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9일 수요일

결혼이 '지옥' 또는 '사랑의 무덤'이 되는 까닭

다음은 결혼을 둘러싼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의 여러 양상에서 큰 줄기만을 추린 겁니다. 당연히 침소봉대하고 성급한 일반화도 있습니다.

 

1. 성비불균형 문제

 

현재 소위 '결혼적령기'란 건 갈수록 늦춰지는 추세로, 남성의 경우 대략 30~35세, 여성은 27~32세 정도이지요. 그런데 딱 이 세대가 대한민국에서 '성비불균형'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세대란 것이 문젭니다.

 

세계적으로는 여권신장과 함께 '혼전순결'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은 덕분에 남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도 섹스를 만족시키기가 용이해졌습니다. 여성분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하지만 알 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남성의 경우 섹스가 해결된다면 굳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널리 씨(?)를 퍼뜨리려는 본능적 차원의 문제지요. 상대적으로 여성은 임신, 출산과 함께 경제적으로 무력해지기 쉬운 탓에 '성실한 남성'을 배우자로 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런 괴리를 없애기 위해 여러 선진국들은 '싱글맘'을 위한 갖가지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지요. 헐리웃 로맨스 영화에서([이프 온리] 정도?) 동거 또는 그에 준하는 관계를 이미 갖고 있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의 '프로포즈'를 그토록 간절히 기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아직도 고전적인 결혼과 연애관이 살아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성에 대해 보수적인 전통적 가치관이 그 힘을 잃지 않은 까닭도 없진 않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결국 '성비불균형'입니다. (덧붙여, '혼전순결'로 상징되는 고전적 가치관 역시, 그것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으며 또 더 무너질 겁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시대의 흐름인 것입니다.)

 

자연상태에서 출산 당시 성비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아주 근소한 차이로 많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보다 활동적인 수컷들이 영유아기에 사고로 죽어나가는 경우가 좀 더 많은 것을 배려한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하는데- 어쨌거나 결혼적령기, 즉 생식적령기 쯤이 되면 거의 정확히 1:1로 맞춰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우, 성비가 심각하게 왜곡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현재 결혼적령기 남녀의 출생 즈음입니다. 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여자짝궁' 없는 남학생 많다"라는 내용의 보도가 신문과 방송에 실리기 시작했지요. 심지어 학급 편성 시 아예 '남자반'을 만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들이 자라나 결혼이란 걸 해야 할 시점이 오니 본격적으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세계적인 '비혼(非婚) 또는 동거' 추세를 역행하며, 남성들로 하여금 "더러워서 결혼 못 해먹겠네. 내가 무슨 머슴노릇 하려고 결혼하는 거냐."라는 식의 자조를 늘어놓게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요즘 한국남자들 결혼하기 어렵습니다. 여성으로부터 엄격한 심사를 거쳐 간택을 받아야 간신히 결혼을 할 수 있는데, 요즘 여성분들 좀 까다롭나요.

 

 

2. 경제위기 담론

 

그런데 여성분들이라고 해서 마냥 편한 것만도 아닙니다. 이유는 경제위기 담론, 즉 높아진 눈높이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가처분 소득 때문입니다. (눈높이가 높아진 것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된 탓이 크며, '경제위기'란 말에 굳이 '담론'을 덧붙인 것은 이 위기감이 어느 정도는 허구에 기초한 것이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시쳇말로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고 하지요. 모두 우성형질의 배우자를 바라는 암수의 본능을 반영한 것입니다. 남성이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문제-'임신과 출산' 때문에라도 여성은 상대적으로 안정지향적일 수밖에 없다는 정도로 보시면 적당하겠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의 능력이란 곧 경제력을 뜻하는데, 이 경제력이란 것이 쉽게 갖춰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입니다. 현대 한국 경제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남성들을 '모든 걸 다 가진'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열패자(?)들로 갈라놓는 구조지요. 다시 말해 여성들이 취할 만한 '쓸 만한 남성'의 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여성분들의 '쓸 만한 남성'관은 대략 이렇습니다. "난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냐. 집에 재산은 없어도 좋으니, 그냥 연봉 3000 쯤 되는 '조금' 안정적인 직장에, 남 보여주기 쪽팔리지 않는 정도의 외모였으면 좋겠어." 성실하고 자상한 성격도 갖췄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 남성의 몇 %가 이 '쓸 만한 남성'의 커트라인 안에 들 수 있을까요?

 

그러니 이 소수의 '쓸 만한 남성'을 쟁탈하기 위한 여성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살인적인 다이어트 스케쥴을 견뎌내고, 알뜰하게 모은 저축을 깨 눈과 코, 피부 등을 '살짝' 업그레이드 합니다. 또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유행에 너무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싼티 나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발랄한" 패션 센스를 발휘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겠지요. 이토록 어렵게 자신의 가치를 높였는데 아무 남자한테나 자신을 내줄 수 있나요. 정신줄 놓을 만큼 열렬한 사랑이 아닐 바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조건'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연애를 한두 번 해보고 나면, 아뿔사, 어느새 '내일모레 서른'입니다.

 

 

3. 트로피 와이프

 

비극(?)은 여기서 또 다시 시작됩니다.

미국 속어 중에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란 게 있습니다. "(부자가 얻은) 젊은 미녀 아내"를 뜻하지요. 우리에겐 어쩌면 '띠동갑 마누라'의 경우가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에는 노력과 재능, 행운 등 여러가지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공한 미혼 남성'이 되기 위해선 당연히 '연애질'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요. 연공서열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한국사회에서 어떤 남성이 '이만하면 그럴듯한 결혼식을 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겠다' 싶을 만큼 성공하고 나면, 나이는 이미 서른 중반을 넘어서 있기 쉽습니다. 어쩌면 그 성공의 과정에는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없다'며 떠나간 가슴 아픈 인연도 하나둘쯤 있었을 수 있겠지요. '섹스'를 만족시키는 데 특별히 부족함을 느낄 이유가 없는 이들이 문득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입니다. 바로 '2세'와 바로 '트로피 와이프'.

'2세'야 상식 차원에서 해석하기 어렵지 않은 문제이므로 그냥 넘어갑니다. 그런데 '트로피 와이프'란?

 

흔히 남성은 여성에 비해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것에 소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자신에 국한된 얘기라면 사실은 사실입니다만, "옆에 어떤 여자를 끼고 다니느냐?"의 문제라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고 했지요? 예, 아름다운 여친, 애인, 와이프는 성공한 남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입니다. 즉 '트로피(trophy)'지요. 이들에게 성공이란 아름다운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증거물로써 아름다운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일례로 '띠동갑 마누라'에 대한 남성 친구들의 반응은 대개 이렇습니다. "이런 도둑놈!" 그리고 바로 다음에 바로 따라 나오는 말은, "오~ 자식, '능력' 있네."

 

 

4. 결혼이 피곤해지는 이유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요는 결혼에 임하는 남녀의 서로 다른 생각이 현대 한국이라는 특수한 장소와 상황과 맞물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의 이유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a. 성공한 소수 남성

- 선택의 폭은 과거에 비해 더 넓어졌습니다. 온 세상 여성이 그들을 원합니다. 고르고 골라 어리고 예쁜 여자와 결혼합니다. '도둑놈' 소리가 듣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혼까지만 해도 '하자'가 없었던 이들의 부인은 결혼 후 '얼떨결에 잃어버린 청춘'을 그리워하며 남편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남성 또한 어려웠던 날들을 함께하지 않은-즉 조강지처가 아닌- 부인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남성의 성공에 위기라도 닥치는 날이면, 곧바로 지옥문이 열립니다.

 

b. 평범한 다수 남성

- 결혼 자체가 어렵습니다. 야동 따위에 탐닉하다 어느날 애인이라도 생기면 처음엔 감사한 마음으로 헌신합니다. 하지만 곧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항상 봉사와 희생을 요구받는다는 피해망상과, 어떻게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녀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결혼 후 덜컥 형편이라도 나아지면 성공한 친구들의 트로피와이프가 부러워집니다. "애들 때문에"라도 마누랄 버릴 순 없으니 탱글탱글한 애인이나 하나 만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c. 어린 미모의 여성

- 세상은 이들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운이 좋다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결혼생활을 일찍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곧 박제가 된 자신의 신세를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친구들이 어느덧 하나둘 열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랑에 빠져듭니다. 덜컥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채 늙어가는 건 아닌가 싶어집니다. '더 젊고 예쁜' 여자들에 남편이 혹하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세월을 이겨보려 안간힘을 써봅니다만 언젠간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임을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운이 충분히 좋지(?) 않다면 고르고 고르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 d 항목의 여성들과 동지가 됩니다.

 

d. 적령기(라고 쓰고 '고령'이라 읽는다)의 평범한 여성

- 주말에 할 일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죄다 애엄마. 서른두엇 전까지만 해도 "결혼 언제 할 거니?" 묻던 가족, 친지들이 이젠 슬슬 눈치만 봅니다. 찝적대는 놈들은 더러 있었지만 하나 같이 영 밍숭맹숭 합니다. 스스로를 '속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건을 따지고 싶진 않지만 가슴 속에 '불'이 통 붙질 않으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적당한' 남자와 '적당히' 사귀다 '적당히' 결혼합니다. 결혼-임신-출산까지 순식간에 세월이 지나갑니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낳은 자식은 하난데 기르는 건 둘입니다. 한때 '남편'으로 불렸던 '큰놈'은 단념하고 '작은녀석' 기르는 재미에 삽니다. 다행히 녀석은 아직 자신에게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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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의 남성과 연하의 여성 커플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전통적 가치관에 의한 고정'관념' 탓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도 어떤 커플의 결혼 성사 가능성이 남성의 경제적 자립도에 의존하는 구조가 반영된 것입니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력이 곧 계급, 서열의 '정당한' 지표가 되며, 이는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 원칙(?)에 따라 결혼한 대개의 가정에서 여성은 남성에 종속적인 위치에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인에게 구박 받는 경제력 잃은 남편은 이러한 관계의 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결혼은 여성의 성과 남성의 능력을 교환하는 거래였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서로에게 흡족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각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지 잘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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