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9일 금요일

유시민의 선택

이제 그에게 남은 카드는 대선 불출마 선언 뿐인 듯하다. 다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다. 변혁에 대한 갈망이 눈을 가렸을 뿐, 의석 하나 없는 정당에서 불쑥 대통령이 튀어나오길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였다. 물론 확률이 낮을수록 배당이 크다는 건 분명하지만, 노무현 같은 행운을 연달아 기대하는 건 욕심이랄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불쏘시개로 소모해버리기에 그는 너무 아깝다.

패전 직후, '그에겐 없고 노무현에겐 있었던 것'을 찾는 물음이 돌았다. 여러 말들이 있었지만, "노무현에겐 유시민이 있는데 유시민에겐 유시민이 없다"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당장은 '유빠'들이나 공감할 소리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유시민에겐 유시민이 없다. 그럼 유시민은 노무현에게 어떤 존재였기에 유시민에겐 유시민이 없는 걸까.

강금원 翁이 밝혔다시피 유시민은 '親盧'가 아니다. 강 옹의 친은 친족이라는 의미다. 유시민의 포지션은 노무현의 일가(一家)가 아니다. 따라서 강 옹의 증언도 거짓말은 아니다.

돌아 보자. 유시민이 대놓고 '커밍아웃'한 것은 盧대昌 대선 레이스 중반, 정점을 찍은 노풍이 사그라들면서 후보교체론이 시중을 달구던 시점이었다. 유시민은 여기서 노무현이 밀려나면 정치적 생명이 끝장날 것으로 보고, 정치인 노무현을 위한 생명보험으로써 개혁당을 창당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보호하려 나섰다는 점이다.

요즘 식자들은 정책과 이념, 시스템을 논해야지 인물론은 안 된다 하는데, bullshit이다. 정책은 결국 무언가를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이고, 이를 결정하는 건 사람이다. 현대의 민주정은 개인의 판단력 한계를 인정하는 까닭에 다수의 의결이라는 방법을 도입했지만, 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 또한 사람이다. 정책과 이념은 실천 이전엔 말의 집적에 불과하고 인물의 행적은 그의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유시민에게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는 이가 없는 건, 그가 말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그의 말들은 그 자신을 보호하기보다는 오로지 국민참여당을 보호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참여당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노무현을 구하려 유시민이 몰아온 한 줌의 의병- 개혁당의 후예들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위기의 순간에 노무현을 외면했던 민주당 주류에 대한 원한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유시민에겐 그 자신이 그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한 정치인의 책임윤리에 따라 이들을 '이기는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

다행히 그에겐 10%가 넘는 친노-비민주당 성향의 지지층이 있다. 세간의 평처럼 확장성은 부족하지만 그 만큼 더 견고하다. 이 10%의 발언권은 그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 하기보다 '킹메이커'의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진정성을 입증할 때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지난 경기지사 선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정치인으로선 매우 특이하게도 그에겐 유독 여성 지지자가 많다. 지적이고 섬세한 그의 이미지가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정치행위에 무관심하던 여성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결과로 보는데, 전례가 없는 만큼 파괴력도 가늠해볼 수 없다. 다만 이는 한편으로는 그의 결정적 한계가 될 수 있다. 남성들은 지적인 것에 대해서도 우열을 가리려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정작 정치시장의 주고객층인 장년 남성들을 사로잡을 방법이 적어도 현재로선 없다. 지적이라는 것은 말 뿐이라는 것으로 쉽게 왜곡되고 만다. 그의 득표력에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이러한 점을 통찰한 결과로 본다. 더군다나 이번 재보선마저 유시민과 참여당은 실력행사에 실패했다. 명색이 정치 지도자가 언제까지고 동정표로 연명할 순 없다.

그가 대권 자체에 뜻이 없음을 천명함으로써 그의 '단점'들은 도리어 그를 누구에게든 가장 강력한 러닝메이트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다. 참여당 또한 승산 없는 게임에 소중한 자원을 탕진하지 않아도 된다.

희망하기론 먼저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나 북한을 대하는 자세 등에서 어긋나는 지점이 적지 않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이나 민주노동당의 민족자주론이나 통하는 바가 있다. 무엇보다 신생-단 1석의 의석조차 없으므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직 공식적으론 출산조차 되지 않은- 국민참여당에겐 민주노동당의 올곧은 전통과 역사가 절실하고, 민주노동당에겐 집권 경험이 있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큰 쓸모가 있을 것이다. 우선 참-노 통합 논의가 본격화 되고, 나아가 그 의제가 정권 교체를 대비하는 예비내각 구성에까지 이르면, 어지간히 굼뜬 민주당도 야권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들 사이에 어떻게 신뢰의 징검다리를 놓느냐다. 유력주자 유시민의 불출마 선언은 그 주춧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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