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0일 수요일

그린칼라이코노미- 녹색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


그린칼라 이코노미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반 존스 (페이퍼로드,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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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잘못 됐다. 한국의 노동자에겐 '블루칼라'라는 계급의식이 거의 없다.

세대주이고, 호주이고, 가장이며, 때론 장남이고 때론 (더 억울하게도) 장녀인 덕분에 가장일 수도 있다. 이렇게 어떻게 해도 떨쳐낼 수 없는 책임감과 거기서 파생한 권위주의에 젖어 있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다. 자신들이 '블루칼라'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 즉 '화이트칼라 경제학의 희생자'들임을 자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블루칼라의 경제학'이나 '화이트칼라의 경제학'을 대체할 획기적 대안- '그린칼라 이코노미'에 열광할 턱이 없다.


제2장 '사분면의 제4분면'의 "환경분리주의?"라는 소챕터에는 이런 사진이 들어간 표가 하나 있다.책 전체를 걸쳐 유일한 삽화이고, 책 전체의 내용을 단숨에 보여주는 그림이다.

 [얼음 조각 위에 간신히 선 북극곰]---------[하이브리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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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 굴뚝]-------------[뭔가에 신나있는 노동자들]

  

그 뜻인즉, ...

(아 ㅅㅂ 직접 묘사하려니 안되겠다. 차라리 책 본문을 그대로 타이핑하면서 적당히 수정하고 만다.)

 

가로 방향 축은 낡고 회색인 문제점들을 청산하고 환경주의적 진보를 달성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왼쪽이 현재의 문제들, 오른쪽이 미래의 해법이다. 세로 방향 축은 인간적 차원이다. 가난하고 대부분 유색인종인 사람들이 아래쪽에 있고, 부유하고 대부분 백인인 사람들이 위쪽에 있다.

1사분면(그림의 좌상단)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빙하가 녹아내리고,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갯벌이 없어지고, 지구온난화 떄문에 발디딜 곳이 없어진 북극곰이 물에 빠져 죽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그들은 기초적 욕구를 충족한 상태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글로벌한 환경문제를 곰곰히 생각할 시간이 있다. 그들은 또 스스로 투표나 로비를 할 수 없는 무방비의 생물종들의 장기적 이익을 지켜줄 수단과 능력을 가졌다. 이 1사분면은 주류 환경주의 운동의 입장을 나타낸다. 즉 보호주의 또는 규제주의적인 입장들을 말이다. (물론 인디언들도 전통적으로 이런 입장에 서 왔는데, 그들 중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그들의 영적, 문화적 부유함이 그들에게 넓게 멀리 보는 시각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2사분면(좌하단)의 사람들은 지역적인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미국의 서민들이다. 즉 오염된 물과 공기, 발암률 증가, 청소년 천식환자 증가, 신선한 식품의 부족, 그리고 카트리나 같은 자연재해가 가져올 참화 등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다. 그들은 그다지 먹고살기가 넉넉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들은 환경 위기를 보다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시각에서 접근한다.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환경주의자라고 여기지 않지만, 그들은 지역 차원에서 중요한 환경 변화를 이뤄낼 수단과 능력을 갖고 있다. 이 2사분면의 사람들을 환경정의론자들이 공략하고 있다.

3사분면(우상단)의 사람들도 부유하다. 그리고 폼나는 SUV와 험머 자동차를 포기하고, 대신 그들은 하이브리드차나 태양전지판 등의 '그린테크' 상품을 구입한다. 이 3사분면에는 부유한 사람들의 비즈니스 기회가 걸려 있다. (이 영역의 소비자들은 다소 가격이 비싼 그린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용의가 있다.) 이 영역에서의 활동은 이중적으로 유익하다. 부유층들이 지구에 해를 끼치는 경제활동과 결별하고 대신 지구를 돕는 경제활동으로 전환한다면 어떨까. "얼리어댑터"로서 그들은 시장을 창출하고 신생 기업을 후원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이 '녹색경제'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4사분면(우하단)에서는 노동계급의 사람들이 그린칼라 직업에 동기부여되고, 그린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이는 가장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을 위해 "일자리, 부, 건강"이 주어지는 영역이다. 이제 예전의 브라운필드가, 만성 불황의 도시지역이, 경제난에 시달리던 농촌 소도시가, '친환경 산업단지'와 '친환경 기업단지', '생태 마을'로 바뀐다. 농산물 직거래 시장, 지역 협동조합, 이동 시장 등을 통해 값비싼 '헬스푸드' 상점을 이용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신선한 유기농 농산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이 4개분면 전부가 중요하며, 크나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어느 하나의 사분면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온난화에 대항하고 그린 경제를 더욱 키워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게 하려면 네 번째 사분면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린 경제가 단지 부자들의 소비 취향의 문제가 아니게 되면, 보통 사람들이 돈을 벌고 저축할 수 있는 차원이 되면, 그 무엇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이 나라는 경제를 살리면서 지구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이중의 도전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성장론자와 환경론자 간의 대립, 성장론자와 분배론자 사이의 대립, 그리고 분배론자와 환경론자 사이의 대립에서 화해를 모색한 책이다. 환경론이 분배론과 성장론의 대립을 중재하고, 분배론이 성장론과 환경론 사이를 중재하며, 분배론과 환경론과 사이의 대립(우리나라에선 좀 드물지만)을 성장론이 중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어찌 획기적인 발상이 아닐 수 있으랴! 오바마 정부가 '그린 뉴딜'이라는 개념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MB정부가 이 그린뉴딜 개념을 빌려오긴 했지만 그저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성장과 환경문제의 해법이 분배라는 사실 때문에 함부로 내세우지 못하거나 숨기려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장 골때리는 부분은, 노동자 그룹, 즉 그린뉴딜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게 될 집단이 이 그린뉴딜의 개념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단지 MB정부가 추진한다는 이유만으로 비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그들은 성장과 분배 논쟁의 해법이 '환경'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분배와 환경 사이의 대립은 우리나라에선 별로 눈에 띄진 않는다. 대개 환경운동가가 진보운동가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논쟁이 없진 않다. 이들의 논쟁은 워낙 그 테두리 바깥에선 눈에 띄지 않을 뿐, 내부적으로는 엄청나게 치열하다. 이런 논쟁씩이나 하는 분들은 워낙 아카데믹해서 감히 성장이 그 해법이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책은 '그린뉴딜' '그린칼라'의 개념을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춰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을 선택했어야 했다. "녹색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 정도의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녹색 경제의 노동자 혁명>?) 한국의 노동자(2사분면)와 노동운동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라면 미국에서 억수로 유명한 정치운동가가 쓴 '노동자를 위한 경제학'이라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리 없다. 2사분면에 속한 노동자들이 돈을 벌어야 4사분면으로 이동할 것 아닌가. 즉, '노동자'를 불러서 '녹색'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갈등하는 준중산층에 속한 시민들 역시 '경제학'에 이끌려 녹색 대안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입안자들에게 '녹색'과 '분배'가 '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인식시키는 일이다. 그들이야말로 이 책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아마도 요즘 너무 바빠서,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진 않으리란 것이 진짜 문제다.

 

엄청나게 팔려나가 이슈의 중심에 서줘야 할 책이 안팔리고 있으니 분통이 터져 방언을 좀 했다. 이 책이 설명하는 '그린뉴딜'의 개념이, 유시민이 <대한민국개조론>에서 갈파한 '사회투자국가론'과 맞물려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만 있다면, 다음 대통령을 누가 먹든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을 것으로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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