


좋아하는 것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특이한 것이 좋습니다. 딱 부러지게 예를 들자면 SF 소설이죠. 물론 SF 소설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SF 소설의 상당수는 장황하게 길기만 하니까요. 취향이 상당히 특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대중적인 영화 소설 음악에 끌리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특별히 당신의 취향에 시금석 같은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은 뭔가 새롭고 독창적일 것, 그러나 당신이 아는 상식과 논리에 벗어나지 않을 것. 이 정도 조건이면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근접할 수 있을 겁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광고 정도면 괜찮을까요?


저주하는 것
비논리, 비이성, 군중심리, 이유도 묻지 않는 따라쟁이들, 오빠부대. 당신이 저주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당신 취향만 특별히 저주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말이죠.

사실 당신은 특별히 어떤 취향을 혐오하거나 멸시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주도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남들이 뭘 하던 당신은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편입니다. 문제는 남들이 관심없는 취향을 당신에게 들이밀 때죠. 상호존중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당신은 그저 평안히 세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펼쳐두기..


 

영화 <왓 위민 원트> 보다가... 저거 혹시?_2008.08.17일기

빈둥거리며 케이블 채널 돌리다 <왓 위민 원트> 방영 중.

 

주인공 멜 깁슨에게 여자들의 생각이 들리게 되면서 당황한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데,

의사가 주인공에게 생각을 읽히고 기겁을 하다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냐고 묻는다.

케이블이 아니었으면 이 부분의 정확한 대사를 들어봤을텐데- 아무튼

 

그 장면에서 누워있던 멜 깁슨이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담배(?)를 피운 정신분석의는 심상치 않은(?) 미소를 지으며 멜 깁슨을 상담하기 시작하고...

 

과연 담배였을까? ㅋ

KBS시사 투나잇 보다가... 헉, 황석영!_일기2008.08.14

KBS2 [시사투나잇] 8/14...

우리나라 시사프로 수준 무진장 높아졌구만...

아 ㅅㅂ 공중파가 황석영을 인터뷰하는데 이걸 진보라고 안하면 뭐라 하겠냐구.

 

 

황석영 안 늙네... 그 빛나는 정신.

 

이 사람도 디지털시대의 키워드가 '소통'임을 발견해 버렸다. 역시 천재!

황석영은 이문열과 같은 고민을 했지만 다른 결론을 내렸다.

 

 

앵커 클로징 멘트 "머리가 희끗해져도 시대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작가"

늙어가는 작가에게 이보다 멋진 찬사가 있겠냐구.

 

역시 <오래된 정원>은 너무 오래된 감방생활 후유증 같은 작품이었고,

<손님>부터가 진짜 황석영이다.

세기의 필독서로 꼽아 모자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