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교주님의 덕, 차가운 자비_ex여친글2008.06.18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맹랑한 저요저요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며칠, 날이 미친듯이 덥더니 장마라는군요.

장마라고는 해도 하늘이 찢어진 것 같은 박력은 없이 다만 비가 오다 말다 할 뿐이네요.

 

저는 아침나절에 우산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나갈 때에 외간 남자의 일인용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 그의 한 쪽 어깨를 적시게 하는 호사도 누려보았답니다. (같이 교육받는 남자분이었습니다^^) 헤헤

 

 

 

이번 요즘의 말씀은 우리 교주님을 일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무감정하고 덕이 없는 이'라며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의 진술입니다.

 

저는 교주님의 덕悳을 '차가운 자비'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나오는 사신四神의 별칭 중에 백호를 '차가운 자비'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이름만 차용하였음을 밝힘니다.)

자비라는 것은 따습고 온건한 것인데 차가운 자비라니 이건 무슨 말장난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만은, 열에 들뜬 이마를 짚어주는 서늘한 물수건 정도로 비유해도 괜찮을는지요?

 

일전에 교주님 앞에서 제가 투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꿍얼꿍얼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고, 딴엔 최선을 다했는데 일이 안되었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정색하여 말하길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게으름을 피웠으며 그러한 결과가 이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단호한 부정에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주님이 사용하셨던 단어인 '최선'이나 '게으름'은 여느 사람이 말하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최선'이라는 단어를 '반드시 하여야 하는' 이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게으름'이란 말에는 '죄악'의 꼬리표를 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대화 중에 '최선'이나 '게으름'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우리는 긴장하기 마련이지요. 어느 결에 자신이 비판적으로 말되어질까봐 예민해집니다.

 

하지만 교주님이 사용했던 단어는 단어 그대로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비난한 것이 아니었지요. 하여 그의 말은 차가웠으나 저를 상처입히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말하고, 감정적으로 말하고, 말한 것을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말하기에 열중해있던 저에게는 이채로운 사건이었습니다.

감정이 배제된 그의 말하기는 자칫 무감동하여 차갑게 들릴 수 있으나 결코 대상을 상처입힐 마음이 없는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주님의 덕悳을 차가운 자비, 공정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멋진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 주인공 포르코는 전쟁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스스로 돼지로 변한 인물입니다.

저는 현대에서 인간 종으로 살아가는 게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다만 파란 하늘을 눈동자에 품은 한 마리 명랑한 보노보가 되고 싶습니다. (보노보 : 침팬치속에 속하는 두 종중에 하나임)

 

하지만 교주님은 제게 도망치지 말라고 지엄하게 이르십니다. 비전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갈 것을 권하십니다.

인간 종의 생태가 제겐 혼란스럽고 시절은 하 수상하지만,

오늘도 정성껏 한 자 한 자 적어봅니다.

 

재밌게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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