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일 월요일

효자동 이발사 흥행실패 이유

송강호랑 문소리가 살린 걸 감독이 다 죽이는구나...
무명의 못생긴 조연은 연기력이 좋을 거란 편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비중에 비해 연기력이 너무 후달리는 아역 제대로 안습크리. 흥행실패 책임 20%쯤 져얄 듯.

소재를 기준으로 보면 감독, 각본이 70% 배우가 30%까지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감독이 제 몫 일찌감치 말아먹고 배우 몫까지 깎아먹은 셈.


정밀한 고증엔 얼마나 투자했으려나?
사사오입, 김신조 사건, 막걸리 보안법 같은 좋은 소재를 저렇게 말아먹나.
웃음코드는 억지스럽고 대사도 구리군.
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는 쌈빡한 부분이 있는데 표현을 엉망으로 했다.


'버르장머리'를 강요하는 이념에 대한 거부감,
잘 묘사됐으면 큰 공감도 가능했을텐데.


역시 묘사가 능력이다.
시점을 일관성 있게 연출하는 형태로 에피소드들을 정리했으면 좀 더 나았으려나?
나레이션이 겉돌잖아. 다 큰 아이 나레이션을 왜 아역 목소리로 처리하는데...? 아놔 ㅅㅂ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아이를 구금하고 고문하는 것 같은 상황설정은 확실한 역사적 증거가 없으면 쓰질 말아야지.

영화 보는 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세상에, 저거 실화야?"라고 묻게 만들면서
변죽만 울리고 있으니 형편없는 영화가 된 것.


감독이 영화 끝내고 왕따됐을 수도.
부실한 시나리오에 배우, 스탭 고생만 조낸 시켰으니...


어설픈 신비주의에의 타협도 눈에 거슬린다. 아예 그 길로 가던가... 왜 역사성을 깔짝대서 소재를 망치나?


송강호, 연기는 언제나 만족스럽지만 가끔 대사 전달이 떨어지는 듯.


로케는 비교적 괜찮네.



결국 건질 건 기획 뿐이었냐...


두 번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므로 제대로 정리된 리뷰는 앞으로도 쓸 일 없을 것.


루저를 위한 변명 - 나에게 삼 비범의 의미

나에게 삼 비범은 어떤 의미인가

삼은,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자연의 선물이다. 내게 특별히 절실한 이유는 당장이라도 비범죄화 된다면 나와 내 벗의 자살을 편하게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또 어딘가 있을 누군가를 살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가서 죽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가만히, 그이가 왜 죽고 싶은지 이유를 묻는다. 굳이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이유는 대개 돈이면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졌어요." 가서 돈 벌어라. 돈 벌어서 남들이 말하는 성공하면 세상 여자가 다 네 것이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가서 돈 벌어라. 당신이 돈을 벌어 성공하면 누구나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그들이 당신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는 논외로 하자.

"부모님은 늙어가는데 애인도 없고 아프고 힘들어서 죽고싶어요." 그래도 무슨 수를 써서든, 가서 돈벌어라. 못 벌겠거든 로또라도 사놓고 당첨되길 빌어라. 99.999...% 확률로 꽝이겠지만, 별 수 없잖나. 그게 당신 팔자다.


하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면, "가서 돈 벌어라"는 할 말을 잊는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데요?"라고 물어올 테니까. 죽으면 모든 고통이 끝날 텐데 굳이 그 고통을 견뎌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삼이 개입할 수 있다면면 얘기는 달라진다.

"죽고 싶어." "삼을 해봐라. 살고 싶어진다."

너무나 당연히, 삼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잠시 위로해줄 뿐이다. 삼은 단지 어떤 '마음 약한 사람들'에게 삶을 견딜 수 있는 재미를 잠시 일깨워줄 뿐이다.

누구나 이 사실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진 않지만, 세상엔 그렇게 절망 속을 뒹구는 가엾은 영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줬으면 한다. 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상처받기 쉬운 여린 영혼을 가졌다는 것 뿐, 이들은 약한 탓에 악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들이 악하다면 그들이 수시로 처하는 곤경에서 악한 행동을 하는 것에 그토록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약한 동시에 악한 이들의 수가 많았다면 서울의 밤거리는 이렇게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약하지만 악하지 않은, 이들은 죄를 범하느니 자신을 파괴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들에게 흔히 던져지는 "강해져라."라든가, "맘먹기에 달렸다."라는 식의 충고는 비록 그것이 선의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더라도, 그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언어 폭력에 불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팔다리 없이 태어난 모든 이가 오토다케 히로타다(<오체불만족> 저자)처럼 노력하며 살아가게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강해졌다. 이들도 언제나의 누구나처럼 현대문명사회의 주문에 따라 더 강해지려고 노력해왔다. 강해지면서 악해지지 않으려니 삶이 더 고단할 뿐이다. 때로는 선천적, 때론 후천적인 이유로 이들은 영혼의 불구자가 되었다. 사회는 이렇게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이들, 혹은 더 '잘살고 싶다'는 욕망이 적은 이들을 아울러 '루저(loser, 낙오자)'라고 칭한다.


그러니 이 루저들에게 삼을 허하라. 삼은 천사와 악마를 모두 게으르게 한다. 선(善)은 비록 좋은 것이지만 강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게으른 악은 위험하지 않다. 선한 게으름과 악한 게으름 사이에서라면 누구라도 선한 게으름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삼에게 죄가 있다면 값이 너무 싸다는 것, 문명사 밖으로 꺼져줘야 할 퍽킹 루저들이 조금만 노력하고도 충분히 행복해져 버릴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막장테크 타는 자기소개서

'싸고 질좋은 쇠고기'라는 허황된 슬로건과 마찬가지로, 제가 찾고 있는 편하고 돈 많이 주면서 재미나는 일자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은 알고 있습니다. 가치란 언제나 그만큼의 댓가를 치뤄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세상으로부터 무언가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이를 위해 희생할 무언가를 내 안에 준비해둬야 하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귀하에게 제가 원하는 세 가지의 가치를 제시합니다. 이들 중 한 가지라도 만족시켜주실 수 있다면 저의 남은 청춘을 구입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하나는 '명분'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계몽주의자, 그리고 노빠로서, 저의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일할 것입니다. 혹 그 명분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다음의 두 가치를 포기하고서라도 매진해보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간'입니다. 저를 홀려낼만큼 충분한 대의명분이 없는 일이라면, 저는 단지 시간을 팔고 있을 뿐인 것이므로, 짧게 일하고서도 충분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만을 원합니다.

마지막 하나는 '쾌락'입니다. 일이 저의 재능에 부합하여 저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자리라면, 제 돈 내고서라도 배워두어야할 것이므로, 상기한 두 가치를 포기하고서라도 투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 세 가지의 가치가 바로 저로 하여금 1달 이상 근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귀하께서 원하는 것을 말씀하실 차례입니다.
만약 제 이력과 자기소개의 어디에선가 귀하에게 쓸모가 있을만한 어떤 가치를 보셨다면 제게 연락 주십시오.

일단 한 번 뵙고, 과연 누가 블러핑을 하고 있는지 따져봅시다.


좋은 부모 되기

만약에 나중에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면, 이런 이벤트 어떨까...

매년 아이의 생일마다 10분정도의 영상을 찍는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좀 할 줄 알게 되면, 매년 아이의 생일마다 1년 전 자신을 보여주고 1년 후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10분간 녹화하는 거다. 연습을 해도 좋고 뭘 어찌해도 좋지만 찍는 시간은 단 10분으로 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의 생일이면 이 행사를 잊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를 진정 사랑한다면 아이의 생일마다 단 30여분의 시간을 투자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보는데 10분, 찍는데 10분, 짧게 하면 30분이면 끝난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놓치면 안된다.

혹시라도 비행기 사고라던가 달나라 여행 쯤의 이유가 있어 놓치게 되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찍어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그런 이유도 만들지 말고 30분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다.


아이의 독립심이 강해지는 사춘기 쯤까지만 꾸준히 찍어주면 이후론 무슨 일이 있어도 깰 수 없는 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생일마다 어린 자신으로부터 편지를 받는 아이라면 생각이 자라남에 있어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난 이 '다름'이 장차 아이에게 무척 좋은 어떤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