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노무현 종교화 프로젝트

 

 

별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 '교주(敎主)'라는 직업이 앞으로 전망이 있겠다 싶어 그것이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성공하는 교주의 7가지 습관>이란 게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라는 주제를 정해놓고 꽤 진지하게 탐구했더랬다. 별 성과도 없었고 결국 7가지를 채우지도 못했지만, 과거의 몇몇 성공한 교조(敎祖)들의 사례들을 돌아보며 나는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첫째는 "교조는 생전에 영화를 누리지 못한다"였다. 예수는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붓다는 왕좌를 버리고 광야를 떠돌았다. 공자는 한 번도 뜻을 펴지 못했으며,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다. 젊어 죽건 늙어 죽건 제대로 된 교조라면 육신의 삶이 고난으로 가득차야 한다.

 

둘째는 "교조는 저작을 남기지 않는다"였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플라톤이 썼고, '복음'은 열 두 제자들이 남겼으며, '논어' 역시 안회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조는 다만 입으로 떠들 뿐, 받아 적어 후세에 남기는 일은 제자들의 몫인 것이다. 심지어 '라엘리안'들조차 끌로드 보리용이 외계인의 메시지를 받아 적은(적었다고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밖에 "교조에겐 말씀을 기록할 제자(들)이 있다"라든가, "제자들 중엔 꼭 말씀을 왜곡하는 얼간이가 섞여 있다"와 같은 자질구레한 공통점들이 떠오르긴 했으나, 점차 '갖다붙이기'란 느낌이 들어 그만두고 말았다.

 

어쩄거나 최근 내가 주목한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삶이 위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그의 삶은 더할 수 없을만치 드라마틱했으며, 그토록 염원했던 회고록조차 제 손으로 남기지 못했다. 그는 녹음된 목소리만으로도 눈물을 질질 짜게 된 수많은 제자들을 만들었고, 개중엔 그의 본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이들도 틀림없이 섞여 있을 것이다. 앞으로 50년쯤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이름을 내건 사상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앙이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인간을 제외한 어떠한 것의 신성성(神聖性)도 부정하는 자들'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 위에 인간을 벗어난 초월성를 덧씌우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둔다. 그 이름은 이런 하찮은 노력 없이도 역사에 길이 빛날 테지만.

 

댓글 9개:

  1. 그럼 노대통령의 교주로서의 실수는, 대통령이 된 것인가요? 듣는 귀를 찾으려 높은 곳에 올랐으니, 들리지 않았을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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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직 정치적 입지도 정하지 못한 저에겐 참으로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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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화애 - 2009/12/20 11:34
    링크해둔 노짱의 육성에서 들울 수 있다시피, 대통령이라는 직위는 그분께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목적을 위한 과정, 수단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음이 확실합니다. 그에겐 "대통령"도 '높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지속 가능한가? ... 인간과 지구의 관계가 뭐냐? ... 답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고 철학적 문제제기를 해줘야 되는 것이거든요."(11:58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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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키다링 - 2009/12/20 13:30
    역시 노짱의 육성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글을 대신하겠습니다.



    "... 시민들의 요구를 분명하게 하자. ... 조중동에서 뭐라고 떠들더라도 지 욕심 지가 꽉 쥐고 가면 되는 거다. ... 시민들이 자기 생활 상의 이익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정책과 자기 이익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오늘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까지를 셈할 수 있는 시민만 충분히 성장해 있으면, 정권은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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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왠지 Beholder님이 교주의 대를 이으신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쿨럭..ㅋㅋㅋ .돈 많이 모으시면 저 순대 한 접시 사주세요..갑자기 순대가 먹고 싶네요..쿨럭..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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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야야 - 2009/12/20 22:37
    노무현교(?)는 헌금을 걷지 않기 떄문에 돈이 모일 것 같진 않습니다. ㅎㅎ 그래도 순대 한 접시라면 어렵지 않겠지요. 두 접시는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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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진보의 미래 출간기념회 동영상을 두 번 정도 들은 적 같습니다. 기록대통령답게 퇴임후에도 저런 시청각기록물을 남겨주신 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더 많은 자료들이 그저 남아있기만을 바랄 뿐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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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훈남수집 - 2009/12/23 21:41
    제가 백 년 후 그의 이름이 전설로 남을 것임을 확신하는 또 하나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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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여보 나좀 도와줘란』 책을 1994년인가 출간했던 적이 있으셨으니.. 모든 조건을 충족한 건 아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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