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엄마와 술먹었다_2001.06.19

논밭이 갈라지며 농작물은 말라죽어가고 있다지만, 당장 그것이 농산물 파동으로, 점심값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는 다음에야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주며 "내 탓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사실 그건 내탓이 아니니까.

 

엄마와 동동주를 두 병 나눠 마셨다. 딴 술은 모르겠는데 동동주는 한 병이면 나는 아주, 아~주 적절히 취한다. 두 병은 다음 날 출근에 애로사항이 있으니 곤란하고, 한 병, 딱 한 병이 적당하다. 나는 지금 아주 적당하게, 적당히 몽롱하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내 행복을 만끽할 만큼 취해있다. 내 글에 맞춤법에 시비를 걸지 않도록.

 

아버지와는 많은 술을 마셔왔다. 나는 예의바르게도 아버지에게 술을 배웠고 아버지와의 술자리를 즐기며, 아버지의 그 끊기지 않는 잔소리를 즐기는 편이다. 적어도 아버지의 지독하게 고집센 자기주장이 끊기지 않는 이상, 난 살아있을 수 있으니까. 난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엄마와의 술은 흔한 일이 아니다. 아니, 처음이다. 어차피 많은 기대를 걸지 않은 엄마에게 나는 많은 의지를 하지 않으려 해왔다.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부른다.

 

다들, 너무 많은 문제를 지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남의 짐을 함께 져 줄만큼 여유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 짐의 무게를 과소평가함으로써 여유를 과시해왔는데, 그닥 잘한 짓도 아닌 듯 싶다.

 

술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지금 지껄인 이 넋두리를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다. 더 술이 깨기전에 [등록]을 누르고 이 정리되지 않는 변태적 노출욕구를 만족시켜줘야 하겠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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