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하면 된다"라는 카피가 눈에 띄었다. 실제로 변경된 건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로써 '쇼'와 'T'라는 두 거물 사이에 "하라"는 사라지고 "된다"만 남았다.
("생각대로 된다"겠지 "생각대로 하라"는 아닐 것이므로.)
"하라"가 진취적-능동적-행동/과정 중심적이라면
"된다"는 수동적-피동적-자기/결과 중심적인 뉘앙스를 띤다.
"하라"를 자기 외의 대상에 대해, 나의 선택에 의해, 결과에 개의치 않고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된다"는 자기자신이 특정 상태에서 '보다 나은' 다른 상태로 변이하거나, 타자가 그 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의지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워너비'라는 말이 있다. wanna be=want to be, 즉 '되고 싶다'란 뜻이다.
에리히 프롬은 근대 이후 언중들이 점차 'be' 대신 'have'를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남을 지적하면서 물질만능주의의 득세를 경계한 바 있다.
'want to do'가 아니라 'want to be'를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현대의 언중들에 대해 그라면 과연 어떤 분석을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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