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8일 월요일

로하스의 시대가 온다.

로하스족(LOHAS)

 

건강, 환경, 사회정의, 자기발전과 지속가능한 삶에 가치를 두는 소비집단  

로하스(LOHAS)는? :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칭. 

특징 : 재활용품, 유기농 농산물, 환경친화적 여행상품 등을 소비하며 생활함

관련정보 : 로하스족으로 사는 10가지 방법, 웰빙족 

2000년에 미국의 ‘내츄럴 마케팅 연구소’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방식 또는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하는 친환경적인 소비 형태를 보이며, 자신의 건강 외에도 후대에게 물려줄 미래의 소비기반의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한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장바구니 사용, 천으로 만든 기저귀나 생리대 사용,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프린터의 카트리지 재활용 등이 있다.

로하스의 개념은 환경과 미래에도 지속이 가능한 발전을 고려하는 '사회적 웰빙'이라는 점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잘 먹고 잘 살기를 추구하는 웰빙과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집 안의 벽지를 친환경 소재로 바꾸는 것은 웰빙이다. 

그러나 벽지의 원료가 재생이 가능한 것인지, 폐기할 때 환경 파괴 성분이 나오지 않는지 등을 따지는 것은 로하스이다.

또한 로하스는 개인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사회참여운동의 일환인 친환경주의와도 차이가 있다.

 



이들이 바로 차세대 마케팅 전략이 겨냥해야할 새로운 소비자 집단이다. 아니, '새롭다'는 것은 부정확하다. 이미 대세이다. 이 포스트를 읽는 당신도 내 글에 공감하거나 말거나 이미 로하스족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상업적 폭발력은 한국에선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중에는 불어닥칠 것이므로, 지금이야말로 '1년 내 시판이 가능한 로하스 관련 상품'들을 기획하기엔 가장 적기, 혹은 마지막 찬스일 것이다. 아마도 규모가 있는 기업들은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일 것이라고 본다.

이제 한국에서도 점차 정착되어가는 장바구니 사용과 같은 소비 행태는 환경보호와 관련한 법률들에 의해 강요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강요의 합리성이 대중에 설득되면서 일반 윤리로 정착하였다. 다시 말해 대중에 의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은 젊은날의 꿈을 잃었다. 안정된 미래에 대한 낙관도 가질 수 없다. 자본주의적 경쟁에 지쳐버린 것이다. '야망'이라든지, '꿈', '장래희망'을 작게(현실적으로) 설정하고, 적당한 성취를 이루면 그 자리에 안주해버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도 이만큼 사는 게 어디야?'라는 심리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도덕적 열망에 의해 그들의 '적당한' 안주(安住)는 또다시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살다 죽으면 그걸로 끝인 걸까?'라는 반성이 자기 안에서 끊임 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간을 따라다닌 실존적 질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로하스'족의 개념은 대중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내가 크게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작은 노력만으로,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를 일부러 부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은 인간의 바람직한 본성에도 부합한다. 희생이라 하기도 거시기한 작은 노력과 실천만으로도 큰 도덕적 만족감을 주는 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이를 확대해석해보면, '로하스족' 개념의 유행은 '홍익인간'의 재림에도 비유할 수 있다. 우리의 386세대. 이 나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은 피 흘려 이 만큼의 민주화를 이뤄주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얻은 자유는 누릴 줄 몰랐던, 가엾은 세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이 세대론적으로는 현재 대중 가운데 가장 구매력, 즉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집단이다.

이들 정통 홍익인간의 후예들이 품었던 '왕년'의 꿈은 정말 아름다웠다. '민족 통일'이라든지 '노동자 해방'과 같은 것들이다. 어느쪽을 선행해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서로 다투느라 결국 적전분열해버리고 말았지만, 어느쪽이든 우리가 포기할 수는 없는 가치라는 점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386세대는 자신들이 이뤄낸 것들의 가치를 그 윗 세대, 즉 '기성세대'에 의해 폄훼되고 부정당하다가 결국 그 부정과 폄훼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말았고, 이러한 타협에 대한 죄책감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로하스족'이 되는 것은 이런 좌절감과 죄의식을 다소나마 효과적으로 치유해줄 수 있는 논리가 된다.


그런데 이 '작은 실천과 참여'라는 웹2.0적 방법론과 386세대의 도덕적 갈증이 일으킬 수 있는 폭발력은 한국의 자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소위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시장권력'이 그런 이유로 해서 '그린 뉴딜'과 '사회투자국가론'과 같은 '위험한' 개념들이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혹은 피상적으로 이해되는 데 그치도록 하는 여러 정치적 활동들을 현재 진행 중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한국의 시장권력에게 있어 '그린'은 아직 충분히 독점하지 못한 시장인데 '그린 열풍'이 난데없이 그들의 준비보다 먼저 불기 시작하면, 그들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결과, 즉 과거 노무현의 당선과 같은 파괴적인 결과를 부르고 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지난 5년간 각고의 견제 끝에 '참여 정부'가 '국민의 정부' 수준의 개혁에 멈추게 하는데 성공했지만, 이는 그들에게 있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의 세월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여기서 나는 그들이 요즘 그토록 노무현 죽이기에 열중하는 이유를 짐작한다. '노무현'은 노무현 본인이 원하든 말든, 정작 386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상관 없이 '386적인 가치'의 정치적 아이콘이다. 노무현을 죽이면, 386도 죽는다.
 

누가 뭐래든 현재 대한민국의 시장권력은 국민의 헌법적 주권 위에 서 있다. 신자유주의 방법론에 의해 소비자 주권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적당히 분산되어 있는 것처럼 위장되어 있으나, 실은 소비자의 대의 기구를 참칭한 기업들에게 독점되어 있는 것이다. 이 빼앗긴 주권을 국민, 아니 '시민'이 되찾으려 하는 패러다임시프트의 전조(前兆) 가 바로 '로하스족' 열풍이 될 것으로 나는 예측한다. 
 

 
※ 써놓고 보니 완전히 점쟁이 같은 소리다. ㅡ,.ㅡ 1~2년 뒤 두고 보면 알겠지 뭐. 그때 가서 잘 맞췄다면 복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겠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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