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5일 화요일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는 법. 안희정.

처음으로 안희정의 연설을 보았다. 그는 먼 지역 사람인데다, 감옥을 드나들고, 또 그림자 안에 있던 사람이므로, 그의 연설을 자연스레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 게 당연하다.

 

그는, 그가 딴지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슬픈 이유로 2인자의 노선을 택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은 기독교에 비유하자면 '십자가의 보혈'이 된다.

작년 5월 23일 아침까지만 해도 안희정에겐 미래가 없었다. 노무현이 몸을 던진 이유 중에는, 그의 앞길을 열어주려 한 의도가 분명히 포함된다. ("나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 노무현은 안희정의 책(<담금질>)이라도 팔아주려다 한번 크게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도지사 출마 연설에서 안희정은 "내가 노무현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이 또한 노무현이 인정한 바가 영상기록 증거로 남아 있다. 내가 참여정부의 노선을 강력히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그들은 기록하고 또 공개했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은 그래서 중요하다. 쥐가 쏠기 전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  

 

대놓고 자신의 장점을 자랑질 하는 것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건 (정치) 목숨을 건 도박과 같다. 진실로 한 점 숨겨둔 감춰진 일이 없는 사람만이 이 전략을 통해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한 점 부끄럽게 살기 쉬운가. 따라서 부끄러울 일 없이 살아온 삶이란, 일찍부터 삶을 형이상학적 가치에 따라 계획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안희정은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조숙한 학생이었다. 비록 그 의기는 크게 한번 좌절되기도 한 모양이지만.

 

그 좌절을 통해 그는 1인자 대신 2인자의 길을 택했다. 충청도 사람 답다. 경상도에 의리가, 전라도에 기백이 있다면, 충청도에는 끈기가 있다. (경상도에는 87년 대선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김영삼이 하고, 다음엔 김대중을 밀어주자"라는 여론이 있었다. 그리고 80년 광주 이전까지만 해도, 박정희는 전라도에서도 김대중과 박빙을 이뤘다.)

 

이에 비해 은근하고 끈질긴 충청도인의 기질은 김종필이나 이회창과 같은 '최고의 2인자'를 여럿 탄생시켰다. 최고의 2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1인자의 자질을 가진 이가 2인자의 위치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1인자의 자질을 가진 이라 할지라도, 대세가 따르지 않는데 무리하게 1인자의 위치를 탐내게 되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어쨌거나 결국 1인자의 자리를 거머쥐지 못한 이들 덕분에, 충청도는 지역감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안희정은 연설을 통해 지역감정을 대놓고 도발했다. 그는 당당하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즉 전라도와 경상도의 두 대표선수를 합당한 댓가를 치르고 계승했다.

그는 참여정부 5년 내내 실업자 신세였고, 노무현 사후엔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그에게 민주당 잔류가 위험했던 까닭은, 노무현 살해의 종범들과 동침하는 것이 되므로 '골수노빠'로 불리는 분들의 적극적 비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극성맞은 분들의 타겟이 되면, 정치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는 이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들을 끝내 견뎌냈다. 그리고 이제 '지역 감정 해소'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김대중과 노무현 공동의 이상'을 계승하기로 선언함로써 그는 이 골수노빠를 납득시켰다.

 

우리나라 정치엔 2인자가 성공적으로 1인자를 계승한 전례가 없다. 언제나 그들은 1인자에 대한 부정 위에 자신의 기초를 쌓으려다 무너졌다.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가 지금까지처럼 현 정부의 폭주를 관망하며 2인자의 역할을 소홀히 하다간 다른 2인자들의 전례를 따르게 될 것이다. 2012년에는 안희정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몸조심하셔야겠다. 알아볼 줄 아는 자가 저들에 있다면 지금부터 싹을 잘라버리려 할 것이다. 그를 지키려면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

 

 

키워드 -

 

2인자 노선
2인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또 경험해본 사람

충청도 사람=말이 느리다.(어눌하다)
안희정, "충청도의 새 역사" 싸이즈 대박.

지역통합("김대중 노무현의 꿈 이어나가고 싶다는 것이 꿈")
2인자가 1인자를 승계하는 방법.
'진성노빠'들에게 민주당 잔류의 명분 명백히 설명.

자기 장점 대놓고 말하기. 당당함. 부끄러워 할 일이 없음.

"안희정이 누구야?"
정보 전파의 기회. = 컨텐츠가 있다면 입소문을 탄다.

서울 집값이 충청 발전(세종시)과 직결되는 이유 명백히 설명.
"봉급생활자의 집세(및 대출이자) 부담"
세종시는 이미 합의한 바가 있는 법안. ('절대 명분')

최초의 충청 출신 대통령 가능성
최초는 언제나 환영받는다.

말씨가 바뀌지 않은 사람. 말씨의 중요성.(무의식적인 인상비평을 좌우한다)

 

"386의 마지막 과제와 임무"
중앙권력에 대항하는 분권의 시대를 열어야


"전국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
골고루 잘사는=평등 강조=좌파적 시각을 자연스럽게 침투시킨다

 

세대론
근대화 세대 / 민주화 세대, 그리고 자유분방한 20대-상실의 세대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한 바보 가면, 더 큰 바보 찾아올까? 더 큰 바보 될 수 있으려나???
    6백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습니다.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백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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