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5일 화요일

초성체가 싫다구?

1.

국문과 출신(잠시 뿐이었지만)에, 한때 문장을 문법에 맞춰 뜯어고치는 일을 업으로 삼던 전직 편집자(이 역시 잠깐...), +자칭 글쟁이로서 나는, 인터넷과 방송을 떠도는 형식 파괴의 신어(新語)들을 볼 때면, 묘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한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는 유감이 많은 편이긴 해도, 지식·정보의 보급과 전파에 있어 '표준화(standardization)'란 불가피한 일로 납득하는 쪽이다.

이를테면 '출판용 문장'과 '블로그, 다이어리용 문장'을 구분한다는 식이다. 출판의 경우 아무래도 웹에 비해 비용이 더 크므로 보다 선별된 컨텐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비용'의 문제는 언제나 중요하다) 또, 웹의 텍스트가 공시언어학의 과제라고 봤을 때, 출판은 보다 통시적이다. 후세에 남기는 현재의 유적과 같은 것이다. 비교·참조할 텍스트 없이는 해석이 불가능하다면 그 의미는 사라진다. 즉 유행을 타선 곤란하다.

 

이와 관련해 [다음 웹툰]의 초신성 '랑또'라는 작가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남겼다.

 

"분명 1년만 지나도 촌스러울 거야- 흑흑. ㅠ.ㅠ" - <악당의 사연>, 후기 중에서

 

이에 비해 웹에서의 글쓰기는 한결 자유롭다. (역시 비용의 문제다.) 과연 몇 %의 독자들이 "드립"의 의미를 알고 함께 웃을 것인가. "꿀벅지"의 유행 또한, 2009년을 전후해 불어댄 '걸그룹'들의 쇠젓가락 같은 다리의 광풍이 지고 나면, 마니악한 취향의 하나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who care?

 

 

2.

후(後)-근대는 9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간신히 이 땅에 상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에서는 하루키가 공전의 히트를 쳤고, 인문학에선 푸코와 데리다가 유행했다. 정치경제에선 케인즈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가치의 해체, 더 많은 자유'로 요약되는 이러한 경향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세력을 확장해왔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애당초 그러한 것으로 시작되었던 웹의 경우이다. 웹은 후-근대의 신생아다. 따라서 웹에서는 오히려 후-근대적인 것이 '주류'가 되었다. 주류라 함은 그것을 새삼스럽게 의식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뜻이다. 인지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해서 '포스트모던'은 이곳에서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다.

 

'악플러'나 '낚시글'과 같이, 이들의 전위를 통해 두드러지는 웹의 중요한 경향 가운데 하나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글쓰기다. 그들의 행동(action, 또는 reaction)은 원칙이나 논리보다는 충동과 감상을 동력으로 삼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엔 '목적'이 아예 없거나,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건 과정과 그것을 즐기는 글쓴이 자신이지,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 따위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혹시 이 포스트를 읽고 있는 독자가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그것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도 있다. '설명문'이랄지 '논설문' 등으로 분류할 만한 포스트, 즉 '목적이 분명한' 글타래가 과연 몇이나 될까.

 

 

3.

나는 여기서 후-근대의 이후를 본다.

 

목적이 불분명한 글쓰기란 바꿔말해, '자기목적적인 글쓰기'라 할 수도 있다. 창조자 자신만을 위한 피조물.

이를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라 해도 상관없다. 자위 잘하는 사람이 섹스도 잘할 확률이 높다. (뭐든 못하는 것보단 잘하는 편이 낫다.) 단순한 배설이나, 모욕을 목적으로 하는 악플이라도 괜찮다. 모욕은 그 내용과 대상이 합당하지 않을 경우 결국 그 칼끝을 발화자에게 겨눌 것이다. 무엇보다 욕을 들어쳐먹어야 할 것들은 욕을 좀 먹어주는 게 서로에게 이롭다. 욕도 관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짓인 것이다. 무플은 악플보다 외롭다.

 

마찬가지로 형식 파괴의 신조어 또한 아낌없이 남용되어야 한다. 형식이란 목적을 위해서나 필요한 것이다. 목적이 없는 글, 혹은 자기목적적인 글이라면 형식에 얽매여야 할 이유가 더욱 없다. "ㅋㅋㅋ"도 좋고, "아 ㅅㅂ 꿈"도 좋다. 더 많은, 더 경박한 댓글을 마구 날리는 게 좋다. 중요한 건 그럼으로써 발생하는 '더 많은 소통의 기회'이다.

 

인터넷 댓글을 눈여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그림과 같은 광경을 한 번쯤은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다음 웹툰 <내츄럴 리로리드 : 시커먼 빛>(전상영作) 22화의 '베플'.

 

어떤 상황 아래서는 가장 조악한 표현이 가장 적확할 수 있다. 도대체 문자 텍스트로 어떻게 표현해야 "ㅋㅋㅋ"로 드러내는 정서, 즉 조금 방정맞고 꽤 실없이 웃으며 동시에 '당신이 왜그러는지 난 알지롱'하는 심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한국어에 외국어를 무심코 섞어 씀으로써 국어를 오염(!)시키는 것도, 국어교육을 너무 잘 받은 한국인이 외국어엔 통 젬병이 되는 것도 모두 이와 관련된 현상들이다.

 

 

4.

이쯤에서, 어떤 초월적 선(善) 의지의 추종자들이나, 신념의 투사들은 '격조(格調)'란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형식의 파괴 속에서 번뜩이는 실마리를 제때 잡아채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낙오할 것이다. 이외수가 우연히 <하악하악>을 낸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저들은 이미 그것을 하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이타적 유전자와의 생존게임에서 더 쉽게, 더 많이 살아남는 이유는 일단 많이 낳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는 똘추들은 그저 얼간이일 뿐이겠지만,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살면 결국 그 손해는 결국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인 것처럼, 발화(發話)되지 않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당신의 견해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당신의 생각보다 가치없지 않다.

 

 

 

 

 

지네 다리


 

 

댓글 2개:

  1. 글 잘 읽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라고 해도... 반복해야죠.........

    세상엔 다 알거라고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시되면서

    부터 문제가 생기니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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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resident - 2010/01/07 00:54
    진지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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