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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7일 수요일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개인사적으론 처음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실감하는' 과학기술의 발명자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후세의 사가들은 우리의 시대를, 흡사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한 시대를 우리가 '근대', 혹은 '산업혁명의 시대'라 부르듯이, 또 하나의 혁명의 시대로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군가 현대를 일컬어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 했다. 허 모가 조조를 일러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했다는데, 본디 치세엔 영웅이 날 수 없는 법이다. 산업혁명이 낳은 자본주의의 구조가 얼핏 한계를 보인 지금이 바로 난세다. 난세가 영웅을 필요로 해서 나타난다기 보단, 난세는 영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으로서 작용한다. 빛과 물, 그리고 흙이 없다면 대부분의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것가 마찬가지로 영웅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영웅의 출현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말인즉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에 나오는 것처럼, 재림한 그(the one)를 십자가에 다시 매달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 우리 세계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가정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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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엔가 어디엔가 소용에 닿을 재능을 갖고 있다. 이는 공명정대한 신이 저 하늘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질량불변과 같은 자연 법칙에 의거한다.

 

(선생질로 먹고사는 한 친구가, 장래를 걱정해주지 않을 수 없는 소위 '불량학생'인 몇몇 제자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에, "장차 지구의 종말에 준하는 상황이 닥친다면 그 아이들의 재능이 인류를 보전하는데 더 도움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쓸모'란 항상 상황과 연동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 것인지에 대해선 100%의 확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0% 또한 존재할 수 없기에, 따라서 그런 아이들의 존재 가치는 유효하다. 그 개체수가 '지나치게' 증가하지만 않는다면.

물론 그 친구는 그다지 납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힐 영웅의 그 대안이 궁금하다. 그는,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아직 수긍하지 못한 누군가의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