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9일 화요일

루저를 위한 망상


"산타클로스는 없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산타클로스에 대한 환상'이 먼저 보편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산타클로스는 없어."는 아이들에게조차 '상식적'이 되었다.
그것이 이미 '지나치게 상식화'되었다면 반작용으로써 또다시 동화적 세계를 향한 지향이 힘을 얻는다.

이런 논리를 상대주의, 다원주의적 관점으로만 보면 결국 역사순환론으로 빠지게 되는데, 
이는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세속 불교에 빠지지 못하는 까닭이다.

(윤회든 부활이든 조금이라도 기복(祈福)적인 종교는 죄다 나의 '앎(?)'과 상치된다.
그리고 내가 그 본질을 이해했다고 믿는 '불교'는 윤회 따위를 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불교적'이라고 생각하는 윤회는 사실 힌두교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유한한 (공간적) 사물과 (시간적) 사건은
주물질차원 안에서만 다뤄질 수 있으며, 다뤄져야 하고,
이를 과학(중 특히 의학, 생물학 등)이라 한다.


* Alan's Blog(리처드 도킨스_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 (What's Wrong with Religion? Why be so Hostile?)에 대한 트랙백

 

인터넷의 바다 곳곳에서 나와 닮은(하지만 나보다 훨씬 공부 많이 한-_-;) 이들을 만난다.

아직도 2MB 따위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인 걸 보면
이들은(나는) 아직도 마이너리티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맑스가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것의 강력한 진통효과는 합리적 이성,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이룰 수 있는 인간 본연의 힘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 유혹은 너무나 강렬하다.
오죽하면 그 치열했던 도스토옙스키마저
"설사 진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를 선택하겠다."고 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심각한 도박중독자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한다.)

 

'믿는 사람'(특히 기독교)은 때때로 혹은 자주, 그 믿음의 양과 정비례하여 주변인을 믿음의 테두리로 끌어들이려 하는 경향이 있다. '전도하는 친구들', 누구나 언젠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재밌는 건, 나와 같은 '합리주의자'(말하자면 이성숭배자) 역시 믿는 자들을 불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그 '신앙의 세기'에 따라 적극성이 결정된다. 결국은 '똑같은 놈들'이란 애기가 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중도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는 이들은, 그저 '이 문제에 대해' 게으른 것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신 따위 알게 뭐냐."란 논리는 "경제도 어려운데 민주주의는 개뿔."이란 식으로 답습된다.

미안하지만 '진리'는 이쪽에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 진리가 쉽게 가까이 갈 수 없을 뿐더러, 어지간해서는 개인이 먹고사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는 사실이다. 진리에의 추구는 이렇게 개인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결국 물질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초래한다. 격리는 설득력의 약화를 동반하며, 결국 사회에서 도태된다. 

아마도 이것이 신비주의에의 타협이 어떻게 수천년을 인류역사에서 우성인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역사는 승자가 쓴다.


낙오자(loser), 서구에선 가장 모욕적으로 사용되는 말.
한국사회도 더욱 더 많이 서구화 되면서 비슷한 세기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가치관은 "없는 자 굶어라"라는 의미와 뒤섞여 문명의 발달에 기여해왔다.

이러한 가치관은 '자의성'에 대한 해석-낙관적 혹은 비관적인-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낙오자에 대한 인간사회의 배려(혹은 배제)는 어떤식으로 진화해 왔는가?

아마도 원시-고대사회에서는 방치나 추방 정도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추방-문명(아무리 조악한 형태였다 할지라도)으로부터의 배제는 죽음과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을 것이므로.

진화론적 원리(자연선택)에 따라 생산성이 높은 '근면의 가치관'(우성)은 생산성 낮은 '나태의 가치관'(열성)을
성공적으로 인간생태계로부터 배제해 왔으며,
그 결과가 자랑스런-어느 정도는 진심으로- '현대 문명'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비극도 있었으니, 우생학(優生學)이다.
2차세계대전 시기 독일의 나찌는 위와 같은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집시와 유색인종을 학살했다.
유태인 학살에 가려 별로 주목도 받지 못한 이 딱한 인종들의 생태는
6~70년대에 들어 히피들이 추구한 삶의 전범(典範)이 되었다고 한다.

방종, 나태, 쾌락의 탐닉, ... 등등이 외부에서 그들의 삶을 평가하는 표현들이다.
자유, 자연에 순응하는 삶,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 등등은 그들이 스스로를 미화하는 표현이었고.

집시에 대한 학살과 학대는 그 숫자에 있어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만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워낙 제대로 씨를 말려버렸고(미국건국史에서 원주민 학살을 문책하기 어렵게 된 것처럼)
'잡아죽인 놈'들이 '잡아죽일만한 놈'들이었다는 공감 역시 全유럽적이었던 탓에
그다지 역사적 위로를 받고 있지 못하다.

말하자면 낙오자(loser) 집단의 말로랄까,
승자의 손으로 기록되는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었겠느냐는 이야기.

이런 논의의 연장에서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라는 우리의 윤리교과서적 규범이 도출되었지만,
과연 자유와 방종 사이에 납득할만한 근본적 갭이 존재하는가?

 
풀이 나를 끌고 가는 낙원은 자꾸 집시와 히피 형님들이 뛰어노는 그곳을 닮아간다.
이래서야 이 거대한 물질문명사회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다. 새로울 것도 없고...
나는 공생공존의 행복한 꿈을 꾸지만, 역사가 너무 더디 가서 아프다.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의) 양자역학적 우주와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의...이하 생략) 상대성이론의 우주는 양립할 수 없다.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
<물리> 양자 역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 따위와 같이 서로 관계가 있는 한 쌍의 물리량에 대하여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관측하여 정확하게 측정, 결정할 수는 없다는 설. 두 개의 측정값의 불확정성의 곱은 플랑크 상수(Planc常數)보다 작아질 수 없다는 불확정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1927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W.K.)가 세웠다. *출처:네이버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이냐... 이 발견에는 아인슈타인조차 곤혹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내 식대로 말해서, 상대성이론이 거시적으로 구축하고 증명한 '필연적 우주'가 
우주의 어떤 부분은 극히 우연적이고 자의적일 수 있다는 미시적인 발견에 의해 박살나버린 것이다.
전설(과학사)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이 '두가지 우주'를 합일시킬 이론-소위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갔다고 한다.

이 문제를 파다보면 반드시 빛의 파동/입자설, 소립자가설, 쿼크, 초끈이론 등등등등...으로 넘어가는데,
이쯤 되면 과학(특히 이론물리학)은 이미 종교나 다름없다.

즉, 믿느냐-믿지 않느냐의 선택이란 얘기다.
여기서 우리는 적당한 수준의 타협-만질 수 있는 물질(돈)의 세계에 만족하고 살아갈 수도 있다.


과학적 증명이란 강박관념(?)을 벗어버리면(가설을 이론으로 비약, 즉 논증에서 직관으로 방법론적 전환을 해버리면) 속편한 선택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풀이 나를 불교적 세계관으로 이끄는 힘이다.
거부하고 싶지만 끌려간다.

일원론와 이원론이 결국 같은 의미라는 나의 직관적 깨달음(?)은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반야심경이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 되고,
도교식으로는 태극이 양의(음과 양)가 되고, 양의가 사상이 되며, 사상이 팔괘가 되는 원리와 같다.
또 성리학에서 이기이원론(주리론)은 서양철학의 관념론과, 이기일원론(주기론)은 유물론과 통하는 바가 있으며,
히브리철학(원시 기독교랄까)과 예수의 가르침(신약 중 예수가 직접 말한 부분만)의 대립도
어딘가 성리학의 사단칠정논쟁을 닮았다.
요약하면 나는 기계적 유물론의 길을 따라가다 덜컥 부처를 만난 셈이다.


... 출가해야하나? ㅡ,.ㅡ;
한마리 상습 파계승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긴 하겠는데... (뱃속에 벌써 '사리'도 들었겠다)
그러기엔 또 세속적 욕망이 너무 크고 잦다.
육식을 금한다던가 소유욕을 포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언제나 성욕이다. -_-*
(사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사는 동안 건강하게 있고 싶으면 난 어차피 고기를 피해야 한다...)

어느 절간이 승방(僧房)을 모텔방으로 만들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중놈을 받아주겠냐는 말이다.
사실 원효대사라는 자도 자식을 두었고(설총) 고기를 먹은 파계승이었으며, 모르긴 몰라도 '깨달은 이'(부처)라면
딱히 성욕을 죄악시 하지는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어디서 감히 부처 흉내를 내겠냐구... ㅋ


아, 오늘도 이 루저의 망상은 끝이 없다.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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