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빈자에게서 이익을 취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가_2008.06.20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 15일자 뉴욕판에 “빈자에게서 이익을 취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가?”(Is it acceptable to profit from the poor?)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멕시코 유수의 금융회사인 Compartamos Banco의 주식공개 공개 이후 이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총재를 비롯한 마이크로크레딧 운동 진영으로 “이 회사의 이자율이 연 100%를 넘으며 이 수치는 불법 고리대금업자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약간 적을 뿐”이라며, 무담보소액금융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어야지 새로운 업자들을 만드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Compartamos측의 견해는 다르다. 1970년대에 무담보소액금융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한 ACCION International의 회장인 Álvaro Rodríguez Arregui는 "Compartamos의 주식 공개(와 같은 영리추구)가 무담보소액금융 산업에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자본시장의 성장이 경쟁을 통해 이자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빈곤 퇴치에 기여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코노미스트’는 Compartamos와 같이 영리를 추구하는 무담보소액금융이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윤이라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자선만 베풀었을 때보다 가난 극복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서 ‘이코노미스트’는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담보소액금융에 자선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이 함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무담보소액대출 시장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발표한 “케이블TV의 대부업 광고의존 심각”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했던 연예인들은 한동안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TV를 켜면 그들의 미소를 볼 수 있다.


다른 한 축인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딧 상황을 보자. 그라민은행의 한국지부 ‘신나는조합’이 2000년 6월 출범한 이래,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재단’ 등이 극빈층을 대상으로 무담보소액대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무담보, 무보증, 연2%수준의 이자라는 대출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일례로 ‘신나는조합’을 통해 창업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부동산 포함 총자산 3천만원 이하, 4인가족 기준 월소득 150만원 이하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극빈층의 자활․자립을 돕는다는 마이크로크레딧의 설립목적에는 부합하나, 결국 중산층과 극빈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는 소위 ‘서민’층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또 다른 ‘금융소외계층’은 현재 제3금융권의 주요 고객이 되고 있으며, 사채시장의 팽창과 ‘악성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 양산의 주원인이다.


은행 문턱이 높아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이들에게 마이크로크레딧조차 ‘좁은 문’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원인은 역시 사회적 사업의 한계일 것이다. 올해 1월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신나는조합’ 마이크로크레딧의 상환률은 94% 수준이라고 한다.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무보증 대출이므로 이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단순계산해 봐도 2~4% 수준 금리에 94% 상환이라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도 대략 2~4%의 자본손실이 계속 누적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밑지는 장사’, 이는 마이크로크레딧을 기부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보기 힘든 한 이유가 된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낼 열쇠는 우리의 관심뿐


현재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NGO․정부․기업․은행 등의 출자 및 기부금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일부 은행 및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분명 기업이미지 홍보를 겸하고 있으며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 이룩한 의미있는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정부와 국회는 수년에 걸친 치열한 논란 끝에, 1998년 IMF의 요구에 의해 폐지됐던 이자제한법을 올해 초 최고 금리를 연49%로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아 ‘대부업법개정안’으로 되살려냈다. 그러나 전 분야에 걸친 현 정부의 움직임과 맞물려 제3금융권 관련 규제도 다시 완화 쪽으로 돌아섰다. 지난 5월초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대부업체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부업체에 ABS발행을 허용하고, 대부업협회의 법정기구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서민경제에 밀접한 제3금융권의 양적 성장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논리나, 질적 개선을 중시하는 빈곤 퇴치의 명분이나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만큼의 설득력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중한 독자라면 어느 한쪽의 손도 선뜻 들어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사회는 ‘촛불’을 통해 ‘관심’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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