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1일 목요일

친구2

친구라는 말로부터 내가 두 번째로 떠올리는 인물은 L군이다. 이 친구가 두 번째가 된 까닭은 늦게 만난 탓도 있지만, 이 자의 성향이 어떤 면에 대해선 나와 완전한 대극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그 까닭을 같은 기질이 다른 환경 속에 자라난 탓 아니겠는가- 추측한다.) 이 친구와 교류를 시작할 무렵, 나는 그를 "적(敵)"이라 부르곤 했다.

 

 

중국 삼국시대에 위나라에는 양호라는 장수가, 오나라에는 육항이라는 장수가 있었다고 한다. 꽤나 끗발 날리는 장수들이었다곤 하는데 그래봤자, 말하자면 대하 드라마 삼국지 제작 후기 쯤에나 잠깐 등장하는 식이니 별 비중은 없는 이름들이다. 아무튼 이 양반들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 하니, 이런 고사가 '호항지교'라는 말로 전한다.

 

272년, ... 하루는 양호와 육항이 같은 시간대에 사냥을 나갔는데 양호는 오나라 군대의 구역을 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냥을 하였고 자신의 구역 안에서 오나라의 화살에 맞아 쓰러진 짐승은 모두 오나라에 돌려주었다. 이에 약간 오기가 생긴 육항은 사냥감을 돌려주러 온 병사에게 양호가 술을 좋아하는지 물었으며 병사가 "술은 잘 마시지 못하시지만 좋은 술이면 아주 잘 드십니다"라고 말하였고 육항은 웃으며 "좋은 술이 있으니 사냥감의 답례로 장군에게 바치거라"하며 술을 한 병 내주었고 병사가 그 술을 양호에게 바치자 양호는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술을 한 병 모두 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수들은 "적군의 장수가 보내온 술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함부로 드셔도 됩니까?"라며 걱정했으나 양호는 "육항은 그렇게 치사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대답하였고 하루는 육항이 병으로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접한 양호는 병사에게 시켜서 육항에게 좋은 약을 지어 보내도록 하였다. 육항은 양호가 보낸 약을 보고 "이 자가 내가 보낸 술값을 보내왔구나"라며 약을 먹었는데 오나라 장수들도 양호의 장수들처럼 약을 먹는 것을 말렸으나 육항은 개의치 않고 약을 먹고 쾌차하였다.
...
274년, 다시 병으로 누운 육항은 죽기 전 서릉의 중요성을 손호(오나라 왕)에게 알려 서릉의 방비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긴 상소문을 올렸으나 손호는 이를 무시하였고 육항은 49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육항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양호는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나라를 멸할 수 없다며 ... 오나라 공격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 사마염(위나라 왕)은 양호가 죽은 뒤 그의 의견을 수용하여 ... 오나라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 이로써 약 100년간 이어진 삼국지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내용출처)

 

적이란 내게 이런 의미이다. 어쩌면 이 친구 덕분에 나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품기 이전에, 한 번 정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쩐 일인지 요즘엔 좀 낙심한 듯하다. 안빈낙도할 타입이 아닌데 그러고 있으니 영 어울리지가 않는다. 이봐, 아직은 우리 한 번 더 실패해도 괜찮아. 불혹이라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고독이라는 것이, 이제와 새삼 더 두려워해야 할 무엇은 아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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