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뉴스를 보다가 문득

 

대략 전선이 두 개로 압축된 듯하다. 하나는 한명숙, 다른 하나는 세종시.
적들은 세종시 전선을 이참에 마무리하고, '한.명.숙' 석 자를 더럽히는데 일로매진하고 있다. 성동격서라고나 할까.
 
 
- 민주당은 어느쪽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
특히 세종시를 타협하면 민주당은 공중분해 될 것이다. 토픽에서 세종시가 사라지고, 유야무야되는 순간, 충청은 완전히 넘어 가고 호남은 산산조각나며 영남은 확고부동해진다.
필요하다면 서울을 적으로 돌려도 좋다. 서울 유권자 대부분이 지방에 친인척 하나쯤은 다 갖고 있다. '서울 대 지방' 구도로 몰아가면, 서울 가족은 지방 친인척들의 전화공세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로해지는 것을 육체적 피로보다 더 괴롭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 한명숙 해법?
저들은 대놓고 힘으로 눌러버리겠다는 전략이다. 정치에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이 유권자에 대체로 부정적이던, 좋은 시절은 지났다. 도덕이 가출한 시대니 만큼, 사람들은 강한 것에 더 쉽게 굴종한다. 저들은 굴종하는 백성을 원한다. 따라서 효과적인, 좋은 전략이다.
강제연행도 불사할 것이 확실하다. 양 어깨 치들려 끌려나오는 모습이 TV로 나가면 한 전 총리의 정치적 생명은 끝이다. 그걸 막으려면 물리적인 '수성전' 한 판이 크게, 오래 벌어질 것인데, 그 그림이 클수록 아군의 피해가 막심해질 것이며, 결국 한명숙 카드도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강제 연행을 막는 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체포 경찰이 서를 뜨기전에 물리적으로라도 제압해야 한다.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공세적인' 실력행사를 하면 현재 민주당의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인 "무기력함"을 씻어내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법리 논쟁은 대중에 오래가지 않는다.
 
- 한명숙은 대선 직전까지 결코 버릴 수 없는 박근혜의 대항마다. 박근혜는 (좀 이상하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는 상당수) 여성들의 강력한 롤모델이며, 그녀가 박근혜이기 때문에라도 적의 가장 강한 카드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의 저 철옹성 같은 지지율을 크게 한 번 흔들지 못하면 아군에 희망은 없다. 한명숙은 박근혜를 링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다. 노통은 이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으로 한 전 총리를 지목하셨던 것이다.
 
 
 
내친 김에 보태기.
 
- '4대강사업'을 핵심 쟁점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동력이 필요하다. 한 번도 저지되지 않은 MB의 '폭주'는, 그의 '불도저같은 추진력'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저들은 "4대강사업=경부고속도로"라는 등식을 내세워 '건설족'에 떡밥을 뿌리는 동시에, '영남'에 아첨하고, '지방'을 기만하는 등,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 프레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와서 "4대강 사업"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지 못할 바엔 차라리 손 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이 '손 터는 과정'은 극적이어야 한다. "개발"은 어차피 첫 삽 뜨고도 한참이다. 단기 이익의 환상을 허락하되,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 분명히 하면, 틀림없이 어디선가 탈이 난다. 그 '탈'들은 하나하나 MB의 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최선은 사업 자체를 막는 것이다. 한 번 막힌 불도저는 더이상 믿음직한 불도저가 아닐 것이므로. 그러나 너무 늦은 듯하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면 "내 돈(세금)으로 뻘짓한다"쯤에 있을까... 자기돈에는 민감들 하니까.
 
- TV를 완전히 빼앗겨버리면 승리 비용은 곱의 곱이 된다. 이미 너무 많이 밀렸다. 인터넷의 영향력은 2002년에 비해 오히려 축소했다. 반비례로 TV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SBS는 애당초 기대할 것이 없었고, YTN도, KBS도 하나둘 넘어가더니 드디어 MBC마저 저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판이다. 이에 손석희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큰 전력이 될 것이다. (당내 행사 또는 '범진보진영' 행사에 초청 연사로 정치적 발언을 유도, 보도되도록 하는 방법 정도가 떠오르긴 하는데- 글쎄...) 엄기영은 노출이 많지 않아 성향을 잘 모르겠다.


※ 이상, 어젯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홈페이지에 올린 글.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Call to arms

간만에 의욕나서 답방 투어를 좀 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나와 어딘가 통할 것 같은 사람들'이 산다.

call to arm.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다.

공성 전차는 모여서 한꺼번에 들어가야 한다.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밀덕 : 밀리터리 마니아

 

 

밀덕

'밀리터리 오타쿠(마니아)'를 낮잡아 이르는 말.

 

 

남성성이 이를 수 있는 극한의 영역 가운데 하나.

오로지 실용성 만으로 다듬어진, 한 점의 애교가 없는 디자인. 반할 만하다.

 

 

 

정치 망상

아고라에 이상하다 싶을 만치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180 루저' 발언을 트리거 삼아 새삼 폭발한 것 같긴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담론 자체는 그보다 적어도 1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된장녀" 운운하는, 낮은 계급에 속한 젊은 남성이 현혹될 만큼은 그럴듯한 사례들이 많다.

 

권력은 항상 이들 '낮은 계급에 속한 젊은 남성 집단'을 부릴 수 있는 자들이 쥐었다. 이들이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계층이다. 이런 걸 떠올리면 아고라의 우경화 조짐은 막연하지만 분명한 불안요인이 된다.

 

...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박근혜-최초의 여성 대통령' 만들기를 기도하는 세력이 있다고 상상하는 건 역시 지나친 망상일 뿐인 걸까.

 

 

남녀갈등이 커지면 어쨌거나 국면은 그녀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예컨대, 이들 '젊은 우파 남성' 그룹의 표가 필요하다면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 (일부) 부과하겠다"는 떡밥을 던지면 되고, 그들의 안티 그룹(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부터 온건한 남녀평등주의자들까지)의 표가 필요하다면 남녀 평등에 관한 슬로건을 내걸면 된다.

 

- 저들이 선거전(戰)에 지역 갈등'만'을 이용하리라 생각할 만한 근거가 내게 있는가?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댓글 읽는 대통령

노무현이 특별했던 점 또 한 가지는, 그가 인터넷 댓글을 읽는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말과 글 곳곳에서 그가 상시로 인터넷 댓글을 읽고, 드물게는 쓰기도 했던 것이 드러난다. 이 가운데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 흔적이 있다. 익명성을 보장해줘야 더 많은 '생생한 백성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은 분명한데, "악플러" 문제나 "언플" 문제의 발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그는 "사.사.세"와 "민주주의2.0" 등을 통해 모종의 실험을 진행 중이었으나,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떠났다. 관찰의 기록을 별로 남기지도 못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가만히, 20초 정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온다. 아직도.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조증이 온다

1.

세상사가 다시금 눈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쉽사리 진정되질 아니한다. 연달아 피워무는 담배의 탓이 크겠지만 그것을 피워 물게끔 하는 울렁임이 있다. 하나의 중독으로부터 깨어나 다른 중독으로 옮겨가는 중인 듯하다. 두어 달 깊었던 울증이 가고 조증이 오는가 보다.

 

 

2.

한동안 외면하려 애썼던 세인들의 아우성이 다시 귀를 때린다. 엉뚱한 곳을 헤매며 답을 구하는 이들이 안타깝고, 답이란 없다고 믿게 되어버린 이들이 딱하다. "한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국제결혼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치들의 독단, "180 안 되는 남자는 루저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그녀들의 순수한 어리석음, "수능을 망쳤어요, 어찌 살아야 될지 막막"하다는 고교생의 공포 같은 것들,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고도 깊다. 이를, 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어떤 여자아이는, 이런 것들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그런 아이였다-, 항상 슬프고 아팠다. 너무 슬프고 아파서 아무 이야기도 보고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유약함을 나무라곤 했지만, 이제사 좀 알겠다. 많이 아프고 무서운 것이로구나. 느껴버리게 되면.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Sacred land 망상.

1.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라자]를 보면 '세이크리드 랜드(sacred land: 신성불가침의 영역)'라는 마법, 혹은 유사 마법적 현상이 등장한다. [드래곤라자]의 배경이 되는 대륙에는 여러 신격(神格)들이 공존하는데, 특정 지역에 어느 한 신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해져 다른 신들의 '법칙'을 무시하고 해당 신의 법칙만이 작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죽음의 신'의 세이크리드 랜드에서는 이미 죽은 자가 좀비로 되살아난다던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 동 저자의 후속작 [퓨처워커]에서는 '순결의 신'에 의한 세이크리드 랜드가 나타나 동식물의 출산이 줄어드는 상황이 묘사되기도 했다.(실제 원인은 다른 데 있었지만 어쨌거나.)

 

문득 '세이크리드 랜드'라는 키워드가 떠오른 까닭은, 진정한 종말이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말하자면 종말은, 혼돈보다는 질서의 과잉으로부터 온다. 엔트로피 증가의 끝은 열평형 즉, 완벽한 질서다.

 

가변적인 것, 불확실한 것,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혼돈이라면, 질서는 불변의 것, 절대 진리, 필연의 법칙과 인과율 같은 것들일 터이다. 유사이래 종교를 비롯한 인간의 진리 체계들은 대부분 이러한 질서를 추구, 혹은 유지하는 것을 선(善)으로 정의해왔고, 나 또한 인류의 한 일원으로서 여기서 파생된 여러 규범들에 대체로 수긍하고 순종하는 편이다. 인간의 선은 인류의 존속에 기여하는 것이라야 한다.

 

2.

그런데 여기서 나는, 우리 한국인은 지나친 질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어찌 보면 '현대'라는 시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특징으로, 굳이 말머리를 '한국인'으로 제한한 것은 외국의 사정을 잘 모르는 탓일 뿐 대강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질서에 사로잡혀 있다.

 

혹자는  온갖 패륜적 범죄들, 묻지마 살인, 등이 횡행하는 이 혼돈의 땅, 가치 상실의 시대에 무슨 개소리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죄악의 배후에는 하나의 절대 가치, 즉 '돈(money)'이 도사리고 있음을 아는 이에겐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좀 고상하게는 '경제'라고도 하더라마는.

드물지 않게 헤드라인에 오르곤 하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일면식 없는 타인을 난자하는 등의 흉악 범죄들은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그동안 기록되거나 전달되지 않았을 뿐, 인류사에 늘 있어온 일이다.

 

오히려 새로운 것은 극히 합리적으로 계산되는 우리 '행복'의 평균과 총량이다.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적어도 '평균 이상'의 생계를 원하는데, 그 평가의 잣대가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것이 거대한 질서의 힘이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 나올 일은 없다. 해가 갈수록 서울대는 강남 출신 학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고,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각자가 그리는 '보통의 삶'을 쟁취하려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로또라도 맞지 않는 한 나는, 그리고 당신은 서로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뻔한 삶 위를 걷게 된다.

 

'암흑기'라고도 불리는 유럽의 중세 외에, 그 어디 어느 때에 이토록 강력한 질서가 자리할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말인즉,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또 하나의 '암흑기'로 보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내 삶이 대체로 유쾌하지 않은 것에는, 거창하게도, 대략 이런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