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정치와 경제 단상_2008.08.13

정치는 당위를, 그리고 경제는 효율을 추구하는 학문.

목적과 수단으로 구분해보면 정치는 목적에, 경제는 수단에 집착한다.

그래서 정치-법은 정상을 참작하지만 경제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경제를 선호하고 정치를 기피하게 된 건 90년대 후반 학번 이후 대세가 되었다.

(대학 진햑률이 80%를 넘겨버린 나라에서 특정한 문화적 추세를 대학문화 중심으로 설명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할 수 없다.)

이건희가 노무현이나 아니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 더 존경받는 이유랄까.

(이건희가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 설문조사에서 1위를 했다. 2위는 박정희)

 

 

이게 옳고 그름에 대한 유연한 사고(관용, 똘레랑스)의 확산의 한 증거라면 좋은 일이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사회 일반의 도덕과 윤리는 점점 더 돈 되는 분야에 대해서만 관용적이 되어간다.

 

수 년전 한국계 최초의 플레이보이 모델 이승희, 나쁘게 말하면 그냥 '잘 벗는 년'인데 국위선양했단 소리도 듣는다. 최근 MC몽을 좋아한다고 밝힌 일본 AV스타 아오이 소라, 자랑스런 한류의 증거니까 좋게 봐주고 만다. 파렴치 범죄로 별을 달았던 재벌 경영자들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사면이 정당화 되고, 민주주의를 개똥구멍만도 못하게 생각한 박정희도 근대화의 위대한 영웅이니 존경해준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여전히 덜 정치적이길 강요받고 좋아라 한다. 예컨대 초중등학교에는 '정치'과목이 없다. 이에 대해 불평하는 초중딩 본 적이 없다. 아마 컴퓨터나 영어과목이 오늘날처럼 확대되지 않고 내가 초중딩이던 시절처럼만 가르쳤다면 공교육은 훨씬 더 신속하고 확실하게 붕괴되었을 것이다. 경제도 없었지만 '경제 조기교육'이라는 말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대체 경제적 성공(돈) 말고 이 모든 걸 정당화시켜줄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소라나 이양은 기왕 잘 타고난 몸, 여러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공유해줬다는 걸 (물론 돈 좀 받고) 문제 삼지 않는다면 박정희나 재벌 범죄자 따위와 나란히 놓이는 것이 오히려 인격모독일 터.

 

 

목적은 수단의 결과로, 수단은 목적의 과정으로 드러나는데, 재밌게도 목적은 과정을 통해, 수단을 결과로 평가된다.

사변적 관념적 표현들을 피해 다시 말해보자면,

 

한 수녀가 있다고 하자.

그녀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목적)

평생 기도하며 조용히 살았다.(수단)

그녀는 가까운 어려운 이웃을 보살폈지만(과정)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다.(결과)

그녀의 삶은 어떻게 평가될까?

 

한편 한 독재자를 생각해보자.

그는 질서의 회복을 명분으로(목적)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 공포정치를 펼쳤다.(수단)

그는 말 잘 듣는 넘들에겐 편익을 주고 반대자들은 조졌다.(과정)

그리고 마침내 OECD 국가의 하나가 되었다.(결과)

그는 사후,

질서의 수호신으로, 민족중흥의 선구자로 추앙되고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한편 그는 여러가지 이유로 갖은 쌍욕을 먹고 있기도 하다. (수단이 목적을 벗어나면 정당성을 잃는다)

 

 

자,

어떤 경우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떤 경우에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는가? 왜?

성공한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목정이 정당하면 실패한 수단도 가치 있는가?

무엇이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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