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0일 월요일

나는 글쟁이다.

나는 글쟁이다.
김동한
2011. 5.30

그리고 결혼한 남자(married man)다.
한번에 두 가지 선언을 하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더욱이 그 둘 모두가, 일반을 납득시키기 매우 까다롭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 밤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해내지 못하면 어쩌면 오늘을 결혼기념일로 삼게 될 수도 있다.
안녕 친구들. 나는 이제 여자에게 항복하러 간다.

나는 서른네 살의 남자다. 강원도 춘천에서 방 두 칸짜리 17평 전셋집에 산다. 내가 살아본 중에선 가장 쾌적한 환경이다. 이번 여름엔 아무래도 에어컨을 놓아야지 싶지만 전기요금이 걱정이다. 지구온난화도 조금쯤 신경은 쓰인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벽지 색깔이 거의 처음 그대로다. 작년 여름부터니까 한 바퀴 돌아본 셈이다. 이제 내게도 춘천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대해 몇 마디쯤은 말할 자격이 생겼다.

그런데 이 자격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게, 나는 통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란 것이다. 유별난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유별나단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한때는 엉덩이가 매력 포인트란 얘기도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소수의견이었지만.) 오늘 아침 그녀에게서 엉덩이가 쳐졌다는 얘길 들었다. 거울에 비춰보니 정말 쳐졌다. 볼품없이 좁아져선 왕년의 그 탱탱하던 엉덩이가 아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탱탱했느냐면 친구 계 모군은 "쓸살"이라는 별명을 내게 붙여줬다. "쓸 데 없는 데만 살이 붙은 놈"이란 뜻이었다. 이 말은 꽤나 리듬감이 있어서 하마터면 모든 녀석들에게 퍼질 뻔했다. 그때 그걸 막아준 친구와는 아직도 막역하게 지낸다.

중학시절 나는 워낙 운동을 싫어해서 온몸이 군살 덩어리였다. 종합생활기록부를 보면 중학2학년 키 155.0 몸무게 45.8 가슴둘레 76.8 앉은키 79.7로 나와 있다. 100m달리기는 18.7초 던지기 32m 체력급수는 5급이다. 대충 봐도 썩 자랑할 만하진 않다. 다만 초등학교 졸업 때 143.1였던 키가 고1때는 170.5가 됐다는 거다. 3년 사이에 키가 27센티미터 자랐다. 그동안 내 주변의 친구들은 키 작은 녀석들로부터 키 큰 녀석들로 바뀌었고 이후로 나는 어디서든 '나는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게 됐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딱히 내게서 의리를 기대하는 것 같진 않다. 그럼 나를 만나주는 사람들은 내게서 대체 뭘 기대하는 걸까.

(엄창은 못 찍는다, 사정은 후술하겠다.) 뻥 안 까고 국궁진췌한 결과로 나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오늘 투항키로 한 것이다. 아니 내가 이미 투항해 있다는 사실을 어제 10시 경 개그콘서트를 보고난 후, 깨달았다. 나는 이 여자와 1년 가까이 한 침대에서 자며 대략 하루 걸러 한 번 꼴로 섹스를 했다. 사실 당시 가장 큰 난제는 "어떻게 해야 한 남자가 평생 한 여자하고만 떡을 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였지만 이건 생각보다 쉬운 문제였다. 정말 큰 문제는 이 여자가 떡을 그렇게까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년 가까운 시간동안 거의 일방적으로 나는 들이댔고 그녀는 지맘 내키는대로 받아주거나 받아주지 않았다. 정말 비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밝히기만 하고 영 만족을 못 시켜줬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여자 맘을 남자는 결코 모른다고만 해버리면 세상에 희망 따윈 없는 거다. 내가 무슨 변강쇠 스테미너라든가 하는 얘긴 아니고-현재의 나는 점점 더 ET형 체형이 되어가는 중에 있다-, 한 명의 기계적 유물론자로서 소싯적부터 성애의 테크니컬한 측면을 탐구해온 결과로, 나는 적어도 51%의 확률로 오선생을 마누라님께 모셔다 드릴 수 있게 되었다. 51%의 확률만 있다면 100% 이길 수 있다.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해선 이쯤 해둔다. 혹시라도 내 말이 의심되거든 내 마누라에게 댓글로 물어봐도 좋다.

이 여자랑 나는 부부다. 나는 이 여자의 남편이고, 이 여자가 나의 부인이다. 어젯밤 내가 먼저 깨달았고 그녀에게 말해 확인을 받았다. 솔직히, 계속 모르고 있었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부임을 인정받기 위해선 두 가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하나는 법적-종교적 절차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친지에 대한 절차이다. 전자가 公 후자가 私다. 전자는 혼인신고로, 후자는 결혼식으로 확정된다. 요즘 흔한 요란한 결혼식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찌질해 보일 테니 그만두자. 어쨌든 서로의 가족으로부터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절차는 아주 중요하다. 내겐 하나 뿐인 처제의 시댁 어르신 내외는 그 단촐한 절차를 위해 저 먼 인디애나로부터 여기 춘천까지 다녀가셨다. 처 역시 이 밤 이후 최대한 빨리 내 양친께 정식으로 소개시키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야 상견례를 치를 수 있다. 그게 예의라고 배웠다. 그리고 비로소 벗들에게 이젠 내가 유부남이 되었음을 선포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남자들 사이에서 유부남이란 언제든 핑계를 댈 수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배신자란 말과 뜻이 같다.

다른 절차는 혼인신고다. 혼인신고를 하면 명실상부한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 나라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나라의 다스림을 받으면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 문제가 여러가지로 깔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돈 문제. 부부 사이엔 돈 문제에 대한 분명히 합의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은 절대-보편적이어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내 경우엔 "니돈은 니돈 내돈도 니돈"으로 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앞으로 내가 얼마를 벌어들이게 되던 우리의 혼인관계가 지속되는 한 돈은 1원도 남김없이 전부 그녀의 것이란 얘기다. 진심이다. 엄창 찍고 싶다 정말.

혹 여기서 솔깃하신 여성분 계실까봐 굳이 덧붙인다. 오늘로부터 1년을 소급해보면 내 연봉은 정확히 3,058,879원이다. 월 25만원 꼴이다. 이것은 과세소득, 비과세소득은 물론 몇푼 안 되는 은행 이자소득 1원까지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차는 당연히 없고 재산도 한푼 없고 빚만 세 건 있다. 세 건 모두 이자와 함께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 명백한 채무다. 며칠 전 처조카의 학원비 결제에 할인혜택이 있다 해서 신한에서 신용카드를 만들려다 거절당하고 나니, 한심한 처지가 한결 실감이 났다. 심지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보증금조차 그녀의 것이다. 우리집 안에는 그녀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다. 나만 빼고. -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틀렸다. 이 집 안에는 그녀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다. 이 사실을 그녀의 어머님(나는 아직 당신을 장모로 호칭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지 못했다.)께서 아시면, 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사실이 몹시 불편하다.

하루는 이 사실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편지를 써놓고 가출을 한 일이 있다. 작년 말의 일이다. 배낭에 침낭과 비상식량을 챙겨 넣고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서울과 춘천은 90km쯤 떨어져 있다. 자전거로 못 갈 거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실감나게 어필하려면 한번쯤 가출을 해줘야겠는데 돈이 없었다. 그녀가 찬거리 사놓으라고 꺼내둔 만 원짜리 한 장과, 언젠가 그녀의 지갑에서 삥땅친 담뱃값 거스름돈 2,900원이 전부였다. 당시엔 미처 경춘선이 개통되지 않았고 가장 싸게 서울에 닿을 수 있는 고속버스의 요금은 6,400원이었다. 왕복요금으로 12,800원을 사용한다면 서울에서의 새출발은 100원으로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짰다.

일단 서울에만 닿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서울에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겐 친구가 적어도 두 명이 있는데, 둘 모두 내가 긴급구조 요청을 한다면 나를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친구A는 100% 나를 돕겠지만 평소 군말이 없는 녀석은 아니다. 아니꼬운 소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B는, 정말 그 녀석의 도움만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한번씩 모두 받아 거대한 '원기옥'이라도 한방 녀석에게 쏘아 날린 후, '굳이 그렇게도 네가 나를 돕고 싶다면 돕게 해주지'란 기분으로 받고 싶지만, 만약 내가 서울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을 때 친구A가 받지 않는다면 곧바로 B에게 도움을 청할 계획이었다. 요청할 도움의 내용은 이러했다. 잘곳과 먹을 것이 필요하니 돈 백 만원을 내게 다오. 고시원을 구해 머물면서 편의점 알바라도 구해보겠다. 지금까지 받아온 도움에 대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은혜는 형편 될 때 갚겠다.

도움을 구하고 이런 약속을 하려면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자전거 타고 90여km 달리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진심이 통하게 하려면 먼저 진심을 보여야 한다. 나는 이 세러모니가 적어도 친구A에게만큼은 내가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증거할 수는 있을 것으로 봤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고 그를 찾았다면 그는 설사 돈은 내어줬더라도 의미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연민은 내가 벗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돈 12,800원으로 도로변 휴게소에서 물 한 병과 초코파이 한 상자와 담배 한 갑을 샀다. 남은 돈은 돌아갈 차비로 남겨뒀다. 처음부터 그녀가 편지를 읽고 돌아오라고 한다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남긴 편지를 밤 늦게서야 발견했다. 역시 기분이 많이 상해 있던 그녀는 집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을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고 한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때 무슨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는 말을 제대로 안 하니 알 도리가 없지만, 편지는 너무 늦게 전해졌고 나는 그때쯤 가평을 조금 지난 지점에서 노숙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박에는 최소한 두 가지의 준비가 필요한데 바로 방풍과 방수다. 야외취침에서 상쾌한 아침과 가장 사이가 나쁜 애들이 얘들이다. 다음날 새벽부터 다시 달리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했다. 편지를 쓰느라 출발이 늦어 하루만에 서울에 도착하긴 틀린 상황이었다. 국도를 쌩쌩 달리는 트럭이 무서웠다. 마침 도로 변에 폐업한 스낵카가 있었다. 46번 경춘국도를 달리며 느낀 건 폐업한 상점이 많다는 거였다. 연애시절, 처는 경춘고속도로 개통 후 그쪽 상권이 다 죽었더라는 얘길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십년 째 해마다 두 번씩 강원도 전역으로 출장을 다닌다.

스낵카는 비좁고 먼지가 가득했지만 적어도 사면을 모두 가릴 천막을 갖추고 있었다. 원두막 형식의 간이 건축물이었던 덕분에 땅바닥으로부터 이격돼 침수도 피할 수 있었다. 곰팡이 냄새가 좀 나고 바닥에 깐 천막은 너무 바스락거렸지만 하룻밤 개겨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몇 년을 지니고 다닌 침낭도 든든했다. 옷도 내복부터 방한파카까지 갖춰 입고 나왔다. 모든 준비가 완벽했는데 하나가 미스였다. 장갑을 잘못 가지고 나온 것이다. 내 인조가죽 장갑은 그녀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주로 자전거로 다니는데, 그 장갑이 춘천의 겨울을 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필 그걸 잘못 들고 나온 것이다. 우리가 항상 장갑을 놓아두던 곳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한 켤레를 챙겼고 춘천 시계를 벗어나서야 그것이 오른쪽만 두 짝이었음을 알았다. 내 왼손은 그녀의 오른손보다도 너무 컸고 난 손이 너무 시렸다. 이 자리를 빌어 의암교 위에 목장갑을 버려주신 이름 모를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어쨌거나 결국 한 세 시간여 만에 스낵카 비박은 기각되었다. MP3로 음악도 들어보고 담배도 피워보고 오줌도 싸보았지만 난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곳은 너무 추웠다. 천막은 사면은 가렸으나 사귀를 막지 못했다. 침낭은 2005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마련한 것이다. 든든한 녀석이었지만 이젠 너무 오래되어 얇아졌다. 전여친이 정성껏 누더기처럼 기워준 흔적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버려졌을 것이다. 언젠가 쓸모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관해둔 것이 유효하기는 했는데 부족했다. 덜덜 떨며 담배 반 갑을 태워 얻은 결론은 가능한 빨리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체온저하의 징후 같은 건 없었지만 더 늦게 판단했다간 더 위험한 밤길을 잘곳을 찾아 달려야 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털고 나온 게 10시 반쯤이었을 것이다. 확실치는 않다.

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을 잘 하질 못한다. 대략 두루뭉술하게 어느 때 쯤으로 기억할 뿐이다. 역사시험에 불리했다. 우리집 가훈-즉 우리 아버지가 내게 가르치시고 싶었던 것-이 "시간관념을 갖자"였던 걸 생각하면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나는 통 시간관념이 없다. 이 글도 어제 11시 경 시작한 것이 어느새 5시 57분이다. 동 텄다. 내 여자는 안방에서 잘 자고 있다. 내가 어제 밤에 말하자면, 그러니까... 음... 세상 보통사람들이 얘기하는 말로, "프로포즈"를 한 건데 잘 자고 있다. 역시 프로포즈에는 돈을 쓰지 않으면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시간이 곧 돈이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다.

또 샜다. 나는 말보다 글로 써야 하는 종류의 인간인 것이, 얘길 하다 보면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서 내 얘길 듣는 사람들은 한참 끄덕끄덕 하다가 이내 정신으 차리고선 이놈이 대체 무슨 미친 소리를 하고 있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미치지 않은 걸 증명하려다 보니 배움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정답은 不狂不及이었다. 미쳐야 미칠 수 있는 거였다. 나는 미쳤든가 미치지 않았던가 둘 중 하나다. 나는 내가 미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 여자도 그걸 믿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말로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믿기로 했다. 그녀가 믿는 나는 믿어 볼 만하다. 그녀가 나를 믿어주는 한 나는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

병신같이 지가 쓰면서 지가 눈물이 난다. 이 느낌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내가 병신이라는 걸 꽤 오래 전에 알았는데 그건 정채봉의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을 읽었을 때였다. 나는 어리광을 모르는 아이였는데 이 시를 읽는 순간 눈물이 났다. iolive.com이란 곳에서 시 읽는 일을 하던 시절이다. iolive.com은 '다산씨앤드아이'라는 회사의 인터넷(벤처)사업부였다. 그들은 멸종을 앞둔 讀書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나만의 시집을 만들자'는 호기로운 카피를 내걸고 있었다. (당연히 망했다.) 나는 전역 후 복학을 위해 필요한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알바에 골몰하고 있었다. 돈을 빨리 많이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 시급했던 것이 그때 내겐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고 아버지는 늙어가고 있었고 아우는 방황하고 있었다. 사랑에는 돈이 들었고 복학에도 돈이 들었다. 나는 영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인간은 못될 것 같은 것이, 복학보다 사랑이 더 중요한 건 줄로만 알았다. 내 여자를 기쁘게 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그때 당시엔 실제로 했다. 이것만큼은 뻥치지 않는다.
그때 내가 찾은 답은 방통대였다. 방통대로 편입하면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동안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는 법이다. (거룩하고 거룩한 표정으로) 아인슈타인느님께서 E=mc^2이라는 복음으로 다 정리해주신 문제다.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기왕이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게 낫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야 된다. 안 그러면 독 먹고 죽는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그것 아니던가. 지지니까 쓴 건 뱉으라고. 그 다음이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이고.

암튼 방통대라는 희망 덕분에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좇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처참한 실패. 그녀는 나를 버.리.고. 나보다 키 큰 남자한테 갔다. 버리고에 방점을 둔 것은 이게 내 전여친과 전전여친 사이를 해명할 유일한 변명꺼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여친을 상당기간내버려뒀고, 그건 분명히 사람을 다치게 하는 반작용이었다. 나는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인이다. 용서를 받지 못한 이유는 죄값을 아직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밀양> 보면 그렇게 다 나온다. 난 안 봤지만 보면 그렇게 나오는 건 안다.

...
system functioning error.
폭주 중이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06시 59분. 1시간만 있으면 그녀가 깨어난다. 적어도 9시 정각 그녀가 사무실 랩탑을 켜기 전까지 이 글을 게시하고 싶다. 그때가 효과가 극대화 될 만한 타이밍...일 것이다. 글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흘러버리면 다시 읽어 보기가 두렵다. 나는 그렇게 자신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건 내 친구A군이고 나는 썩소가 잦은 심술 궃은 사람이다. 심술 궃은 사람들은 약점 보이기를 꺼린다. 남한테 심술을 부리려면 자기는 완벽하게 방어되고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완벽하게 방어하려면 피적중률을 0%까지 끌어내려야 한다. 약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까닭이다 문체가 나오는 건 내 안의 꼰대가 발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쓸 물건이 아니니 넣어두어야 한다. 꼰대와 선생의 차이는 학생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가르치는가에 달렸다. 꼰대 들어가.




글을 쓴 용건으로 돌아가자.

나는 나를 믿어주겠다는 이 여자에게 나를 입증해 보여야 한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이 여자의 소원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여자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안 믿는다는 점에 있다. 어느날 내가 이 여자에게 당신 소원이 무엇이오 물으니 내가 자기한테 한 달에 50만원씩만 벌어다 주면 다른 소원은 없겠단다. 아니 백만 원 천만 원도 아니고 어찌 오십 만원이오 되물으니, 그달치 가계부에 빵꾸가 대략 그 정도 났던 모양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내가 춘천 살면서 이 여자한테 돈 벌어다 준 것이 딱 30만원 이게 전부다. 그나마 늙으신 아버지가 맡은 노가다에 나흘간 시멘트 몇 포대 모래 몇 포대를 대신 날라드리고 또 좀 비벼드린 후 벌어온 것이었다. 해머드릴이 과열돼 가게가 정전되고 만 자잘한 에피소드 등이 있지만 역시 소소하니 그만둔다.

암튼 나는 이 여자에게 한 달에 50만원씩만 벌어다 주면 되는 거다. 그거면 이 여자의 자유이용권사랑을 살 수 있다. 얼마면 되니? 확실히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방금 (8시 45분 경) 그녀가 출근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가는 그녀를 돌려세워 뽀뽀를 했다. 뽀뽀와 키스의 차이는 침이 섞이느냐 마느냐다. 오늘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다른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자 머릿속에도 지우개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깊이 기억되고 싶다. 나는 이런 욕망을 老化의 증거라고 본다.

오늘은 스스로 정한 마감 날짜다. 내겐 오만 삽질 끝에 너무도 당연한 걸 깨닫는 특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감을 정하지 않으면 완성도 없다는 것이다. 마감 이전에 쓸 수 있는 데까지 쓰고, 시간에 맞춰 글을 맺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누구의 의뢰로 쓰는 것도 아닌 만큼 자율해야 한다.

일단 9시 개봉은 틀렸다. 9시 23분.




30줄 요약


내 전여친은 이소라였다.
내 전전여친은 박정현이었다.
나는 김태현이었다.
김제동처럼 늙어갈 운명이었다.

다행히 내겐 윤도현 같은 친구가 있었다.
더욱 다행히 박명수 같은 적도 있다.
더욱더욱 다행히 아직 출연도 안 한 친구가 잔뜩 더 있다.

이병진 같은 동생도 있다. 이건 진짜 행운이다.
동생은 김연아 같은 딸과 이승기 닮았으면 싶은 아들을 낳았다.
동생도 한때는 김범수 같았다.
제수씨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BMK 같다. 절대적으로 좋은 의미에서다.
(나와 내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이 제수씨란 것만 알아주면 고맙겠다. /굽신)

모두 임재범 같은 아버지가 계셨던 덕분이다.
낳으신 어머니는 이은미 같으셨던 모양인데,
기르신 어머니는 <비 내리는 호남선>을 좋아하셨다는 정도밖엔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대놓고 자랑해도 괜찮겠다 싶은 게 김어준 같은 스승도 계셨고
스승은 노무현 같은 왕께로 나를 이끌어주셨다.

그리고 하마터면 짝퉁 김연우에 그쳤을 나를 이끌어준 또 한 사람.

오늘부터 나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유부남으로 행세할 것이다.
진작부터 유부남이었는데 나만 몰랐던 거다.
어젯밤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다.
태원이 형은 비밀을 가진 남자라야 매력 있다고 했는데, 형 미안. 난 이제 좀 지치네.

그리고 그녀는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최초 난 이 여자가 백지영인 줄 알고 만났더니 웬걸 박명수를 가장 좋아한단다.
하기는 이 여자도 내가 하현우일까 기대도 해봤을지 모르는데...
이놈도 아니고 저놈도 아닌 나놈은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어제 다음과 같은 사항에 동의했다.
우리는 사실상 부부다. 그러니 부부로 행세하자.

나는 우리가 부부가 된 만큼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의 목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싱크대에 음식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제 저녁에도 그녀는 수박 껍데기를 함부로 싱크대 안에 흘려 놓았다.
설거지는 내 담당인데
고무장갑을 쓰지 않는 나는 식기에 잔반이 많이 묻어 있거나
축축한 잔여 음식물의 잔해가 싱크대 안에 널려 있으면
그 안에 손 넣기가 영 께름칙한 기분이다. 손에 물 닿는 거 싫어하는 건 여느 주부와 같다.
바로 옆에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깡통이 있는데 왜, 어째서?

이 일은 그녀가 노력하겠다고 말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노력이라는 말을 49%만 믿는다.
노력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여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질 않기 때문에
눈으론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자기 자신 같은 건 잘 믿질 않는다. 그래서 더 거울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믿는다는 건 증거가 없는 걸 믿을 때 쓰는 말이다.
여자들은 정말 여간해선 잘 믿지 않는다. 대신 믿으면 끝까지 간다. 이건 남자들 얘기 같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나 남자는 증거가 없어도 믿어야 남자다.
어떻게 남자는 증거가 없어도 믿을 수 있을까?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물어뜯는다.
그러다 뭐 하나 얻어 걸리면 좋은 거고 아님 말고.

이 세상에 내 쓸모를 더 분명히 입증하지 않으면 안돼.
남자에겐 항상 이런 압박이 걸려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나는 이 문제를
이 사회에선 쓸모에 대한 어떤 적절한 합의가 통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한다.
돈은 여러모로 굉장한 쓸모가 있는 발명품이긴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기능을 가치 評價의 척도라고 한다면,
價는 분명한데 評에 대해선 도대체 뭐라고 한 마디도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돈은.

나는 꽤 어려서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3가지, 神과 권력과 섹스였다는 중2병스런 허세를 시종일관 부려왔다.
덕분에 이젠 나름의 해답을 얻었는데,
신은 無所不在하므로 인지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차이에 의해 사물을 식별하므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신은 자동적으로 소거되고
남은 건 권력과 섹스인데 반드시 둘 중 하나가 정답이다. 美食과 好色 중의 택일이다.

나는 호색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성욕에서만큼은 제 만족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이 필연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가 잉태다.
어떤 경우에도 잉태는 죄가 되지 않으며, 모두의 축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文明이 도대체 무슨 쓸모란 말인가.

돈이 광기에 빠진 이유는 식욕만 양지를 활보하게 둔 채, 성욕은 음지에 숨겨 가둬둔 까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매트릭스가 여자들로 하여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면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남자들 역시 정신없이 그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게끔 만들었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이건 틀렸다.
뭐든 둘이 짝을 이뤄 함께 가는 게 맞다.
닫힌계(界)라면 한 변수의 증가는 반드시 다른 변수의 감소로 이어진다.
그러나 지구는 닫힌계가 아니다. 날마다 태양은 지구에 에너지를 넘치도록 쏟아 붓고 있다.
우리가 지구에 좋은 조경사가 되어준다면 앞으로도 수억 년은 거뜬할 어마어마한 양이다.
우리가 내 아이 네 아이 덜 가리고
더 잘 나눠 먹이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고민해본다면
다른 세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남자라면
여자로 하여금 이런 허황된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
그럼으로써 無에서 有가 창조할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다.
남자는 생래적으로 허무하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쓸모가 없다. 쓸 데가 없다는 게 남자의 본질이다.
모든 단성생식 생명체는 암컷이다.
수컷은 위험 감수(risk taking)를 목적으로 암컷에 의해 창조된 부차적 존재다. 도마뱀의 꼬리다.

이렇듯 쓸모에만 따라 사람을 가르게 되면
risk를 taking할 수 없는 유약한 개체는 더욱 존재의 의미가 없으므로 소거되는 게 맞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역설이라는 말장난을 통해 도무지 부재하는 것을 실체화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향해 타임캡슐을 쏘아 날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어야 공존할 수 있다.

나는 그 타임캡슐에 이소라와 박명수와 내 상염색체우성 다낭신 유전자를 함께 담아 쏘아 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내 쓸모를 키워서 일단 나부터라도 나를 믿어줘야 한다.
나조차 믿을 수 없는 나를 남이 믿어줄 리 없다.
그런데 여전히 내겐 아직 너무 어렵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굳이 미결의 단서를 붙인 건 어떤 것도 내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아직은 믿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다.
당신이 나를 믿어줘야 세상이 내게 돈을 주고, 그래야 그 돈을 내가 당신 코앞에서 흔들어 줄 수 있다.
약속했다시피 모두 당신 꺼다.




어젯밤까지 내가 유부남임을 자각하지 못한 건 내게 철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거창하고 더 간략하게 말한다면, 나 어젯밤에 철들었다. 당신이 이걸 믿어줘야 한다.

해서
프로포즈 치곤 다소 폭력적이라 미안하지만, 여기서 나는 당신의 혼인서약을 듣고 싶다.

이 말은
사적으론 당신 어머님께서 나를 "김 서방"으로 부르실 수 있게끔 당신이 날 도와달라는 의미이고
공적으론 Miss와 Ms와 Mrs 중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Mrs를 선택하라는 뜻이다. Ms 말고.
혼인신고는 당신 취향에 맡기겠다.





못 다한 이야기

1)
현재시각 오전 10시 41분. 마감을 두 시간 가까이 넘겼다. 이젠 완전히 지쳤다. 이 정도면 이번엔 나도 최선을 다해본 것 같다.
이 글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읽게 되는 이가 있어 이 마지막 문단까지 왔다면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보기에 이런, 순전히 말 뿐인 프로포즈에도 어떤 가치나 의미,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혹시라도, 내 글에서 51%의 진정성이라도 발견했다면 나를 좀 응원해 달라. 승률에 도움이 될 같다.

2)
혹시 누군가는 궁금해할까 해서 덧붙이자면 내 전전전여친은 옥주현 같았다.
나는 나가수가 옥주현을 만나면 크게 흥하리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비결이 궁금하다면 질문은 김동렬 선생에게 직접 던져보시길 권한다. (http://gujoron.com/)

3)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 내가 글쟁이라니.
<나는 가수다>가 고맙다. 용기를 얻었다.
나는 <나가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두 축이 이소라와 박명수라고 본다.
박명수 씨야 딱히 유감이 없지만,
이소라 씨를 알현할 기회가 생긴다면 개인적으로 조용히 한번 여쭙고 싶은 게 있다.
그게 뭔지는 비밀이다.

4)
상대의 의중이 도대체 불분명할 때 고백을 시도한 건 살면서 딱 네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중2 때. 긴 편지를 썼는데 거절당했다. 여자애 별명은 '할머니'였다.
두 번째는 2005년 경 호주에서. 이삿짐 싸고 있는 여자애한테 나는 네가 보고만 있어도 참 좋다 그랬더니 나도 오빠가 좋아. 그걸로 끝.
세 번째 역시 편지의 일종. 며칠을 열병처럼 들떠 지내며 완성한 상당 분량의 이메일을 전송. 仁義禮知 사단을 모두 갖춘 그대를 경애하오-라고 적어 보냈더니, 그대는 勇이 모자라 나의 짝이 아니란다. 바로 수긍해버렸다.
네 번째는 지금의 처다. 밤새 이불 속에서 낮은 목소리를 녹음해 메신저로 보냈다. 많은 고백과 약속을 했던 건 분명한데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 그녀는 그동안 나와의 채팅 내용 거의 전부와 함께 그 파일 역시 잘 보관하고 있다지만, 나는 그걸 다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녀는 -요즘엔 꽤나 뜸해진 모양이지만- 간혹 다시 들어보는 모양이다. 아무튼 내 고백을 받아준 건 그녀가 처음이었다. 프로포즈도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 1시 13분. 도저히 더는 안 되겠다. 마침표를 찍자.
이런 글 쓰느라 오늘 점심도 직접 차려 먹게 해 미안하오.
사랑하오.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진심이오.

댓글 3개:

  1. 장문의 댓글을 달았었는데.. IE9의 오류로 인하여..
    날아가버렸... ㅜㅜ

    이런 말 로 프로포즈를 하는 참.. 어처구니 없는..

    딸자식 가진 부모로서.. 참 할말이 없소.

    그리고 누님.. 아니 이제 형수님이 되신.. 분께..
    가족으로서 참 송구스러울 따름이네...

    형수님.. 죄송합니다.. 형이 사람은 착하나..
    애초에 물욕이 없고.. 그 물욕이 다른 욕심들로 변한 사람인지라.. 이제와서 어찌할 수 없고..
    그저 형수님 만나 조금이라도 사람으로서 사회에 조금은 맞는 행동을 하는듯해 조금은 안심될 뿐입니다..

    버려지면 재활용도 어려운 판이니.. A/S 안되는 제품 구입했다 치시고.. 조심스레 잘 사용하시기를..

    그리고 형은.. '이병진 닮은 동생'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내놓지 않으면...
    담에 볼때 옆구리를 가격할 것이오..

    물론 이 프로포즈가 형수님 맘에 들어 먹혔다면 조금 봐줄 순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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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네가 이병진을 닮았다는 건
    자네가 키 작고 배 나오고 듬직한 사람이라는 뜻.
    나가수를 보면 이소라를 참 잘 다루지 않나?
    아니면 적어도 잘 이해하는 것 같지 않나?
    3년전쯤 소리소문 없이 결혼한 후 예기는 다소 무뎌진 듯하다만
    어느모로 보나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된 건 분명하지 않나.
    이만한 이유면 바디블로는 소중히 간직해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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