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친구 1

내겐 정치를 시키고 싶은 벗이 하나 있다.

어떤 의미에선 내게 단 하나뿐인 이 친구가 최초 사학과를 지원했던 것은 어쩌면 청소년기 나와의 교류에서 조금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도무지 학자 타입이 아닌 녀석이 사학과를 지원했다 했을 때는 역시 납득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녀석은 정치외교학과로 학적을 옮겼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졸업을 했다. 정외과라면 납득할 수 있다. 정확히 뭘 배우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에겐 리더십이 있었다. 항상 무리의 중심에 있었고, 무리를 이끌었다. 대체로 선생들과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의 적과도 원만히 지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항상 유지했다. 녀석이 학생회장이니 반장 부반장 따위를 별로 하지 않은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녀석에게는 의로운 구석이 있었다. 바로 내가 녀석에게 반한 부분이다. 물론 오늘날의 왕따현상이나 '이지메'의 원류라 할 따돌림이 우리 시절에도 있었지만, 녀석은 그런 아이들에게 다소 짖궃게 굴기는 할지언정, 누구도 무리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스스로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녀석의 무리 안에 끼어들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에겐 용기가 있었다. 굳이 나누자면 나는 스스로를 비겁한 쪽으로 분류하는 편인데, 그것은 내가 나서야 할 때 침묵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녀석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되면 저가 알아서 나섰고, 누군가가 떠맡기면 피하지 않고 맞섰다.

 

 

녀석에게 생은, 날것 그대로의 것이었을 것이다. 낡은 책 속의 늙은 문자가 아닌, 펄떡이는 삶 속에서 녀석은 녀석의 길을 찾았다. 녀석은 지금 빛나는 사람들을 빛날 수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끔씩 녀석은 내게 전화를 걸어 푸념같은 말들을 한아름 쏟아놓고선 내 구름 잡는 소리에 잔뜩 고개를 주억거리고 돌아가곤 하는데, 여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녀석은 자신이 그리던 길 위에서 얼마간 비껴나 있는 듯하다. 충분히 치열하게 살지 못한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시련과 권태가 그에게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요즘 녀석과 전화를 맺을 때는, 어떻게든 휴가를 내 적어도 일주일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고하곤 한다. 왠지 녀석은 굵어져가는 허리와 반대로 점점 메말라 가는 느낌이다. (점점 바싹 말라가는 내가 이런 얘길 했다는 걸 알면 녀석은 피식 웃을 테지만) 지난 십 수년간 쉴새없이 퍼올린 네 안의 우물이, 드디어 이제 바닥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는 재능이나 그릇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청춘이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확신하건대 최근 몇년간 자네는 단 몇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것이다.

 

댓글 2개:

  1. 제가 동경하는 인간상이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저자신을 beholder님이 말하신 '비겁한 쪽'에 분류합니다. 항상 뭔가를 말할땐 용기있는 척 말하면서도 막상 용기를 내야할때는 가만히 침묵하고 있지요

    답글삭제
  2. @Prezident - 2010/02/02 02:18
    좋은 말만(?) 써놔서 그렇지 흉보려면 없지도 않지요. ㅎㅎ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