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8일 월요일

만화속세상 웹툰 <이끼>에 대한 작은 리뷰

1.
결국 참지 못하고 <이끼>(_윤태호)를 봐버렸다. ㅡ,.ㅡ;

안목이 글빨만 못한 어느 리뷰에 실망하고서 작품을 보기 시작했는데
64화에서 아주 좋은 댓글을 발견했다.

이보다 더 잘 정리된 <이끼> 스토리는 아직 못 보았다. 복잡한 머리속을 정리해주신 거울과장갑님에게 감사드린다. 댓글 중 하나로 묻히는 게 아까워 교정과 윤문을 살짝 더하여 게시판으로 옮긴다.

 

2.

이제까지 내용 정리해봅니다_거울과장갑

 

그린벨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무허가 기도원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 기도원장은, 천형사의 '권력'과 기독교의 '신앙'을 이용해 기도원 사람들의 헌금을 갈취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자신이 범한 살인에 대한 를 씻고 싶었던 류목형은 경기도에 가족을 두고 이곳 기도원에 찾아옵니다.


자신의 구원을 얻고 기도원 사람들의 구원을 인도하고자, 기도원장의 악행에 대항하여 주민들의 헌금으로 스스로를(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게 하려 합니다. 그가 기도원 사람들로 하여금 그린벨트로 넘어갈 해당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땅을 사고 집을 살 수 있게끔 돈을 모으던 중,그가 위협적인 존재임을 알아챈 기도원장과 천형사는 그를 무고해 감옥에 잡아 넣습니다.

 

그 사이 권력에 얻어맞고 신앙에 미혹당한 주민들은 다시 천형사와 기도원장에게 순응하게 되고(구원을 포기), 이에 류목형은 심판을 계획합니다. "왜, 내도 그 심판 목록에 들어가 있나?"라는 천형사의 말에 "두려움이 당신을 구할 것이오"라는 말로 답한 것은, 이미 천형사가 류목형 자신에게 기울었음을 파악한 것이겠지요. 영지의 일을 부탁한 것도 천형사를 일종의 시험에 들게한 것입니다.


결국 영지의 일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이 류목형에게 교화되었음을 입증한 천형사는 류목형의 퇴소일에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보는데, 이미 심판을 계획한 류목형은 경기도에 살고 있는 자신의 부인을 데려오게끔 합니다.

이는 나중에 살게 되는 그곳, 즉 현재 류해국의 상황이 펼쳐지는 그곳 외의 다른 세상과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단절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이 단절이 류해국의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기도원으로 돌아온 류목형은 기도원장은 물론 주민들이 구원을 포기하고 다시 예전의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날 저녁, 류목형은 심판을 내립니다.


댓글 중에 류씨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분이 계신데, 출소를 하기 전 육개장을 비우는 류목형의 눈빛은 이미 심판을 결심한 그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악행을 계획한 거죠. 어쨌든 그후 '심판의 현장'을 부인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의 악마적인 내면을 표출해 부인을 확실히 단절시킵니다.

 

월남전과 기도원에서 악행을 저지른 류목형,

형사 시절 권력을 토대로 탐욕을 채우던 천형사(이장),

그 외에 여러 곳에서 다종다양한 악업을 쌓아오던 사람들...

 

이 사람들이 모여 또 다시 스스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마을을 이뤄 살아갑니다.
류목형과 그들 사이에 '모종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요.
마을의 시작과 끝, 천형사(이장)
그 시작과 끝을 있게 한('알파와 오메가', God의 은유) 류목형...


심판 후 마을 구성까지의 내용은 약간의 비약이 있는 듯도 한데...
앞으로 연재될 내용을 살펴봐야 할 듯하네요...
특히 류목형의 집에 숨겨진 그것... 류해국이 알아챌까 이장이 두려워하는 그것이 무엇일지...

예측은 해보지만 확신할 수 없네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

 

 

 

3.
중요한 점은 <이끼>가 위 스토리라인처럼 전개된 작품이라면 절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아마도 매니아들에게나 전설로 남을 작품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 덕후라든지 사회 덕후 같은 매니아들. 진짜를 알아보는 눈은 있지만 별로 돈이 되진 않는다.

<이끼>의 능란한 스릴러식 연출은 '좋은 스토리'를 성공적으로 살려낸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문체가 중요하지 주제는 그 다음이란 거다. 게다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환상적이고 치밀한 작화. 연출과 스토리가 워낙 출중하니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림조차 사람들이 지켜보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나도만화가'에서 스토리가 그림의 투박함을 덮어버릴 만큼 멋졌던 작품 중에 <노병가>라는 작품이 있었다. 기대를 많이 했더랬는데 어딘가로 사라진 걸 보면 어디선가 낚아 데려간 모양이다.)

 

어쨌거나 '완벽함'에 가까운 작품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4.
"지나치게 정치화하는 댓글에 반대합니다."
64화에 달린 '힘냅시다'라는 분의 댓글이다. 추천을 구걸해 '거울과장갑'님의 댓글을 밀어내고 베플 자리를 차지했다. 어리석은 소리다. 정치적인 작품에 어찌 정치적인 댓글을 달지 말란 말인가. '힘냅시다'님의 선의는 이해하나 충분히 현명하진 못했다. 이런 댓글에 추천이 170여회가 넘게 붙으니 심통이 좀 났다.

 

 

5.
<이끼>를 보다보면 간이 떨려 죽을 것 같다.
"남을 진흙탕으로 밀어넣는 사람은, 진흙탕 밖에 서 있는 사람이죠."라니...!
전편에 걸쳐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던져지는 잠언적인 대사들. 너무 멋져서 오줌 지릴 지경이다.

성경을 두고도 "은 두고 가자"ㄴ다. 붉은 책발(책의 아랫 부분)을 그린 것만으로 그것이 성경책임을 드러내는 것이 작화적 연출이라면, 성경을 그저 '글'에 비유하는 것은 기가 막힌 문학적 은유다. 작가는 최소한 영적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심하면 도킨스주의자다. (그저 '신을 믿지 않는 것'과 불가지론, 적극적 무신론은 분명히 다르다.)

 

 

6.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까닭은 작가가 모든 등장인물들의 선의善意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옥에 이르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어 있음을 안다. 아니 뒤틀린 선의야말로 지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작품은 모두의 선의가 어떻게 서로를 타락시키며 지옥으로 이끌어가는지를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결말이 너무 절망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는 천형사의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현재 모습과 가장 닮아 있기 때문이다.

 

 (200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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