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1일 목요일

장기하와 얼굴들아 가자. 달이 차올랐다.


이제서야 '장기하와 얼굴들'을 듣고 있다.

나는 그들을 처음으로 본 건 그들 역시 처음으로 공중파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당시 내가 주로 들여다보던 인터넷 게시판에서 '엽기' 가수라는 타이틀의 동영상으로 꽤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더랬다. 장기하들은 쇼킹했다. 이 녀석들, 너무 노골적으로 싼티나게 좋은 음악을 하고 있는 거다.

이후 몇 번을 공유 자료실 검색을 해보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앨범을 낸 붕가붕가레코드의 위대한 '수공업 정신'에 인터넷의 해적들조차 감동해버렸는지, 그래서 잠시 카피레프트 정신을 보류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는 거창한 망상도 떠오른다. 하기사 나조차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면서도 레코드점에 가거나 인터넷몰에서 CD를 구입할 생각은 않는다. 그렇게 미필적고의에 의한 망각의 시간을 한동안 보내다 오늘 장기하 이름이 붙은 모든 곡을 벅스에서 다운받았다.

이런 물건이 다 있나. What an incredible music!이라고 해두자.

앨범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따라 88만원 세대 냉소적이면서도 따스한 것에 굶주려하는 정서를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느린 삶을 선택한 이들을 상찬하고, 그 삶을 택한 자신도 별일 없이 산다며 감상자를 약올리기까지 하고 있다.

나는 내 정서를 이토록 풍성하게 표현해준 것에 대해 장기하에게 무척 감사하다.

 


[앨범 읽기]

- <나와>는 그저 이제 나의 노래를 시작할 테니 잘 들어보라는 intro.
- 일단 대학만 가면 어떻게든 되는 양 어른들은 나에게 구라를 쳐왔고, 막상 와 보니 실은 아무 것도 없더라. <아무것도 없잖어> 아무튼 대학에서 그나마 즐거운 일-연애를 시작했는데, 나에겐 영 몸에 맞지 않는 옷 같다. <오늘도 무사히> 결국 이런저런 일 끝에 이별을 하고 찌질하게 지내게 된다. <정말 없었는지> <한 여름밤의 꿈>만 같았던 사랑<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인 그녀는, 아마도 많은 고민 끝에, 나와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말하러 가는 길> 나는 찌질스럽게 매달려도 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나를 받아주오> 결국 나의 '마음속의 샘물'은 말라버리고 그 속에 '자그마한 불씨'가 타오르는 것조차 두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남자 왜>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열정도 희망도 없는 88만원 세대- 되어버린 책임은 아무래도 나를 속인 자들, 예컨대 대학만 졸업하면 뭐라도 되는 양 구라친 성인들, 즉 기성세대와 그들을 대표하는 위정자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멱살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을 수밖에.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 그러나저러나 이러저러한 사연 끝에 장판에 들러붙어 <싸구려 커피>나 마시는 신세, 즉 청년백수가 되어버렸다...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 모를' 만큼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삶.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그저 넋두리지 예술이 아니지!)
- 나는 '지레 겁먹고' '포기'했던 꿈을 따르는 삶. 자신이 자신으로 사는 삶을 과감히 선택한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것은 느리게 걷는 것으로 가능했고, <느리게 걷자> 그래서 나는 요즘 정말로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별다른 걱정도 고민도 없이, 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산다. 그래서 사는 게 즐겁다. 그런데 당신네들의 꿈은 안녕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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