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5일 토요일

나 쵸큼 천잰듯.

어제는 <직장인 열정충천 컨퍼런스>란 것을 다녀왔다. 회사 덕에 팔자에 없는 호강이다. 강연자 중 하나가 손욱 농심 회장이었다. 그는 우리 책의 저자다. 덕분에 무려 99,000원의 수강료를 아꼈다. 강연은 꽤 유익했다.

강연자 모두가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베스트셀러 한두 권씩 쯤은 있다. 재미든 품격이든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챙겨주더라. 그중 한 분은 나를 완전히 몰입 상태에 빠뜨렸다. <몰입-Think Hard>라는 책의 저자, 황농문 박사였다. 감격했다. 강연이 끝난 후 따라갔다. 궁금했던 걸 질문 했다. 노트에 싸인도 받았다.(-_-*) 모두 끝나고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예스24에 책을 주문했다. 몇 년만이다. 

그는 '몰입'의 방법을 통해 재료공학계의 수십 년 묵은 난제를 여러 개 풀어냈다. 알아주는 과학자인 모양이다. 과학은 발전이 빠르다. 과학의 난제란 건 무진장 많은 천재들이 무진장 많은 세월을 그 문제에 골몰했었다는 뜻이다. 현재는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라고 한다.
(나는 서울대 출신 사람들을 좀 편애하는 것 같다. 고졸 주제에 말이다. 유시민, 이문열, 최 선생님, 정 사장님... 그러고보니 내 롤모델 중에 고졸은 노무현 전 대통령뿐이네.-_-;) 

이 양반은 풀어냈다. 내가 평소 고민하고 망상했던 것들이었다. 또한 내가 '몰입' 중에 깨달은 것들과도 일치했다. 나는 매우 행복했다. 마치 내 지난 삶을 추인받은 듯했다. 

그리고 오늘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고 있다. 유시민은 예전에 인터뷰를 했다. 그는 노무현을 '정신적 쌍둥이'라 비유했다. 나는 오늘 그의 책을 읽으며 느꼈다. 나는 글재주와 말재주가 모자라다. 아직 그이처럼 세련되게 풀어내진 못한다. 하지만 그의 밈Meme들은 내 안에서도 스스로 끓었던 것들이다. 아마 태생이 같아 그런 듯싶다.

그는 책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당위성을 논하는 데에 '과학자의 의견'을 여러 가지 인용했다. 예를 들어 도킨스에게서는 '이기적 유전자'와 '밈' 개념을, 러브록에게서는 '지구유기체' 개념을 빌려왔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과학적'임을 밝힌 것이다. 나 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같은 결론을 얻었다.

당위는 현실(혹은 현실로 인정되는 것들)에 근거해야 한다. 현실을 인간의 언어로 정리한 것이 과학이다. 언어는 인간이 사용 가능한 소통 방식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당위는 과학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부연해둬야겠다. 혹자는 오해한다. 과학 역시 또 하나의 (잘못된) 의견, 신앙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태양이 지구를 돌던 시절에는 그것이 '과학적' 진리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마침 현대라고 불린다. 그런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인간 동지 대부분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원운동을 상상하는 것 같다. 
근데 '정말 과학적으로' 생각해보면그게 전혀 그렇지가 않다. 태양은 우리 은하계의 인력에 끌려간다. 은하계 또한 은하끼리의 인력에 끌려다닌다. 이 거대한 우주적 소용돌이의 날갯죽지 어딘가 깃털 하나에 올라 앉은 먼지 같은 게 우리 지구다.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휘둘리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다. 그 먼지 위에 묻은 원자 알갱이들 중에서 골라낸 일부분을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우리는 지구별 위에 찰싹 달라붙어서 같은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으므로, 안전하다. 이 다행스러운 일이 God's bless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데에 굳이 상대성 이론까지 마스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우리끼리도 뭔가 좀 소통하려면 항상 뭔가 적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때는 지구가, 현재는 태양이 그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엔 물物과 기氣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에겐 육체와 정신이 따로 있단다. 심지어 정신과 기가 육체와 물에 우선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물질적이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경박한 유물론자들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세상에는 이들이 다수고 내 편이 소수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세상꼴이 영 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언젠가 사적 유물론과 기계적 유물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유물론 운운하다가 쪽을 좀 판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모든 진리는, 만약 그것이 진짜 진리라면, 단 하나의 옳은 명제로부터도 다른 모든 것이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기, 정신, 영혼, 신, 따위에 어떤 인간적인 기대를 거는 것은, 단언컨대 '물건(object)'과 '사건(event, happening)'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 혹은 구분하지 않는 오해의 소산이다. '불'을 예로 들어보자. 불은 흔히 존재하는 것처럼 간주되지만, 그것을 '존재'라 부를 수 있는지는 애매하다. 불은 '물건'이 아니라 '사건'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인민들은 기나 정신 따위가 물건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여, 나아가 물건에 대해 비합리적인 물리력을 가할 수도 있다고 믿는데, 이는 불을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논증을 생략하고 내 방식대로 말해보자면, 모든 물건은 사건이고, 모든 사건은 물건과 물건이 관계맺는 방식이다. 나의 '정신, 의식, 영혼, (whatever you call),은 나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중 특히 뇌세포)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건(물질)들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필연적인 우연의 총합인 것이다. 이것이 물건과 사건을 올바르게 구분한, 내 모든 가치관의 근거이다.  따라서 나의 '정신, 의식, 영혼, whatever,은 내 육체의 소멸과 함께 완전한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 쓰다 하루치 체력이 고갈돼서 여기서 쫑. high하지 않으니 체력이 후달리네. 소설은 엉덩이로 쓴다-라고 말했던 게 하루키였던가... -_-;

덧붙여 이는 나의 생활을 위해서도 유감스러운 일인데다가 자뻑도 이런 자뻑이 없는 건데, 내가 옳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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