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Hom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Home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차일피일

금연

 

- 자나깨나 당신 생각 뿐이오.

 

그리고 블로그 이전.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What a freak?

번뇌가 욕망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욕망이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이들은 욕망을 죄의식과 연결시킴으로써 욕망의 생성과 발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죄없는 욕망 앞에서라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욕망, 혹은 통제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한 것으로 예측되는 어떤 욕망들은,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해서 공포의 대상이 된다. 팔을 베고 잠들었다 문득 깨어났는데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대체로, 무심코 저지른 사소한 행동-팔을 베고 잠들었는데-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실-'팔 병신'이 됐다-을 일으키곤 한다.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사람이란 아무래도, 저항할 근거를 찾게 된다. 공포가 절실할수록 그 근거는 처절한 것이 된다. (누군가는 인간의 행동을 촉발하는 두 가지 동기로 욕망과 공포를 들기도 했다. 욕망이 능동, 공포가 피동이다.)

나는 사랑을, 문명화된 양식의 소유욕과 성욕으로 정의하고 있다. 소유욕은 사랑의 인간적인 면, 성욕은 동물적인 면이다. 이 둘은 때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사랑을 시작한 것 같다. 부끄럽게도.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친구2

친구라는 말로부터 내가 두 번째로 떠올리는 인물은 L군이다. 이 친구가 두 번째가 된 까닭은 늦게 만난 탓도 있지만, 이 자의 성향이 어떤 면에 대해선 나와 완전한 대극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그 까닭을 같은 기질이 다른 환경 속에 자라난 탓 아니겠는가- 추측한다.) 이 친구와 교류를 시작할 무렵, 나는 그를 "적(敵)"이라 부르곤 했다.

 

 

중국 삼국시대에 위나라에는 양호라는 장수가, 오나라에는 육항이라는 장수가 있었다고 한다. 꽤나 끗발 날리는 장수들이었다곤 하는데 그래봤자, 말하자면 대하 드라마 삼국지 제작 후기 쯤에나 잠깐 등장하는 식이니 별 비중은 없는 이름들이다. 아무튼 이 양반들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 하니, 이런 고사가 '호항지교'라는 말로 전한다.

 

272년, ... 하루는 양호와 육항이 같은 시간대에 사냥을 나갔는데 양호는 오나라 군대의 구역을 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냥을 하였고 자신의 구역 안에서 오나라의 화살에 맞아 쓰러진 짐승은 모두 오나라에 돌려주었다. 이에 약간 오기가 생긴 육항은 사냥감을 돌려주러 온 병사에게 양호가 술을 좋아하는지 물었으며 병사가 "술은 잘 마시지 못하시지만 좋은 술이면 아주 잘 드십니다"라고 말하였고 육항은 웃으며 "좋은 술이 있으니 사냥감의 답례로 장군에게 바치거라"하며 술을 한 병 내주었고 병사가 그 술을 양호에게 바치자 양호는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술을 한 병 모두 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수들은 "적군의 장수가 보내온 술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함부로 드셔도 됩니까?"라며 걱정했으나 양호는 "육항은 그렇게 치사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대답하였고 하루는 육항이 병으로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접한 양호는 병사에게 시켜서 육항에게 좋은 약을 지어 보내도록 하였다. 육항은 양호가 보낸 약을 보고 "이 자가 내가 보낸 술값을 보내왔구나"라며 약을 먹었는데 오나라 장수들도 양호의 장수들처럼 약을 먹는 것을 말렸으나 육항은 개의치 않고 약을 먹고 쾌차하였다.
...
274년, 다시 병으로 누운 육항은 죽기 전 서릉의 중요성을 손호(오나라 왕)에게 알려 서릉의 방비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긴 상소문을 올렸으나 손호는 이를 무시하였고 육항은 49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육항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양호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나라를 멸할 수 없다며 ... 오나라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 사마염(위나라 왕)은 양호가 죽은 뒤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 오나라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 이로써 약 100년간 이어진 삼국지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내용출처)

 

적이란 내게 이런 의미이다. 어쩌면 이 친구 덕분에 나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품기 이전에, 한 번 정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쩐 일인지 요즘엔 좀 낙심한 듯하다. 안빈낙도할 타입이 아닌데 그러고 있으니 영 어울리지가 않는다. 이봐, 아직은 우리 한 번 더 실패해도 괜찮아. 불혹이라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고독이라는 것이, 이제와 새삼 더 두려워해야 할 무엇은 아니지 않아?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효도관광 후기

 

사반세기(四半世期)만의 쾌거를 이뤘다.

SF도 싫고, 우주선도 싫고, 외계인도 싫고, 일단 춥고 멀리 가기 귀찮아 싫으시다던 근엄한 울 아버지,

객석으로 날아 든 CS-40 최루탄 깡통에 움찔! 하셨다.

(다른 모든 어르신들과 함께. 우연찮게도 유난히 많더라.)

 

움찔!은 몰입의 증거다.

몰입하실 수 있었으면 됐다. 몰입할 수 있으면 된다. 해서, 감상은 따로 여쭙지 않았다.

 

다음 대선엔 유시민에 투표하실 확률이 1%쯤 상승했다.

 

2010년 2월 6일 토요일

착한 척

 

나는 언젠가부터 대놓고 착한 척을 하게 되었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성격이 잘난 척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니 착한 척이라도 하게 된 모양이다. 잘나고 싶은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내 경우엔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얼마나 잘난 척을 좋아하는지, 무엇 하나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항상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한 구멍만 파는 끈기가 부족했고, 결국 뭐 하나 잘난 구석이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잘난 척은 사람들이 통 받아주질 않고, 아 젠장, 착한 척이라면 좀 더 쉽겠거니 생각한 게다. 좋아. 착한 척을 하자. 음... 근데 뭐가 착한 거지?

착한 게 뭔지를 알아야 무슨 척을 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과연 무엇이 착한 것인가 곰곰 생각해보게 된 거다.

 

이런저런 생각의 과정이 있었지만 귀찮으니 과감히 생략하고, 노무현이 바로 착한 사람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런저런 상황 아래서 노무현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기준 삼아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모든 상황에서 그와 같은(같을 거라고 추정되는) 선택을 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쯤은 착한 척하지 않아도 착한 사람이 진작 되어 있었겠지. 나는 고해할 수 없는 죄를 많이 지었고, 앞으로 죄가 될 지 모를 선택들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착한 척일 뿐이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친구 1

내겐 정치를 시키고 싶은 벗이 하나 있다.

어떤 의미에선 내게 단 하나뿐인 이 친구가 최초 사학과를 지원했던 것은 어쩌면 청소년기 나와의 교류에서 조금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도무지 학자 타입이 아닌 녀석이 사학과를 지원했다 했을 때는 역시 납득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녀석은 정치외교학과로 학적을 옮겼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졸업을 했다. 정외과라면 납득할 수 있다. 정확히 뭘 배우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에겐 리더십이 있었다. 항상 무리의 중심에 있었고, 무리를 이끌었다. 대체로 선생들과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의 적과도 원만히 지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항상 유지했다. 녀석이 학생회장이니 반장 부반장 따위를 별로 하지 않은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녀석에게는 의로운 구석이 있었다. 바로 내가 녀석에게 반한 부분이다. 물론 오늘날의 왕따현상이나 '이지메'의 원류라 할 따돌림이 우리 시절에도 있었지만, 녀석은 그런 아이들에게 다소 짖궃게 굴기는 할지언정, 누구도 무리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스스로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녀석의 무리 안에 끼어들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에겐 용기가 있었다. 굳이 나누자면 나는 스스로를 비겁한 쪽으로 분류하는 편인데, 그것은 내가 나서야 할 때 침묵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녀석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되면 저가 알아서 나섰고, 누군가가 떠맡기면 피하지 않고 맞섰다.

 

 

녀석에게 생은, 날것 그대로의 것이었을 것이다. 낡은 책 속의 늙은 문자가 아닌, 펄떡이는 삶 속에서 녀석은 녀석의 길을 찾았다. 녀석은 지금 빛나는 사람들을 빛날 수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씩 녀석은 내게 전화를 걸어 푸념같은 말들을 한아름 쏟아놓고선 내 구름 잡는 소리에 잔뜩 고개를 주억거리고 돌아가곤 하는데, 여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녀석은 자신이 그리던 길 위에서 얼마간 비껴나 있는 듯하다. 충분히 치열하게 살지 못한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시련과 권태가 그에게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요즘 녀석과 전화를 맺을 때는, 어떻게든 휴가를 내 적어도 일주일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고하곤 한다. 왠지 녀석은 굵어져가는 허리와 반대로 점점 메말라 가는 느낌이다. (점점 바싹 말라가는 내가 이런 얘길 했다는 걸 알면 녀석은 피식 웃을 테지만) 지난 십 수년간 쉴새없이 퍼올린 네 안의 우물이, 드디어 이제 바닥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는 재능이나 그릇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청춘이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확신하건대 최근 몇년간 자네는 단 몇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것이다.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일기는 일기장에

오래 전 별생각없이 스크랩해두었던 동영상을 보고 잠시 또 운다.
병신짓이지만 부끄럽지 않다. 언젠가 나는 또 이 글을 보고 다시 오늘을 기억해낼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또 얼마간 잊었다.
별 일 없이도 기억은 조금씩 좀먹는다.
나만은 잊지 않기로 했었다.
이렇게 잊어갈 지도 모른다고, 조금 더 울기도 했다.

무심코 클릭한 동영상이 다행스럽다. 나는 아직 울 수 있다.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디씨 압갤 정모 후기

생판 모르는 고딩이들이랑 정모를 했다. 정확히 말해보자면 현역 고딩 하나, 막 수능 친 고딩 하나, 3년 전에 수능 친 고딩 하나. 본인들은 각기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를 10여년 전에 지나친 나로서는 다 거기서 거기다. 나를 돌아봐도 그렇고.

나이 먹으면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다.

 

근 보름 전부터 영화 <아바타>에 푹 빠져 있었다. 영상미도 영상미지만, 제임스 카메론이 4억 달러나 들여서 이런 착한 영화를 만들어준 것이 고마워서라도 다시 볼 때마다 먹먹했다. 첨단 중에서도 최첨단 문명의 힘을 빌려 만든 반문명 영화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건 기분 좋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통 열광하는 이가 없기에, 꾸역꾸역 대한민국 '잉여'의 총본산 '디씨'를 찾았다. 아니나다를까 벌써부터 '아바타 갤러리'가 만들어져 있다. 게시물 '리젠 속도(인터넷 게시판에서 글 따위가 여러 사용자에 의해 등록되는 양)'도 만만치 않은 것이 꽤나 활성화된 것 같았다. 이들의 화제는 온통 <아바타>였다.

 

반가운 마음에 진작 써둔 리뷰를 퍼올리고, 과연 얘들은 어떻게 노는 걸까 궁금해 같이 댓글놀이를 하며 지켜보는데, 마침 정모를 하잔다. 나야 먹고 죽을래도 주말에 약속이 없는 사람,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정체불명의 괴한이 나타난다 해도 나 역시 장년의 남성, 피해야 할 이유도 없고.

 

정모 하면 뭐할까, 하는데 나오는 얘기들 역시 대략 10년 전에 즐기던 것들이다. 허허, 그래 나도 그 나이 땐 노래방 열심히 다녔니라. (피시방은 없었지만) <아바타>는 3D 뿐만 아니라 4D로도 한다는데, 그거 첫경험이나 좀 하자. 대충 리딩하는 녀석이 눈에 띄길래, 슬쩍 교통정리를 좀 했다. 시간-장소-회비, 사실 이것만 정하면 어떤 사람들끼리라도 만남은 가능하다. 보통 이런 만남이 계획단계에서 파토가 나는 건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이럴 땐 잽싸게 '대장'을 뽑아놓고 딱 저 세 가지만 정한 후 나머진 몽땅 위임하는 게 좋다. 민주주의는 그게 더 효율적일 때나 가치 있는 거다.

 

대장을 뽑아놓고 나니 일사천리로 약속이 잡혔다. 영등포역 9시. 으잉? 9시라니. 최근 몇년간 9시에 취침한 게 9시에 기상한 경우보다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토요일에 일을 나갔다. 원래는 안 나가는 날이다. 날짜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내 자리에 앉아 있는 알바를 보고서야 토요일이란 걸 알았다. (너무 비웃지 않았으면 한다. 뉴턴도 이런 버릇이 있었댄다.) 헛헛한 마음에 근처에 있는 국참당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마침 이 사람들도 죄다 MT를 갔다. 한 명도 남김없이. 허허 이런 젠장.

암튼 이런 심리상태에서 밤을 샜다. 뭔가 딴짓에 열중하다 정신차리고 보니 새벽 2신가 3시쯤 됐더라. 9시까지 영등포로 나가려면 집에서 8시엔 나가야 한다. 씻고 어쩌고 하려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난 잠이 쉽게 드는 타입이 아니라 한두 시간씩 뒤척이곤 한다. 잘해야 2~3시간 자고 나가게 생겼다. 그나마 일어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결국 잠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아니던 하루쯤 밤새는 일이 점점 더 고되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역사적인' 만남, 하루쯤 밤새줄 수 있다.

 

결과적으론, 처음으로 <아바타>를 보다 졸았다. 3D나 4D였으면 안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다섯 번이나 봐서 웃음도 한 템포 일찍, 눈물도 한 템포 일찍 나오는데 어쩌랴. 추격씬에선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더라. 가끔씩 옆자리의 또랑한 눈망울을 훔쳐보며, 아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가는구나 싶었다.

 

이런 '짓' 안 했으면, 내가 언제 내 나이 절반 되는 친구들과 말 섞어볼 수 있었을까.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순수한 녀석들을. 지하철 두 정거장을 걸으면서도 화제가 바닥나지 않는 조잘거림을.

 

이봐 친구들. 횽은 니들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술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술도 한잔 하자꾸나. 우리 이대로, 뭔가에 미치는 것을 겁내지 말자. 세상은, 미친 놈들이 만들어 가는 거야.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I see you."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서른셋의 자화상

유시민은 자신의 서른 살을 맞아 다음과 같은 자서(自敍)를 남겼다. 그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멘토 중 하나다.


서른 살의 자화상_유시민


다시 읽어봐도 정말 그릇의 차이를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제 정신이라면 도저히 이곳에 링크를 걸어두기는 민망할 노릇이지만, 부끄러움은 잠시 덮어두고, 나도 나의 자화상을 그려보기로 한다. 나도 이젠 서른 하고도 셋이다.

 


01.
나는 뭐든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질 못한다. 인정하긴 무척 싫지만, 사실이 그렇다.


어떤 선천적 기질 같은 것이었을까. 내겐 첫 '타인의 시선'이었던 초등1학년 담임선생의 생활 평가는 "두뇌 명석하나 주의가 산만함"이었다. 이 열 두 글자는 이걸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학생들은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던 생활기록부를 꽤나 어릴 적에 보게 된 모양이다. 초등학교를 두 번 전학했는데, 아마도 그 와중이었던 것 같다.


(그땐 "주의 산만함"의 뜻을 몰랐다. 그저 '주의가 山 만하다'는 소린가 흘려 넘기고 '두뇌 명석'에 만족했다. 곧바로 국어사전을 뒤져볼 정도의 부지런함만 내게 있었더라면 오늘의 모습도 조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02.
그래서인지 내 앎이란 것은 넓고 또 얕다. 자랑삼아 말해보자면, 나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평균 이상'의 상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분야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은 가장 대중적인 대화소재랄 수 있는 연예, 스포츠, 자동차 이 세 분야에 대해선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 이슈들의 공통점이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좀 식자연하는 사람들이 주로 기피하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그들 중 하나라고 느낀다.


문제는 내 앎이 얄팍하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한때 '박학다식'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적이 있다. 무슨 '자뻑'이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엷을 薄자에 먹을 食자를 써서 '薄學多食'이었다. 당시 나는 사자성어에 좀 빠져 있었고, 더는 스스로를 '많이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을 때 이 이름도 버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내 學이 薄하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내 얕은 앎은 내 인간관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다.

 

 

03.
사람은 동류를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해본다면, 자신과 종(種)이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은 동류를 좋아한다. 여기서 동류라 함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공통의 관심사는 평화를 주고, 고독을 가져간다. 평화가 지루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혹시라도 자신이 항상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든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 사람을 하나 찔러 볼 일이다. 그리고 감방에서 난동을 좀 피워주면, 몇대쯤 얻어맞을지라도, 적어도 자신이 즐기는 것을 국립 원룸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동류는 곧 동족이다. 명빠나 노빠나 결국은 다 정치 '오타쿠'들인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제각기 머리 속에 품고 있는 세계가 있고, 저마다 다른 종족과 어울려 살아간다. 내 세계엔 이건희가 있지만, 이건희의 세계엔 확실히 내가 없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아마 점(pixel) 하나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터, 이 사실은 내게 별로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불쾌한 기분으로부터 벗어나 유쾌한 기분으로 나아가기 위해, 즉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동족을 찾아나선다.

 


04.
대개 동족은 무리지어 산다. 그런데 나의 동족들은 대체로 돈 버는 재주가 없다. 어느날 갑자기 우화(羽化)한 후 나비처럼 날아가더라는 소식이 간간이 전해오긴 하는데, 그보단 지리멸렬한 인생이 더 많다. 가끔 골방에 모여 앉아 우화의 비법을 수근대기도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외롭게 지낸다. 가끔은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깜빡하기도 하면서.

 


05.
이방인이 어느 동족집단에 끼어들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통과의례는 동족인 척하려는 자를 효과적으로 걸러낸다. 척하려는 자는 대개 신용할 수 없으므로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나는 앞에서 밝힌 이유로 해서, 다양한 통과의례를 비교적 쉽게 통과하는 편이다.

 


06.
무리의 중심에 들어가면 무리의 구루(guru)를 만날 수 있다. 그 형태가 왕정이든 민주정이든, 아니면 아예 아나키즘이든, 무리 중에는 무리를 이끄는 자가 있다. 그들은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근슬쩍 드물게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무리를 조종한다. 그들이 내놓는 말의 무게는 다른 동족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무리의 중심 혹은 변두리 어느곳에서 내가 운좋게 그 구루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곤 한다. 구루들은 모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그들이 내놓는 시험은 여느 통과의례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 박학은 당연히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이대로 남아 무리의 규칙을 배울 것이냐, 아니면 무리를 떠날 것이냐.

 


07.
나는 대체로 떠남을 선택했다. 저 바깥에는 더 넓은 세상이 있다. 어딘가에는 진짜인 나를 알아봐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라는 기대는, 만남과 떠남이 반복되면서 점차 엷어졌다.

 

운좋게도 일찍부터 여러 구루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좋은 구루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세상에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까다로운 안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기란 상실을 겪어보기 전엔 매우 어려운 일이다.

 


08.
결국 나는 떠돌이가 되었다. 지금보단 정신력이 강했던, 혹은 둔감했던 시절에는 그것도 대충 견딜 만했다. 요즘엔 좀 한심한 말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그 시절엔 '이방인(etranger)', '아웃사이더'라는 말이 그리 부정적인 뉘앙스로만 사용되진 않았던 덕분에, 더러 작은 무리의 구루 행세를 할 기회도 있었고 외로움도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나는 흑맥주 스타우트의 초기 CF를 좋아했는데-"덤벼라 세상아!"- 그것이 저 호시절의 기분을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09.
그리고 어느덧 서른셋이 되었다. 이럴 땐 정말 한국식 나이세기가 싫다. 하지만 만으로도 32세.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이립(而立)을 진작 지났다. 이립은 똑바로 선다는 뜻이다. 지학(志學)의 시기에 내 나이 서른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대략 "남자 나이 서른이면 대충 인생의 결론이 보이는 나이"라고 썼다. (당시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이던 선생께서는 그 프린트 뭉치를 받아 들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나는 이제 서른 셋이다. 요즘 나는 내 삶에 대해 묘사할 때, "휘청댄다"라고 쓴다.

 


10.
나는 내 휘청임이 부끄럽다. 아직 내 곁에 남아준 벗들에게 부끄럽고, 아직도 내게 기댈 수 없는 부모에게 부끄럽고, 내 몫의 짐까지 짊어진 아우에게 부끄럽다. 나는 아버지의 묘 앞에서 울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부끄러운 건 바로 열다섯의 나 자신 앞에서이다. 나는 그 녀석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 아니, 살지 않았다.

 


11.
나는 핑계가 많다. 운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그중엔 '나는 치열하지 않았다'는 식의 내'탓'도 섞여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음이 더 큰 죄악이라던데, 그게 바로 내가 잘하는 그것이다.

 


12.
이제 결론을 내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 즉 성공은 운과 환경, 그리고 개인의 노력에 좌우된다.


운은 좋았다.

그중 최고는 정직하고 현명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아버지이다. 무학에 평생을 가난했지만 인격적 품위를 잃지 않으셨다. 아버지를 존경하지 못한 아들들이 쉽게 비뚤어진 것을 나는 많이 보았다. 게다가 나는 단 한 끼도 밥을 굶은 적이 없다. 굶주림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지도 보았다.
어머니도 좋았다. 그리 현명하신 편은 아니었지만,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건강을 잃기 전에나 후에나, 친자식을 정말로 잊어버릴 만큼이나 나와 내 아우를 공정하게 보살피셨다. 백일휴가 복귀 날, 깜빡 두고 간 휴가증을 찾으러 돌아갔을 때 발견한 어머니의 눈물은 언제까지고 잊지 않을 것이다.


환경은 좀 별로였다.

적절한 시기에 "8학군" 진입을 선택한 아버지는 현명했지만, 충분히 악착같지는 못했다. 지금은 불타 없어진 서초동 꽃마을에선 마을 이름에만 꽃이 피었다. 거기서 보낸 유년은 내게 깊은 열등감과 비뚤어진 호승심, 그리고 분수를 모르는 욕심을 남겼다. 이는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도 몇몇 아주 똘똘한 벗을 함께 주었기에, 그냥 만족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의 노력은, 모든 것이 핑계일 수밖에 없을 만큼 명백히 어리석었다. 시야는 좁았고 선택은 항상 일렀으며 또 무모했다. 용기와 무모함을 가르는 기준은 리스크를 알고 있느냐이다. 나는 용기라고 믿었지만 실은 무모함이었다. 이것이 어리석음이다.


운과 환경은 누구도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노력 만큼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내 머리가 내 선택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마음만을 따라왔다. 그리고 그 모든 충동의 결과가 나의 오늘이다. 나는 이 사실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바꿔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왜?

 

 

13.
여전한 문제는 내가 아직도 나의 세계와 그 세계에서 함께 살아갈 동족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잘 모른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선택을 미룰 순 없다. 선택이 필요한 종류의 일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그 시간이 온다. 나는 이미 얼마간 늦은 듯하다.


따라서 다음 계단까지의 남은 삶을 걸고 나는 다시 선택한다. 이번 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길 기대하면서.


첫째, 나는 내 배움을 기록한다. 찌질한 일기든 어설픈 선동이든 소소한 감상의 기록이든, 내겐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 쓰며 사는 삶을 꿈꿨으면서도 항상 다른 것에 취해 있었다. 취함은 쾌락은 줬지만 기능을 닦아주진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열심히, 끈질기게 하지 않는 것을 잘하게 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좋아하는 것은 자주 하기 때문에 잘하게 된다. 많이 쓰다보면 조금은 더 잘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건다.

 

둘째, 나는 결혼하거나 자식을 낳지 않는다. 가능하면 연애도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비용을 최소한으로 한다. 덜 쓸 수 있으면 덜 벌어도 된다. 덜 벌어도 되면 이 소중한 자원을 더 많이, 쓰는 것에 투자할 수 있다. 더 많은 투자는 더 나은 결과의 확률을 높일 것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즉 돈은 시간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시간을 팔아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산다. 마침 하고 싶은 일이 곧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인생은 무척 안락해질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흔치 않다. 팔 수 있는 시간의 값이 너무 싸다면, 하고 싶은 일의 양이라도 줄여야 한다.

삶은 공정하다. 무엇이든 버린 딱 그 만큼만 얻는다. 3천원 짜리 타꼬야키를 포기하면 1천원 짜리 붕어빵을 사먹고도 2천원을 남길 수 있다. 다행히 내겐 미식의 취미가 없다.


 

14.
이 남루한 자서를 쓰며 그나마 스스로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어딘지도 모를 곳을 헤매던 시절도 내게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아니다. 긴 방황이 내게 남겨준 유일한 자산이다.

나는 내 욕망을 그 어느 때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내 욕망은 내 분수를 벗어날 만큼이나 크고 단단하다. 그리고 이 탐스러운 욕망을 난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는 누가 뭐래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서른셋이 다소 불만족스러울지언정 또다시 절망해야 할 만큼 낙오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_발정이 절정에 달한 어느 늦은 새벽에 쓰다.

2010년 1월 4일 월요일

폭설

밤사이 온 천지가 하얗게 덮이었습니다

눈은 낡은 옥탑의 남루도 가려주었고

어쩌면 눈부셔 내 눈도 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서정주의 싯구처럼 눈은 그저 괜찬타, 괜찬타- 하는군요

그 아래 묻힌 것들이 무엇이건

 

달콤한 거짓보단 쓴 진실을 원합니다

봄이 채 오기도 전에 눈은 녹아 사라질 테지요

 

고마워요 숨기지 않아줘서

그래도 눈발이 나리는 날에는 춥지 않아 다행이에요

참 다행입니다

 

 

--------------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서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선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 <진눈깨비>, 기형도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중요한 건 누구의 유전자가 남겨지느냐. 이다.

가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변경될 수 없는 사실 또는 사건에 대해 '이랬으면 저랬으면'하는 미련을 갖는 행위를 찌질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분명 이건 찌질한 게 맞다.

 


세태(世態)는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선 잊어버리는 것을 '쿨함'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한때 나 또한 동조했다.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내 모든 행위의 가치를 판단해줄 존재는 결국 나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세상이 내 눈꺼풀과 함께 닫힌다는 상상은-분명 절망의 한 근거였으되 한편- 어린 나를 우쭐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쿨함'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루키'(적인 것)를 쿨함의 적당한 표본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몇몇 어설픈 흉내쟁이들은 그가
68세대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68은 곧 우리의 386이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어야 했다. 쳐부숴야 할 적(敵)이 명확했던 시대.
물론 이 나약한 용기로 저 터무니없이 비장한 '구국의 강철 대오'에 서지는 못했을 테고,
또는 (십대 때부터 이문열의 세례를 받은 자로서) 딴에는 '시대와의 불화'를 고민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최소한 바위에 던져져 깨어지는 달걀 같은 삶을, 자긍할 수는 있었을 것 같다는 얘기.

나는 노무현의 구두닦이가 되고 싶었다.

 

 

 

이젠 요절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스무 살에 죽는다면 박종철처럼,
서른 살에 죽는다면 예수처럼, 아니면 하다못해 기형도처럼이라도 죽어야 했다.
내 나이 마흔은, 여전히 상상하기 어렵다. 쉰 예순 일흔은, 어휴.

 

 

 

...

 

 

 

서른 두 해 남짓 살아오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있는 집'은 형제가 많더라. 친인척 두루두루.
3남매 정도를 기본으로, 6, 7남매도 적지 않다. 당연히, 먹고살 만하니까 가능한 선택이다.

최근의 저출산 경향은 우리의 유전자 풀로부터 빈자의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배제해나갈 것이다.

 

 

형제는 50%, 사촌은 25%의 유전자를 공유한다.(기대값)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 1:28)"는, '실존(實存)'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낳고 길러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설령 본인이 부정한다 할지라도, 가장 강렬한 충동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욕망을 초월할 만한 그릇이, 나는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세상에 남겨질 내 유일한 피붙이가 될 조카의 성장을 마냥 행복해 할 수가 없다.
나는 시샘하고 있다.

나는 찌질하다.

 

 

 

 

찌질한 소리는 여기까지.

 

 

 

 


인격은 환경의 산물인 동시에 선택의 결과다.
'자아(自我)'를 '분자 단위의 네트워크'로 이해할 경우, 주체성이란 실재할 수 없지만,
개체로서의 인간은, 주체적 선택이 가능하다고 해두는 편이 이해가 편하다.

 

밈(meme)이란 개념이 있다.
이해가 편하다는 말은 밈 복제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내가 남기고자 하는 것은 gene 아닌 meme이다.

 

다행스럽게도, '쿨게이'의 유행은 곧 지나갈 듯하다.

'곧'이 1~2년이 될지 10년이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 '예정된 사실'이 누구에게나 다행스럽지는 않을 수도 있다.

 

누가 먼저 GG칠 것인가. 당신인가 나인가.

 

 

 

 

                     (사진=이석주)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다.


...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

 

궁창의 빈터에서 거대한 허무의 기계를 가동시키는
하늘의 키잡이 늙은 니힐리스트여,
당신인가 나인가
누가 먼저 지칠 것인가

 

 

- 최승자,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中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조증이 온다

1.

세상사가 다시금 눈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쉽사리 진정되질 아니한다. 연달아 피워무는 담배의 탓이 크겠지만 그것을 피워 물게끔 하는 울렁임이 있다. 하나의 중독으로부터 깨어나 다른 중독으로 옮겨가는 중인 듯하다. 두어 달 깊었던 울증이 가고 조증이 오는가 보다.

 

 

2.

한동안 외면하려 애썼던 세인들의 아우성이 다시 귀를 때린다. 엉뚱한 곳을 헤매며 답을 구하는 이들이 안타깝고, 답이란 없다고 믿게 되어버린 이들이 딱하다. "한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국제결혼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치들의 독단, "180 안 되는 남자는 루저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그녀들의 순수한 어리석음, "수능을 망쳤어요, 어찌 살아야 될지 막막"하다는 고교생의 공포 같은 것들,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고도 깊다. 이를, 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어떤 여자아이는, 이런 것들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그런 아이였다-, 항상 슬프고 아팠다. 너무 슬프고 아파서 아무 이야기도 보고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유약함을 나무라곤 했지만, 이제사 좀 알겠다. 많이 아프고 무서운 것이로구나. 느껴버리게 되면.

 

 

 

 

2009년 9월 18일 금요일

로또, 남 얘기 하듯

"한 주의 희망, 로또"라는 카피를 언젠가 본 듯하다.

절묘하지만 아마 오래 쓸 수는 없었을 거다.

 

한 주의 희망이 정말 로또 뿐인 사람이 많은 사회라면, 가망이 없는 사회다.

 

언젠가 한 아우는 자기의 희망은 갓 태어난 자식과, 로또 뿐이라고 했다.

막 사는 나야 그렇다치고 건전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녀석이 왜 그래야하는 건지.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30년만의 국장이라는데

- 명칭은 '국장'인데 지난 '국민장'과의 차이를 못 느끼겠다.

 

- 슬픔이 통 전염되질 않는다...

 

- 영결식이 끝나고 굳이 동교동을 거친 것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가신'들에게 일종의 정통성을 인증하는 세러모니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 전 과정에서 먼저 떠난 노무현을 철저하게 배제한 듯한 느낌이다. 이를 동교동계가 민주세력 내의 정통성을 주장하여 나아가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려 한 수작으로 해석하면 너무 짙은 색안경을 낀 것일까.

사실이든 아니든, 엄숙함만 강조되고 일반의 '참여'가 제한된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그의 후계자들의 한계인지도. 이를 호부견자라 해야 할까.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생의 한 순간도 치열함을 잃지 않았던 거인 한 분이 또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렇게 한 시대, 거인과 영웅의 시대가 끝났다.

살아남은 난쟁이들의 시대는 앞으로 어떻게 풀려갈까...

 

사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고로 명복을 빌지 않고, 다만 한국사 가운데 가장 드높은  명예가 그분의 비석 아래 깃들 것임을 믿는다.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유니클락

유니클락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볼까 했는데 벌써 누가 해놨다.

그것도 무려 소녀시대와 연관지어서 근사하게.

 

소원을 말해봐, 유니클락 - 소녀들의 유혹에 사로잡히다!

 

더 잘 쓸 자신이 없어 링크만 걸어놓는다.

 

유니클락이란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우수 블로거? ㅡ,.ㅡ;;

'틈새시장 공략'(?)의 첫 성과가 나왔다.

 

며칠 <The West Wing>에 푹 빠져 지내느라 업데이트에 소홀했는데, 반성해야겠다.

'제대로 된 리뷰'를 하기에 앞서 어제 써둔 일기를 붙여둔다.

 

 

미드 <웨스트윙>에 빠져 있다. 4년치를 며칠 사이에 '독파(!)'하려니 눈알은 빠질 것 같은데 멈출 수가 없다. 난 항상 적당한 데서 멈추는 데 문제가 있다.

 

두 가지로 중간 감상을 정리해두자면,

 

1. 당장 백악관에 들어가서 참모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2. 야식거리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에 눈에 띈 넝마주이가 검은 머리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는데 2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귀국 이후론 처음이다, 이런 느낌.

바로 그 미드 중독이다.

 

아 시바. '넝마주이'라니. 아무리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고도 하루 만원짜리 한 장 벌기 어려운 직업이라지만 뭔가 덜 경멸적인, 좀 폴리티컬리 커렉트한 호칭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만약 이미 그런 호칭이 이미 존재한다면, 나란 인간이 대한민국 평균보다는 다소 나은 인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맞다고 볼 때, 그 한국어 단어를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역시 좀 더 화가 날 것 같다.

 

 

- 현재 7시즌까지 방영된 모양이다. 7시즌이라...... 폐인생활이 며칠 더... 쿨럭.

 

 

2009년 5월 30일 토요일

노무현을 보내고

살면서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절망하지 않겠다.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읽은척 매뉴얼을 읽고 <상실의 시대> _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2000년)
상세보기

*관련기사 :
딴지일보 읽은척 매뉴얼 시리즈. <상실의 시대>_무라카미 하루키, 너부리.


아 그렇지. 정말 명작이었다. 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ㅎㅎ
이 책은 또한 '쿨함'이라는 트렌드의 효시이기도 했다.

싸구려 왜색 문화의 첨병 같은 것일 거라고, 읽지도 않은 주제에 냉소적으로만 생각했던 책. 스무살 무렵, 당시 여친이 권해주는 바람에 마지못해 읽고나서도 충격은 받았을지언정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 그런데 막상 그 여친과 헤어지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그게 아닌 거라...

결국 그때껏 못벗어났던 이문열을 제쳐놓고(물론 이때까지도 벗어났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하루키에 빠져들었더랬다. <1973년의 핀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댄스 댄스 댄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쫓는 모험>, 기타 여러 단편들까지... 아직도 그는 여러 다른 작가들과 함께 나의 문학적 영웅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하루키가 옴 진리교 사건을 취재해서 썼다는 <언더그라운드>를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스24에 주문을 하려 했으나 품절이었다. 시밤. /엉엉
짬내서 도서관 가서 찾아보고 헌책방도 뒤져봐야겠다.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송윤아 설경구 결혼

송윤아와 설경구가 결혼한댄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 같다.
그들을 응원하고 싶으면서도
주책맞게 뒷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