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죽음의 5단계_2003.07.07

시한부 환자가 죽음의 선고를 받으면 '부정-분노-협상-우울-용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부정'이란, "내가 그런 불치병에 걸렸을리 없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부정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환자는 자신이 감기와 같은 '흔한 질병'에 감염되었을 뿐인데 돌팔이 의사가 잘못 진단했다는 둥, 검사과정에서 차트가 바뀌었다는 둥 하는 상상을 하며 온갖 추한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분노'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관대 이렇게 죽어야 되냐!"며 모호한 대상에게 적개심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환자는 자신이 받은 사형선고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지른 온갖 사소한 죄에 비해 너무 큰 것이라는 것에 분노합니다. 인과응보라는 건 단지 도덕적 상상력의 산물일 뿐, 운명의 세 여신은 그저 실을 뽑고, 짜고 끊어버릴 뿐인데 말이지요. 환자 가족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협상'이란, "앞으론 착하게 살테니, 부동산 투기 안 할테니, 자기 전에 이빨 잘 닦을테니, 기타 등등등... 제발 살려주세요~"하는 단계입니다. 착하게 산다고 커져버린 암 덩어리가 갑자기 두부로 변하거나, 이빨 열심히 닦는다고 썩어버린 허파에 다시 광명이 비추는 것도 아니건만 환자는 자신의 또다른 희생을 통해 확정된 죽음을 연기하고자 안간힘을 다 합니다.

 

"어차피 곧 죽을 것, 밥은 먹어서 뭐하나..." 이것은 제 4단계, '우울'입니다. 간절한 기원도, 어떤 새로운 치료법도 무용한 것을 확인한 환자는 결국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불현듯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말기 암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이라고 해봐야 기껏 진통제겠지만, 치료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포기해버린 환자는 가족의 애타는 마음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죽음의 마지막 단계에서 찬연한 빛을 발합니다. 제 5단계 '용납'은 죽음의 순간을 아름답게 해주는 인간 정신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 예수가 남긴 마지막 말이지요. 인간에게 있어 육체의 죽음은 분명 피할 수 없는 것, 오늘 살아있는 자라 할지라도 내일은 죽은 자일지도 모릅니다. 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침착한 걸음으로 교수대의 계단을 오릅니다. 유머감각이 충분한 환자라면 지켜보며 눈물짓는 가족들에게 끝내주는 농담 한마디를 던져주고 갈 수도 있겠지요.

 

김정현의 히트작 '아버지'에는 위와 같은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 소설에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좀 구리다...라고 생각합니다만... -_-

 

만에 하나 제게도 이런 죽음의 초대장이 온다면, 다른 건 몰라도 '부정'의 단계만큼은 그저 건너뛸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한가지의 바램이 더 허용될 수 있다면 모두 건너뛰고 마지막 단계까지 달려가 초연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박수와 웃음 속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안녕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삶의 쓴 잔을 받을 것인가, 던져버릴 것인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젊은 날의 초상], 이문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