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별일 없이 못 산다.

'잉여'의 삶을 산다.

 

한때 '애자' '병진' 등 어감은 기발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신조어들을 생산해내곤 했던 인터넷에서 요즘엔 '잉여'라는 표현들을 쓰는 모양이다. 초딩을 비롯한 키보드 워리어들이 사용하기엔 다소 고급 어휘라는 느낌도 있는데, 어쨌거나 고용없는 성장 시대의 핵심문제를 잘 짚은 듯하다.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필요에 닿고 닿지 않고를 떠나, 스스로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다만 그 어떤 쓸모에 대한 견해 차이가 커서 아직 우리 사회는 적당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을 뿐이다.

 

댓글 3개:

  1. 그러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유리되어 가는 저는 The King of Yingyeo.....



    잉여킹! 입니다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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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스로 잉여의 삶이라 생각하는 순간이 '잉여의 삶'이 되는건 아닐까?



    미칠듯한 경쟁의 세계에서도 스스로 '해야 할바'만 다 한다면..

    치열하게 살 필요도 없지 않나 싶구만...



    지방발령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나로선 특히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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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은밤톨아빠 - 2009/10/19 10:16
    자네 말은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흔해빠진 소리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지... 문제는 그 마음먹기란 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어떤 이는 자네가 말하는 '해야 할 바'로부터 상당부분 면제되는 혜택을 누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것으로부터 무작정 도피하기도 한다. 당연히 '해야할 바'를 알아서 잘, 열심히 하는 이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며, 그런 이들이 덕분에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어떤 이들의 해야 할 바는 다른 이들로부터 그 쓸모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도 하다는 게 내 이야기의 요지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 있어선-

    동생 테오의 경제적 도움 없이 반 고흐가 그의 명작들을 세상에 남길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이를 두고 어쩌면 고흐는 동시대의 동료들에 비해 그저 '운'이 좀 더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카프카는 어떨까? 그의 유언대로 그의 친구가 작품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면? 역시 카프카도 운이 좋았다.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지만.



    이처럼 어떤 가치의 실현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뒤따른다. 많은 위대한 창조들이 그 그림자에 숨겨진 어떤 이의 희생에 빚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이러한 우연의 확률을 높이는 게 바로 잉여에 대한 너그러움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커다란 발견들은 모두 그 시대의 잉여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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