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8일 목요일

이성의 종말.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부쳐.

나는 스스로를 합리주의자, 계몽주의자라 생각한다. 그동안 이성(理性)을 따르는, 인류의 점진적 진보를 믿어왔다. 진리는 나의 빛이며, 진리에 이르는 길은 오직 인간의 명철한 이성에 의한다. 전체인 동시에 개인인 우리 인류의 복리는 이성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이성적으로만 추구될 수 있다. 어떠한 결과와 목적도 그 과정과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올바른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결과만이, 즉 올바른 수단으로 실현한 명분만이 올바르고 선하다.

이는 절대선의 명제다.

 

이 생각들 자체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나는 지난 23일, 지구인 가운데 일부와는 결코 타협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는 그동안 그들의 명분을 최대한 선의(善意)로 해석하려 노력해왔고, 일부나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화의 시간은 끝났다. 그동안 내가 신봉해온 노무현의 정신,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잠시 내려놓겠다. 피를 봐야 할 시간이다. 내 피든, 그들의 피든.

 

 

 

 

지난 1년 한국을 주시해온 북한도 결국 이렇게 결론지은 듯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핵실험쯤 되는 초대형 군사도발이라면, 김정일로 상징되는 북한의 지도부는 모든 준비를 적어도 수주 혹은 수개월 전에 끝내놓은 채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스위치는 눌러졌다. 공존의 꿈은 박살 났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미국정부는 난리가 나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 내전이 발발할 경우 파급될 정치적 효과와 경제적 효과 즉, 이익과 손실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내가 미국인이라면 지금쯤 군수품 조달과 관련한 주식을 사두겠다.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폭등할 테니까. 내가 미국 기업의 경영자라면 한국에 투자된 자금이 혹시라도 있다면 가능한 한 신속히 회수하고, 군사 조달 시장 어디쯤에 틈새가 있나를 탐색할 것이다. 전쟁까지 치닫지 않더라도 한반도에 시대착오적 냉전이 다시 시작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한국으로 불리는 땅에 살고 있는 건 확실한데 '인간'인지는 분명치 않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룰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정글의 룰이 지배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사는 것들도 인간은 아닐 터.

 

 


 

이는 그들의 룰이다. 그들에 의하면,
사회는 정글이다. 정글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식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사바나에서 사자가 앰팔라를 잡아먹는 일에 선악을 물을 수 있는가.

그러나 나는 앰팔라나 영양 따위 초식동물이 아니다. 나는 하이에나다. 하지만 사자가 먹고 남긴 찌꺼기를 탐내느니, 차라리 무리를 지어 사자를 물어뜯겠다. 사자의 숨통을 물어 끊고, 그 피와 살로 배를 불리고 나른하게 누워 그 뼈를 핥을 것이다.


백범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암살과 테러라는 더러운 방법을 피하지 않았고, 프랑스는 빵을 위해 왕의 목을 잘랐다.

왕의 모가지를 단두대 구멍에 밀어넣은 로베스 피에르는 결국 자신의 모가지도 단두대 위에 흘려야 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다시 이성을 되찾아도 될 '그날이 오면' 내 모가지를 제일 먼저 단두대 위에 올릴 것이다. 그날까지 누구의 모가지가 단두대 위에 올라가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사자가 죽은 자리에 하이에나가 오른들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반문하는 초식동물들에게도 더는 연연하지 않겠다. 그들이 초식동물로 존재하는 한 그들은 누군가의 먹이일 뿐이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오열
    영결식 당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정치권에 있으면서 그리고 제가 아는 한 DJ 선생께서 이 처럼 슬퍼하시는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당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을 나간 노무현 그리고 이를 바라보기만 했던 전 대통령 DJ. 아마 서로 간에 많은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시간은 흘러 흘러 DJ는 노무현을 싸늘한 주검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오열하는 DJ.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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