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9일 금요일
유시민의 선택
패전 직후, '그에겐 없고 노무현에겐 있었던 것'을 찾는 물음이 돌았다.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노무현에겐 유시민이 있는데 유시민에겐 유시민이 없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당장은 '유빠'들이나 공감할 소리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유시민에겐 유시민이 없다. 그럼 유시민은 노무현에게 어떤 존재였기에 유시민에겐 유시민이 없는 걸까.
강금원 翁이 밝혔다시피 유시민은 '親盧'가 아니다. 강 옹의 친은 친족이라는 의미다. 유시민의 포지션은 노무현의 일가(一家)가 아니다. 따라서 강 옹의 증언도 거짓말은 아니다.
돌아 보자. 유시민이 대놓고 '커밍아웃'한 것은 盧대昌 대선 레이스 중반, 정점을 찍은 노풍이 사그라들면서 후보교체론이 시중을 달구던 시점이었다. 유시민은 여기서 노무현이 밀려나면 정치적 생명이 끝장날 것으로 보고, 정치인 노무현을 위한 생명보험으로써 개혁당을 창당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보호하려 나섰다는 점이다.
요즘 식자들은 정책과 이념, 시스템을 논해야지 인물론은 안 된다 하는데, bullshit이다. 정책은 결국 무언가를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이고, 이를 결정하는 건 사람이다. 현대의 민주정은 개인의 판단력 한계를 인정하는 까닭에 다수의 의결이라는 방법을 도입했지만,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 또한 사람이다. 정책과 이념은 실천 이전엔 말의 집적에 불과하고 인물의 행적은 그의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유시민에게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는 이가 없는 건, 그가 말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그의 말들은 그 자신을 보호하기보다는 오로지 국민참여당을 보호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참여당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노무현을 구하려 유시민이 몰아온 한 줌의 의병- 개혁당의 후예들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위기의 순간에 노무현을 외면했던 민주당 주류에 대한 원한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에겐 그 자신이 그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한 정치인의 책임윤리에 따라 이들을 '이기는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
다행히 그에겐 10%가 넘는 친노-비민주당 성향의 지지층이 있다. 세간의 평처럼 확장성은 부족하지만 그 만큼 더 견고하다. 이 10%의 발언권은 그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 하기보다 '킹메이커'의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진정성을 입증할 때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지난 경기지사 선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정치인으로선 매우 특이하게도 그에겐 유독 여성 지지자가 많다. 지적이고 섬세한 그의 이미지가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정치행위에 무관심하던 여성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결과로 보는데, 전례가 없는 만큼 파괴력도 가늠해볼 수 없다. 다만 이는 한편으로는 그의 결정적 한계가 될 수 있다. 남성들은 지적인 것에 대해서도 우열을 가리려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정작 정치시장의 주고객층인 장년 남성들을 사로잡을 방법이 적어도 현재로선 없다. 지적이라는 것은 말 뿐이라는 것으로 쉽게 왜곡되고 만다. 그의 득표력에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이러한 점을 통찰한 결과로 본다. 더군다나 이번 재보선마저 유시민과 참여당은 실력행사에 실패했다. 명색이 정치 지도자가 언제까지고 동정표로 연명할 순 없다.
그가 대권 자체에 뜻이 없음을 천명함으로써 그의 '단점'들은 도리어 그를 누구에게든 가장 강력한 러닝메이트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다. 참여당 또한 승산 없는 게임에 소중한 자원을 탕진하지 않아도 된다.
희망하기론 먼저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나 북한을 대하는 자세 등에서 어긋나는 지점이 적지 않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이나 민주노동당의 민족자주론이나 통하는 바가 있다. 무엇보다 신생-단 1석의 의석조차 없으므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직 공식적으론 출산조차 되지 않은- 국민참여당에겐 민주노동당의 올곧은 전통과 역사가 절실하고, 민주노동당에겐 집권 경험이 있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큰 쓸모가 있을 것이다. 우선 참-노 통합 논의가 본격화 되고, 나아가 그 의제가 정권 교체를 대비하는 예비내각 구성에까지 이르면, 어지간히 굼뜬 민주당도 야권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어떻게 신뢰의 징검다리를 놓느냐다. 유력주자 유시민의 불출마 선언은 그 주춧돌이 될 수 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낙관주의
성선설을 믿는다는 건 본질적으로 환경결정론자라는 뜻이다. 환경결정론자들은 구조주의를 통해 세계를 해석했고, 지옥은 필연이 아니라는 희망을 생산해냈다. 이것은 하나의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어느쪽인지 대략 가늠이 잡힌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선의로 세계를 해석한다)-고 믿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노무현의 자결이 무위로 돌아간다면, 이 나라에서 정치운동을 통해 뭔가를 시도하기는 틀렸다는 뜻이 될 것이다. 뭐, 이미 그렇진 않은 것 같지만.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이창동 칸 각본상 수상에 부쳐
우리에게도 '월드 클래스'의 인물이 제법 있는데, 알아보는 이는 적다.
세계를 걷는 이들의 보폭에 맞추긴 어려울지언정, 발목을 붙들진 말자.
세계와 함께 숨쉬고 세계와 함께 보는 이런 '큰사람'들을, 샘내어 따돌리고 끝내 쓰러뜨리고 마는 자들이 있다. 배금주의의 시대를 맞아 득세한 소인배들이다.
(<운명이다>가 자서전이라는 건 그저 정치적인 레토릭이다. <운명이다>는 위인전이다. 그의 마지막 선택 때문에 자서전의 형식을 빌어 입었을 뿐.)
사람 그릇의 크기는, 피와 아의 경계를 얼만큼한 범위에 설정하느냐로 알아볼 수 있다. 누구는 대기권을 울타리 삼아 대륙과 대륙 사이를 유유히 넘나드는데, 소인배들은 고작 손톱 만한 땅덩어리에 철조망을 치고 담벼락을 높이는 일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고 싶을까- 하긴, 그들로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 보이는 세상의 전부니까.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는 법. 안희정.
처음으로 안희정의 연설을 보았다. 그는 먼 지역 사람인데다, 감옥을 드나들고, 또 그림자 안에 있던 사람이므로, 그의 연설을 자연스레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게 당연하다.
그는, 그가 딴지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슬픈 이유로 2인자의 노선을 택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기독교에 비유하자면 '십자가의 보혈'이 된다.
작년 5월 23일 아침까지만 해도 안희정에겐 미래가 없었다. 노무현이 몸을 던진 이유 중에는, 그의 앞길을 열어주려 한 의도가 분명히 포함된다. ("나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 노무현은 안희정의 책(<담금질>)이라도 팔아주려다 한번 크게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도지사 출마 연설에서 안희정은 "내가 노무현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이 또한 노무현이 인정한 바가 영상기록 증거로 남아 있다. 내가 참여정부의 노선을 강력히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그들은 기록하고 또 공개했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은 그래서 중요하다. 쥐가 쏠기 전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대놓고 자신의 장점을 자랑질 하는 것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건 (정치) 목숨을 건 도박과 같다. 진실로 한 점 숨겨둔 감춰진 일이 없는 사람만이 이 전략을 통해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한 점 부끄럽게 살기 쉬운가. 따라서 부끄러울 일 없이 살아온 삶이란, 일찍부터 삶을 형이상학적 가치에 따라 계획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안희정은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조숙한 학생이었다. 비록 그 의기는 크게 한번 좌절되기도 한 모양이지만.
그 좌절을 통해 그는 1인자 대신 2인자의 길을 택했다. 충청도 사람 답다. 경상도에 의리가, 전라도에 기백이 있다면, 충청도에는 끈기가 있다. (경상도에는 87년 대선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김영삼이 하고, 다음엔 김대중을 밀어주자"라는 여론이 있었다. 그리고 80년 광주 이전까지만 해도, 박정희는 전라도에서도 김대중과 박빙을 이뤘다.)
이에 비해 은근하고 끈질긴 충청도인의 기질은 김종필이나 이회창과 같은 '최고의 2인자'를 여럿 탄생시켰다. 최고의 2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1인자의 자질을 가진 이가 2인자의 위치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1인자의 자질을 가진 이라 할지라도, 대세가 따르지 않는데 무리하게 1인자의 위치를 탐내게 되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어쨌거나 결국 1인자의 자리를 거머쥐지 못한 이들 덕분에, 충청도는 지역감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안희정은 연설을 통해 지역감정을 대놓고 도발했다. 그는 당당하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즉 전라도와 경상도의 두 대표선수를 합당한 댓가를 치르고 계승했다.
그는 참여정부 5년 내내 실업자 신세였고, 노무현 사후엔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그에게 민주당 잔류가 위험했던 까닭은, 노무현 살해의 종범들과 동침하는 것이 되므로 '골수노빠'로 불리는 분들의 적극적 비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극성맞은 분들의 타겟이 되면, 정치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는 이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들을 끝내 견뎌냈다. 그리고 이제 '지역 감정 해소'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김대중과 노무현 공동의 이상'을 계승하기로 선언함로써 그는 이 골수노빠를 납득시켰다.
우리나라 정치엔 2인자가 성공적으로 1인자를 계승한 전례가 없다. 언제나 그들은 1인자에 대한 부정 위에 자신의 기초를 쌓으려다 무너졌다.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가 지금까지처럼 현 정부의 폭주를 관망하며 2인자의 역할을 소홀히 하다간 다른 2인자들의 전례를 따르게 될 것이다. 2012년에는 안희정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몸조심하셔야겠다. 알아볼 줄 아는 자가 저들에 있다면 지금부터 싹을 잘라버리려 할 것이다. 그를 지키려면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
키워드 -
2인자 노선
2인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또 경험해본 사람
충청도 사람=말이 느리다.(어눌하다)
안희정, "충청도의 새 역사" 싸이즈 대박.
지역통합("김대중 노무현의 꿈 이어나가고 싶다는 것이 꿈")
2인자가 1인자를 승계하는 방법.
'진성노빠'들에게 민주당 잔류의 명분 명백히 설명.
자기 장점 대놓고 말하기. 당당함. 부끄러워 할 일이 없음.
"안희정이 누구야?"
정보 전파의 기회. = 컨텐츠가 있다면 입소문을 탄다.
서울 집값이 충청 발전(세종시)과 직결되는 이유 명백히 설명.
"봉급생활자의 집세(및 대출이자) 부담"
세종시는 이미 합의한 바가 있는 법안. ('절대 명분')
최초의 충청 출신 대통령 가능성
최초는 언제나 환영받는다.
말씨가 바뀌지 않은 사람. 말씨의 중요성.(무의식적인 인상비평을 좌우한다)
"386의 마지막 과제와 임무"
중앙권력에 대항하는 분권의 시대를 열어야
"전국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
골고루 잘사는=평등 강조=좌파적 시각을 자연스럽게 침투시킨다
세대론
근대화 세대 / 민주화 세대, 그리고 자유분방한 20대-상실의 세대
2010년 4월 26일 월요일
판도라의 상자
1.
'판도라의 상자'라는 옛날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하고도 아주 먼 옛날 판도라라는 처자가 있었는데, 신이 그녀에게 상자를 하나 건네 줬단다. 절대로, 절대로 열지 말라는 엄명과 함께. 상자를 주면서 열지 말라니 무슨 심보였는지 짐작은 되지 않지만, 하지 말란 짓은 원래 더 하고 싶은 법. 그녀는 결국 이 상자를 열어젖혔고, 상자 안에서는 질병과 고통, 증오, 분노와 같은 온갖 못된 것들이 잔뜩 튀어나와 인간 세상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에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상자를 다시 닫았지만 너무 늦었던 모양이다. 신의 명령을 어긴데다 대형사고까지 쳐버렸으니 어쩔줄 몰라 하던 그녀에게 상자 속으로부터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단다. 기왕 배린 몸, 판도라가 상자를 다시 열어보니 그때 나온 게 바로 '희망'이었다.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말하자면 악의 근원에 대한 신화로, 흔히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과연 그 저주받은 상자에 과연 좋은 게 하나라도 들어 있었을까. '희망 고문'이라는 신조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희망은 오히려 사람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저주로써 작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2.
인간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의견이 판이한 것 만큼이나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 또한 그러하다. 나는 오랜 생각 끝에 노무현은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인간형에 닿아 있다고 판단했는데, 말인즉 내가 그를 '군자(君子)'의 한 전범으로 삼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 자리에서도 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끝없이 회의하던 사람으로, 회의를 통해 학습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했으며, 그의 두드러진 용기는 폭 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간애에서 비롯한 것이었기에 절제가 있었다.
운나쁜 타인을 가엾이 여기는 측은지심, 틀린 것에 성낼 줄 아는 수오지심, 자신의 행운에 교만해지지 않는 사양지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남을 옳게 구분할 줄 아는 시비지심, 옛 성현들이 군자의 조건으로 세운 네 덕(인,의,예,지)을 그는 모두 갖추었다. 군자란, 임금된 자다.
3.
공화주의란, 우리 가운데 누구도 다른 누군가보다 유별나게 뛰어날 순 없다는 '불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권력에 선악을 묻지 않으며, 오로지 우리 이익의 평균값이 떠도는 어딘가에서 최선 아닌 차선이나마 건져 보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나는 순혈 민주주의자나 공화주의자라기 보단, 본질적으로 왕당파에 가깝다. 민주주의를 최고의 시스템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래도 그나마 그것이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박지만이나 전재국, 전재용이 통치하는 '대한왕국'을 상상해보라.
그러나 덕분에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의 행운을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였다. 자본이 곧 권력인 이 시대를 고대 로마 시대에 비유하자면 저 자본가와 현대판 귀족들은 집정관과 원로원이며, 평민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은 호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시기에 마침 좋은 호민관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흔치 않다.
언제나 그래왔듯 호민관은 집정관에 비해 별 힘을 쓰지 못하고 떠났다. 왠일인지 어떤 평민들은 도무지, 자신이 평민임을 자각하질 못하는 까닭이다.
4.
그래서 어쩌면, 노무현의 가장 큰 죄악은 평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 그는 어쩌면 확률 범위 안의 작은 파동이었을 뿐인데 어떤 전조로 오독된 것이었다면.
하여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나는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그의 이름 아래 희망을 건다. 조선 반도에 역사란 것이 시작된 반 만년 이래 처음 스스로 곡기를 끊은 임금이 이곳을 떠난지 단 1년 만에 벌써 그날의 황망함을 다 잊었다고 한다면, 이 땅의 사람들에겐 희망이 없다.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노무현 종교화 프로젝트
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 '교주(敎主)'라는 직업이 앞으로 전망이 있겠다 싶어 그것이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성공하는 교주의 7가지 습관>이란 게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라는 주제를 정해놓고 꽤 진지하게 탐구했더랬다. 별 성과도 없었고 결국 7가지를 채우지도 못했지만, 과거의 몇몇 성공한 교조(敎祖)들의 사례들을 돌아보며 나는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첫째는 "교조는 생전에 영화를 누리지 못한다"였다. 예수는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붓다는 왕좌를 버리고 광야를 떠돌았다. 공자는 한 번도 뜻을 펴지 못했으며,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젊어 죽건 늙어 죽건 제대로 된 교조라면 육신의 삶이 고난으로 가득차야 한다.
둘째는 "교조는 저작을 남기지 않는다"였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플라톤이 썼고, '복음'은 열 두 제자들이 남겼으며, '논어' 역시 안회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조는 다만 입으로 떠들 뿐, 받아 적어 후세에 남기는 일은 제자들의 몫인 것이다. 심지어 '라엘리안'들조차 끌로드 보리용이 외계인의 메시지를 받아 적은(적었다고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밖에 "교조에겐 말씀을 기록할 제자(들)이 있다"라든가, "제자들 중엔 꼭 말씀을 왜곡하는 얼간이가 섞여 있다"와 같은 자질구레한 공통점들이 떠오르긴 했으나, 점차 '갖다붙이기'란 느낌이 들어 그만두고 말았다.
어쩄거나 최근 내가 주목한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삶이 위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그의 삶은 더할 수 없을만치 드라마틱했으며, 그토록 염원했던 회고록조차 제 손으로 남기지 못했다. 그는 녹음된 목소리만으로도 눈물을 질질 짜게 된 수많은 제자들을 만들었고, 개중엔 그의 본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이들도 틀림없이 섞여 있을 것이다. 앞으로 50년쯤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이름을 내건 사상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앙이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인간을 제외한 어떠한 것의 신성성(神聖性)도 부정하는 자들'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 위에 인간을 벗어난 초월성를 덧씌우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그 이름은 이런 하찮은 노력 없이도 역사에 길이 빛날 테지만.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뉴스를 보다가 문득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댓글 읽는 대통령
노무현이 특별했던 점 또 한 가지는, 그가 인터넷 댓글을 읽는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말과 글 곳곳에서 그가 상시로 인터넷 댓글을 읽고, 드물게는 쓰기도 했던 것이 드러난다. 이 가운데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 흔적이 있다. 익명성을 보장해줘야 더 많은 '생생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은 분명한데, "악플러" 문제나 "언플" 문제의 발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그는 "사.사.세"와 "민주주의2.0" 등을 통해 모종의 실험을 진행 중이었으나,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 관찰의 기록을 별로 남기지도 못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가만히, 20초 정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온다. 아직도.
2009년 9월 3일 목요일
이회창 총재의 부활?과 이슈 파이팅
"심대평 탈당"이라는 이슈가 생기자 덩달아 '자유선진당'과 '이회창'이 웹에서 유력 키워드로 떠올랐다. 자유선진당이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유지하려면 골치는 좀 아플지 모르지만 일단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던 그들이 하마평에 오른 것 자체가 이번 소동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그들의 발언이 메이저 포탈 메인 기사로 다뤄진 게 대체 얼마만인가.
정보 홍수의 시대에 '무플'이란 '악플' 만도 못하다. 불구경보다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이라는데, 코딱지 만한 조직이 오순도순 너무 잘 지내봐야 일반 유권자에겐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이다...
소위 '친노신당' 창당에 부쳐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너무 높다 보니 정말로 적전분열처럼 보일 지경이지만, 대안이 보이질 않는다.
막말로, 실체가 모호한 '민주개혁세력' 혹은 '진보진영'에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이가 줄지어 민주당에 입당이라도 한다해도, 기존 민주당내 세력이 공천권을 '절반쯤 뚝 잘라' 내놓지 않는 이상 그 '단결'이란 것도 허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대로 "각개약진 후 합종연횡" 하는 수밖에 없다. 약진 중에 터져나오는 소음을 통해 끊임없이 유권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슈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앞으론 "영남패권주의" 운운이나 "민주당 한계론" 따위가 아닌 진짜 정책 논쟁을 '우리' 사이에서 보고 싶다.
2009년 7월 12일 일요일
MBC스페셜 '노무현이라는 사람'
MBC스페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방금 다시 보았습니다.
그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서 한동안 피해다니다가 결국 다시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소리내어 엉엉 우는 제 꼴이 참 궁상맞다 생각하면서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몇년 동안 한 번도 그분을 마음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는데,
제가 알고 있는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데까지 알려 보려고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큐를 보다가 모르던 사실을 하나 알았습니다.
봉하마을 노짱의 집무실은 부엉이 바위가 곧바로 바라다 보이는 곳이더군요.
검찰(과 그 뒤에 줄선 흉흉한 민심들...)의 압박을 그곳에서 홀로 견디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어쩌면 젊은 시절에 벌써 그는 그 바위 위에서 생과 사를 고민한 적이 있었더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연스레 잊혀갑니다.
이 잊힘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2009년 7월 11일 토요일
차기 대선 후보.
1.
2012년 유시민 지지 확정. 승부는 경선에서 난다.
2017년(또는 개헌 여부 따라 2016년) 안희정 또는 안철수.
- 변수는 1) 안희정의 대중인지도가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2) 안철수의 행정경험(+성과)가 얼마나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인가.
- 안희정은 잘 생긴 젊은 정치인. 논변 좋고 철학 좋고. 충청 출신이라 지역감정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게 강점인 동시에 약점. 인지도가 낮아 지지층이 얇다. "무능하고 말 많은 386"이라는 프로퍼갠더에 함몰될 위험 있다. 차기 유시민이 집권하면 곧바로 입각해 행정 실무를 맡아 경험을 쌓으면 된다.
- 안철수는 살아 있는 성자+유능한 CEO. 정계에 진출만 한다면 테크니션 출신 중에선 유례없는 대중적 지지도 획득 가능. IT시대에 적절한 리더십. 약점은 정치판이라는 곳이 발만 디뎠다 하면 똥물 뒤집어 씌우는 게 일상다반사라 작은 흠결만으로도 치명타 맞을 수도.
2.
딴나라당 대선은 보나마나.
박근혜 대세론으로 가다가 여의치 않으면 홍준표나 오세훈, 김문수로 바람을 일으키려 할 것.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 지지해볼 만한 자는 없음.
2002년 이후 미국 대선이든 우리나라 대선이든 승부는 경선에서 갈렸음. 경선 때 전국적 이벤트 못만들면 대선은 하나마나. 이벤트가 되려면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데 정동영은 현재 정치 지형-지역구도 상 비빌 언덕이 없음.(그러게 참여정부 때 잘 좀 하지... 쯧) 80년 광주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당분간 호남엔 인물이 없음.
혁명없이 개혁다운 개혁 해볼 만한 인물 로드맵은 대략 이러함. 10여년 이후의 정치 지도자 깜은 나보다 어린 세대들이 골라줄 것임.
3.
한국 대통령 및 정치인 평균연령, 짜증나게 높음. 박정희 처음 집권할 때 46세였음. 정치인이 늙으면 나라에 활력이 사라짐. 50세 대통령+3~40대 비서진. 40~50대 장관. 이렇게 가는 게 적당함.
60대 이상은 은퇴해서 골프나 치고 낚시나 다니시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될 것임. 실버산업 육성하고 얼마나 좋아.
현재 대한민국의 정체는 구조적으로 말하자면 늙은이들이 은퇴를 두려워하고 386은 안주해버리는 바람에 청년층이 기회를 못 얻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음.
4.
따라서 친노그룹은 친노신당 창당으로 가는 게 옳은 길. 분열이다 뭐다 하지만 분열 없이 지지층 확대는 없음.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 게 아니라 주적개념이 모호해서 망하는 게 맞음.
관심을 못받으면 팔리지 않고, 정치에 있어 안 팔린다 함은 지지층의 소멸을 뜻함. 빠돌이를 만들 만한 변별성이 없으면 지지층은 발생하지도 않음.
따라서 관심을 받으려면 싸워야 함. 싸우려면 포지션이 서로 달라야 함. 호남의 구 민주당 지지층과 유시민류의 친노-영남개혁파(?)는 충분히 포지션을 차별화 할 수 있음. 이는 분열이 아니라 지지층의 확대를 위해 필요한 일.
민주당 간판 걸고 영남을 쪼개는 건 절대 불가능. 이건 상식. 지역감정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님.
반한나라당 세력으로써도 친노그룹이 영남을 쪼개며 독자세력화 한 후,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 이벤트를 벌이는 게 적절한 선택임. 말하자면 소연정.
다소 급진적인 순혈 진보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그나마 가까운 친노그룹과 협력하는 쪽이 지지층 확대에 효율적임을 깨달아야 함. 그러나 그럴 리는 없을 듯. 몇몇의 하는 꼴을 보아하니 노통의 서러운 죽음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는 듯함...
2009년 7월 3일 금요일
DJ 오래오래 사시라.
1.
혹시 민주당은 DJ의 서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당이 소위 '범진보진영'의 지지를 '한 큐'에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슈는 이것 말곤 없어 보인다.
한국의 비좁은 정치 공간 안에서는 이미 더 커질 공간이 없는 거인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DJ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발언을 어떻게 한들 어떠한 정치적 임팩트도 이끌어낼 수가 없다. 바다에 한 컵의 물을 더한들 묽어질 리 없고, 한 사발의 소금을 더한들 더 짜질 리 없는 까닭이다.
2.
노짱이 즐겨봤다는 미드 <The West Wing>.
미드 <웨스트윙>을 보면, 치매'끼'와 노환에 시달려 오늘내일 하면서도 절대 사임은 하지 않는 어느 대법관의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의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한번 임명되고 나면, 죽거나 탄핵되거나 혹은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절대로 교체되지 않는다. 그 임명의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으나, 반드시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미드 <웨스트윙>의 정치 지형은 녹록지 않다.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은 새로운 대법관을 확실한 진보성향의 판사로 임명하고 싶다. 게다가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 결국 대통령은 늙어 죽어가는 대법관에게 사임을 종용하게 된다. 자신의 임기 중에 대법관을 임명해야 진보 성향의 판사로 그 자리를 메꿀 수 있다고 본 까닭이다.
그런데 대법관은 20여년 전 카터 시절 임명된 진보적인 판사이다. 그는 자신의 죽을 날이 머지 않았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임하지 않고 끝내 버팀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러한 미스테리는 에피소드 말미에 가서야 해소되는데, 자신이 사임해봤자 대통령이 결국 이도저도 아닌 인물을 그 자리에 채워넣을 수밖에 없음을, 즉 공화당이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허술한 인물을 새로운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밖에 없음을, 이 현명한 늙은이는 이미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회를 장악하지 못한 힘없는 대통령은 저 혼자서 아무리 좋은 인물을 세우고 싶어도, 그런 인물은 공화당이 지배하는 상원에서 결코 인준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늙은 대법관은 다시 무너져가는 몸을 이끌고 법원으로 돌아간다.
3.
나는 DJ로부터 이 늙고 지쳤지만 꼬장꼬장한 대법관의 고독을 본다. 그의 집권 중 한때는 "그의 주변에 '인(人)의 장막'이 둘러쳐 있다"는 소문이 떠돌곤 했다. 조중동의 쑤석임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의심하면서도, 어쨌거나 그의 추종자를 자칭하던 이들조차 그에게 등을 보였다. 집권 말기 아들 비리가 터지자 등돌려버린 이들이, 지금은 그의 후계자를 참칭하며 현재 민주당의 주류가 되어 있는 것이다. 호남 민심은 아직도 DJ의 발언에 민감한데, 정작 DJ가 그토록 애착하던 민주당에 속한 의원 나리들은 진작 DJ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노짱의 영결실에서 오열하는 김대중
나는 이러한 점, 즉 'DJ의 노환'이 어쩌면 세칭 '친노그룹'으로 하여금 신당 창당의 노선을 망설이게 하는 몇몇 이유 가운데 큼직한 하나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라의 자랑인 어르신의 서거를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아프고 또 망측한 소리지만, 그럼에도 예측은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나이 83세, 그의 건강은 신문 헤드라인에 언제 부고가 떠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 아닌가...
가장 바람직한 건 그가 앞으로도 10여년은 더 정정하게 생존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호남의 민심과 '친노그룹' 사이의 유대를 더 확실하게 복원해주고 떠나기를, 나는 희망한다.
MB의 임기 중 그가 세상을 떠나버리면 엉뚱하게도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시대정신은 방향성을 상실할 것이며, 나아가 엉뚱하게도 친노그룹이 정치적으로 위축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친노의 궤멸은 영남을 그대로 딴나라에 헌납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어떻게든 영남을 포섭하지 못한 채 차기 대선을 치르게 되면 필패할 것이란 예측에 그리 대단한 통찰은 필요치 않다.
※ 이 포스팅을 올린 바로 다음날(7.3) DJ는 "노무현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말라"(오마이뉴스)라는 기사를 통해 지난 영결식 때 하지 못한 추도문을 공개했다. 이는 딴지의 김어준이 평한 것처럼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의 분열과 상처를 일거에 치유하고 다시 하나로 정서적 통합시킨, 절대 순간"의 연장선 위에 있다. (관련기사)
2009년 5월 30일 토요일
적대적 대북 정책이 북핵 문제를 악화시키는 이유
적대적 대북 정책이 북핵 문제를 악화시키는 이유
또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집권기간 동안 북측에 제공된 '인도적 지원' 가운데 일부, 혹은 상당 부분이, 저 극우꼴통들과 여러 알바 제위께서 게거품 물어가며 주장하시는 바와 같이, 핵개발에 전용(轉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도출된 “'좌빨' 정권이 북핵 사태를 만들었다”는 그들의 문제인식은, 명백히 틀렸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라고 하는 두 정부, 즉 10년에 걸친 민주정부가 북한에 지원을 하였든 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북이 언젠가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였으리란 예상은 그리 큰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핵무기 기술 자체는 1940년대에, 즉 오늘날에 비해 과학기술력이 턱없이 모자랐던 시절에 이미 개발될 수 있었던 바, 상대적으로 높은 과학기술력을 요구하지 않는 낡은 기술입니다. 다만, NPT의 제제를 회피해가면서 진행해야 하는 연구와 실험 등 기술외적인 난관들이 몇 있었을 뿐입니다. 2차대전 시기 독일의 V2로켓 개발에 사용된 과학기술이 현대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기술보다 첨단 기술이었다고 믿는 이가 있다면 그를 제정신이라 볼 수는 없겠지요.
따라서 그들의 핵무장은 조금 이르거나 늦거나 하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입니다. 애당초 자금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특히 북한 인민뿐만 아니라 전체 지구 인류의 악몽과 같았던 조지 W. 부시의 그 8년간은, 북한의 기득권층으로 하여금 당분간 핵개발보다 더 나은 생존전략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해주었을 겁니다. 여기서 ‘더 나은’이라 함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뜻으로, 이러한 ‘고위험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전략 역시 효율성을 강조하는 전략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더하면 북한의 핵개발이 어째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인지 납득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뿐, 핵은 사실 남한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북한 경제 시스템 붕괴의 원인을 짚어보겠습니다.
첫째는 북한 인민의 지나친 민족주의입니다.
민족국가주의적 한계, 즉 ‘전체주의’는 인민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인민 내부의 다양성을 감소시킵니다. 그리고 다양성의 감소는 혁신과 진보를 위한 필수 동력인 창의성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이를 과학에서는 생물군의 종적 다양성 증가가 바로 그 생물군의 진화를 뜻한다고 설명하는, 진화론의 원리와 일치합니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유전적 다양성이 생물개체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대한 내성을 보장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해당 생물군의 생존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즉 다양성은 국가의 ‘보험’입니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지극히 민족주의적 사고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극우적입니다. 종북주의라 비판받곤 하는 민주노동당이 끝내 진보신당의 좌파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극우와 극좌가 어찌 이념 정당 하나 안에서 공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민족을 항상 개인의 자유에 우선한 북한의(그리고 우리의) 민족주의는 세계 정세의 급격한 변화라는 외부 환경에 적응할 수 없게 함으로써 세계라 불리는 생태계에서 북한을 도태의 위험 속에 빠뜨리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북한 정치 시스템인 공산당 독재입니다.
심지어 최고권력이 세습되기까지 한 북한 고유의 전근대적 봉건성은 북한 인민의 자율과 창의를 억압해왔습니다. 인민 가운데서 ‘똑똑한 놈’을 뽑아 공산당에 입당케 하고 그 공산당이 권력을 모두 장악하는 공산당 독재 시스템은 역시 진화의 원리인 다양성 증가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양반 계급 가운데서도 ‘사림’이 권력을 독점했던 조선이, 당시 문명국 전부가 빠져든 산업혁명, 즉 부르쥬아 혁명에서 홀로 비켜서 있다가 졸지에 망국에 이르게 된 데에는 봉건주의 독재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이른바 '운동권' 지도부의 봉건적 작태는 많은 내분의 불씨가 되었고 이는 아직까지도 일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봉건주의는 권력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는 시스템을 만듭니다. 그리고 집중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며, 부패는 또다시 권력의 독점을 공고히 합니다. 이러한 부패한 권력의 악순환은 개별 인민의 자기개발 욕구를 현저히 떨어뜨림으로써 창의성의 발현 가능성을 낮춥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창의성이 감소한 조직과 다양성이 줄어든 생물군은 (장기적으로) 반드시 멸망하고 멸종합니다. 그나마 북한이 여태 허덕이면서라도 붕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냉전시기 중국과 소련의 공산동맹 논리에 따른 대대적인 원조와,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자질의 지도층이 있어 부패를 상당부분 통제할 수 있었던 데 기인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세계적으로 냉전논리와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에는 남한의 군사독재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안습’하게나마 같은 방식으로 부패의 확산을 막아왔습니다. 소비에트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이 이어지자 곧바로 북한이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변했습니다. 극우꼴통님하들은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전체주의와 봉건주의,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맞물리면서 북한의 경제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누적시켜 왔습니다.
봉건주의와 전체주의는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인 전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과정을 생략한 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그리고 무제한 경쟁시대로 돌입한 현대의 세계 질서 안에서 봉건주의와 전체주의는 각각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공화주의와 자유주의가 함께 어우러지는 정치 시스템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헌법에 적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누적된 비효율성은 소련과 중국의 원조가 거의 끊어진 상태에서 국제자본의 대북 경제봉쇄를 맞이하자 북한의 내수시장마저 철저히 붕괴시키기에 이릅니다. 북한에서 대량 아사사태 난 게 언제쯤인지 기억하시겠지요.
석유나 금과 같은 환금성 천연자원이 거의 또는 전혀 산출되지 않는 북한이 주체사상, 즉 ‘폐쇄적 지역경제’ 시스템을 선택한 데서부터 성공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셈입니다.
여기까지는 자칭 보수인 극우꼴통님하들도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좌빨' 정권이 북핵 사태를 만들었다” 주장의 오류를 설명하겠습니다.
1. 남과 북 사이엔 소통이 부족했다.
2. 소통이 부족하면 오해가 쌓인다.
3. 오해가 쌓이면 불신이 커진다.
4. 불신이 커지면 갈등 해소의 비용이 증가한다.
5. MB정권은 남북간 소통의 끈을 끊어버림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높이고 있다.
1. 남과 북 사이엔 소통이 부족했다.
DJ는 평생에 걸친 혼신의 노력으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노벨평화상은 이 노력에 대한 범 세계적인 인증 절차였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한나라당은 ‘노벨상 로비’를 운운하며 소위 ‘대북송금 특검’을 제기하였고, 이 때문에 남과 북의 소통은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이는 정권 초반부터 거부권 행사라는 초강수를 둘 수 없었던
어쨌거나
그런데 봄날은 가고, 극우꼴통들이 덜컥 정권을 잡았습니다. 곧 소통의 끈은 아작나기 시작했습니다.
2. 소통이 부족하면 오해가 쌓인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의 대부분과, ㅈ갑제-ㅈ중동(5월 23일 이후 이 두 하등한 것들에게는 경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극우꼴통들, 즉 '안티-DJ', '안티-노무현주의자'들은 북한과의 소통을 절대로 거부합니다. 한국형 파시즘 논리의 도그마입니다. 그들은 "빨갱이"와는 절대 소통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이 제 마누라보다 더 사랑하는 저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소통을 그것의 크기와 형태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금지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법, 즉 악법(惡法)의 대명사입니다. 그럼에도 이 악법의 완화 또는 철폐에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이유는 이러한 오해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 즉 냉전적 사고방식의 원인을 짐작해보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합니다. 그들이 즐겨 들먹이는 '죽창'과 '인민재판'은 바로 그들의 "빨갱이"에 대한 집단공포증(massive-phobia)의 상징입니다. 이 공포증은 턱없이 과장됨으로써 대다수 ‘선량한 보수’에게조차 피해망상증과 과대망상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포는 항상 증오와 혐오를 낳습니다. 인간은 그 공포의 대상이 만만하다면 증오를,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면 혐오를 드러냅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소위 극좌와 극우가 서로를 증오하는 것과,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것에는 이러한 오해의 확대재생산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오해들에 대한 책임의 대부분은 반란군-군사독재 정권의 잔당들과 그들에 결탁한 좆중동에게 물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공포증이 악화되는 방향으로만 대중을 몰고 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 내부에서조차 그 갈등의 폭이 너무나 넓어져버렸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선 한국전쟁 세대가 모두 죽든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라고 하는 매우 끔찍하고도,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미래전망의 가장 큰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북조선 인민의 ‘미제국주의’에 대한 격렬한 증오 역시
이는 기독교라는 종교와 맑스주의라는 이념의 상호적대적 역사에서도 드러나 있습니다. 맑스주의의 유물론과 기독교의 절대신 개념은 그것을 근본주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결코 상생이 불가능합니다. 그저 더는 피를 보지 않기 위해 서로 양보하거나, 무시할 뿐이지요. 이념이 곧 종교이고 종교가 곧 이념인 까닭입니다. 맑스주의 운동과 초기 기독교의 방법론 사이에 그토록 많은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까지를 고려하면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오해가 쌓이면 불신이 커진다.
한국전쟁사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민족이 서로에 대한 학살을 그토록 빈번하게 자행한 전쟁은 인류사에 전례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외부적인 이유로 해서 소통과 타협이 불가능했던 민족주의와 친일파,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맑스주의와 조선말의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할 수 있었음에도 말을 통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국인이 “이놈들은 말로 해선 안돼”라며 쉽사리 소통을 포기하고 몽둥이를 꺼내 들게 만드는 역사적 트라우마입니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면 갈등은 더 자주, 더 쉽사리 발생하고, 더 빨리, 더 커집니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또 다른 불신의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오해의 열매를 맺습니다. 불신, 즉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어떠한 오해도 풀리지 않고, 따라서 어떠한 갈등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신뢰 없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힘으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국가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들 간에 발생한 갈등을 ‘힘’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일컬어 '전쟁'이라고 합니다. 극우꼴통들이 수시로 전쟁불사론을 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 불신이 커지면 갈등 해소의 비용이 증가한다.
그러나 전쟁은 소득에 비해 비용이 너무나 큰 갈등 해결 방식입니다. 전쟁은 정작 갈등은 대개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겨두고, 그 소득은 오로지 살아남은 자들, 즉 비용을 치르지 않은 자들에게만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구전은 왕서방이 먹는 격이니, 참으로 좆같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북 관계 악화일로"라는 신문의 헤드라인은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한 소통이 끊어지고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사소한 오해가 빚은 작은 갈등조차 삽시간에 대형 무력 충돌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도록 키워버리는, 몹쓸 놈들의 몹쓸 짓들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국지전이 됐든 전면전이 됐든 무력 충돌이 실제로 발생하게 되면, 그 핏값은 결코 저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 경우, 외국계 자본은 잽싸게 KOSPI에서 대거 이탈할 것이고 따라서 주가는 폭락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을 대비하려는 각개 가정의 생필품 사재기에 따라 물가가 폭등합니다. 한반도 유사시 주가폭락과 물가폭등, 이 두 가지만으로도 극빈층은 곧바로 지옥 언저리를 떠돌게 되고, 서민층은 극빈층으로, 중산층은 서민층으로 삽시간에 몰락할 것입니다.
이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기회 잘 잡아 한 몫 챙기고 싶어하는 악당들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것이 한국의 번영을 위해서는 평화가 필수적이라고 DJ와
5. MB정권은 남북간 소통의 끈을 끊어버림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높이고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른바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하면서, 일각에서는 “배신”이라는 둥, 남북간 대화의 끈을 놓아버린다는 둥, 우려하는 소리도 높았습니다. 왜곡과 곡해가 일부 있었을망정 크게 보아 올바른 시각에서 비롯한 접근이었습니다만, 올바른 정치적 선택에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선된 대통령으로서 헌법적 권한을 보유하고 있던
그리고 MB정부가 들어서자 이 소통의 끈은 놓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니 끊어내 버렸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정책과 정치적 선언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북핵은 본디 대포동과 같은 장거리 미사일 기술 개발과 함께 미국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핵탄두야 아무 데나 탑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장거리 미사일 계획에 북한이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곧 공식적인 ‘핵보유국가’가 될 북한은, 미국을 향해 “우리를 건들면 니들도 도시 한 개는 날아갈 걸” 하는 식의 공갈을 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조선 인민의 정서는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그럴듯하게 묘사된 바 있습니다. "국방군은 비키라, 이 말이야! 미제놈들이랑 제대로 한 판 뜨게!"
북한의 미사일 기술은 더 이상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지 않아도 한반도의 모든 곳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남한으로선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면 모를까 이미 보유하게 된 마당에 더 이상 그들의 막장 드라마를 찍어야 할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이번 정권이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MB정부는 전직 대통령
따라서 이러한 과정에 뒤따를 모든 비극적 결과에 대한 책임이, 대북 관계에 긴장을 높이는 방향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있음을 분명히 해둡니다. 또한 이들을 지지해 정권을 잡게 해준 극우꼴통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놈들 역시 이러한 책임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알바 제위와 정치적 무관심을 자랑으로 아는 백성들을 위해 특별히 말씀 세 가지를 덧붙입니다.
1.
DJ와
2.
아무튼 막상 전쟁이 나면, 극우꼴통들 또한 마냥 안전하진 않다. 개중 ‘쩐 없는’ 놈들, 이를테면 ‘알바’들은 ‘얄짤없이’ 나와 함께 총알받이로 투입될 것이다. 아, 난 빠질 수도. 동원 끝난 지 오래. 부른다고 갈 일도 없겠지만.
더욱이 나의 군복무 경험에 따르면 "전쟁이 나면 소대장과 행보관부터 쏴 죽이겠다"는 전우들이 적지 않았다. 제 ‘아들’ 군번, ‘손자’ 군번, 증손자 군번… 증증증증손자 군번의 장정들이라고 해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유사시 국방군 전력의 핵심을 담당할 예비역 병장들이 바로 이들이다. 전시 동원령이 떨어지면, 이들 예비역 가운데 대부분은 역시 습관대로 소집령에 순순히 응할 테지만, 그 와중에 예비군 동대장이라든가 하는 몇몇 쯤은 뒷통수에 환기구 열어놓게 되는 걸 각오해야 할 것이다.
3.
한편, 북핵에 대해 남한도 얼른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기어들어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극우꼴통들을 보게 되면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진다. 미국의 핵확산 방지 구상을 결코 벗어날 수 없으므로 남한의 자체 핵무장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설사 가능한들,
이 상황에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기어들어 가겠다는 주장은 기껏해야 미국의 총알받이, 그것도 핵무기의 총알받이 노릇을 자청하겠다는 논리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4.
알바놈들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에서 모처럼 길게 썼다. 생각 좀 하고 살자. 니들은 왕서방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